전시관에서 사진촬영 대신 직접 그려봅시다!

사진보다 훨씬 오래 기억하고 음미하는 기록법

by 고용석

안녕하세요.

최근 '디지털 잠시 멈춤' 책을 출간하고 실제적으로 제가 실천하고 있는 사항들을 공유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글을 또 쓰고 싶은데..


어떤 명분으로 또 글을 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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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DLC개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잠시 멈춤'책과 관련해서 추가확장 콘텐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DLC개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책에는 구체적인 실행방법이 있긴합니다만.. 이 글 자체만 읽어도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출판사에도 책 내용과 중복되지 않으면 괜찮다고 허락을 얻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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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서 사진찍기 대신 그리기

(이 컨텐츠는 '디지털, 잠시멈춤'의 331페이지의 <노트와 펜으로 전시회 관람하기>의 확장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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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전시회를 갈 때 마다 사진촬영 대신 그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억하고 음미(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전시관에서 사진촬영을 허가하는 한 모조리 사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스페인을 여행하며 현재의 '전시 관람 태도'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a8558f4c0763aa.jpg?w=780&amp;h=30000 피카소 박물관 근처. 의외로 대로가 아닌 골목 골목에 있었더랬죠..


그당시 피카소 박물관을 들렸습니다. 항상 교과서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피카소의 진품을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장.


지금 아니면 두번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압박감(?)에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사진을 훨씬 많이 찍었습니다. 플래시를 제외한 모든 촬영은 허가되었기에 그야말로 스마트폰 카메라 화질을 최고로 하고 계속해서 찍었습니다.


물론 저 뿐만 아니라 그곳에 온 많은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서 셀카를 찍거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마치 피카소 미술관 카다로그를 만들것처럼 맹렬히 찍었습니다. 그 이후,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거의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열어본 것을 제외하곤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라는 느낌만을 가진채 더 이상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감상하는 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에 휘둘려 너무 급하게 본건 아닌지, 그저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했다는 사실에 만족한 건 아닌지 계속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관람은 어떻게 하는거지? 아니 애초에 본다는 건 무엇일까?'


사실 우리가 보는 것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일상의 눈은 그저 반복적인 행동, 반사적인 행동을 돕기 위한 시각활동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길, 업무, 매일 보는 똑같은 거리에서는 우리는 특별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도 뇌에서 반복해서 입력되는 데이터는 계속 스킵(skip)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무를 볼 때 갑자기 컴퓨터에서 에러 메세지가 뜬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작동하던 기계가 갑자기 멈추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어떨까요?


이럴 때 우리는 다르게 상황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때 부터는 소위 '관찰'을 하게 됩니다.


멍하니 보던 눈이 또렷해지고 찡그리며 상황을 자세히 보기 시작합니다.

이때 부터는 평소의 시각활동과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간섭의 차단으로 패턴 분리가 선명해져 사물과 사건이 뚜렷해지는 과정이다. 꽃이든 사람이든 자세히 보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해마에 각인된다.'<박문호, 뇌 과학공부 p.275>


즉 자세히 보는 과정은 노이즈를 제거하고 필요한 정보만을 취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옆 사람의 말 소리를 알아듣고 공장의 소음 속에서 기계를 고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멍하니 있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때?

멍하니 인터넷 서핑을 합니다. 그러다 게시물에 소위 '후방 짤, 19금' 등 이성의 사진이 등장합니다. 갑자기 동공은 커지고 게시물 내용 자체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게시물에 대한 게 아닌 짤방 인물에 대한 정보입니다.


우리가 전시회를 보러 가는 이유는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을 때 전시회를 갑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것도 일상을 잠시나마 탈출하기 위함입니다.


일상이란 노이즈와도 같습니다. 내가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뇌에서는 더이상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구입하고, 사람을 만나면 그 때는 뚜렷이 기억합니다.


전시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면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합니다. 일상에서와 다르게 한 가지 주제를 오랫동안 응시하는 경험 자체가 뇌에게는 굉장히 유익한 정보수집 과정입니다. 새로운 시각정보는 해마를 자극하고 기억력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이 때, 여러가지 요소들로 보는 활동을 방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합니다.

아니면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 시끄럽고 번잡스럽습니다.

함께 온 아이가 빨리 가자고 보채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깁니다.

지인들은 이미 다 보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바빠집니다.

오랜만에 새로운 그림을 보던 감동은 사라지고 빨리 지인들과 합류해서 새로운 일정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만약 그림을 제대로 못본 아쉬움을 토로한다면 지인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걱정마. 아까 사진으로 많이 찍어 두었잖아. 나중에 보면 되지"


맞습니다. 때로 전시회에 보면 '찰칵' 소리가 정신없이 들릴때가 있습니다. 물론 무소음 앱을 이용해서 소리없이 찍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이 사진으로 작품을 찍어 놓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흐름에 이끌려 빠르게 작품을 감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시회에서 최소한 2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시간 정도면 이미 관람을 마칩니다.


실제로 2014년 뉴욕타임즈의 어느 칼럼에서는 한 사람의 작품 감상 시간을 측정해 봤습니다. 대략 작품당 15~30초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오래 봐도 40초를 지나면 그 때 부터는 사람들은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결국 미술관 작품수를 나누어 보면 30분 정도 나왔고 작품당 관람 시간은 10초 내외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제로도 스스로 작품의 관람 시간을 재어본 적이 있나요?

개인적으로도 사람이 많을 때는 느리게 걷는 방식으로 줄을 서서 이동하며 관람을 했습니다. 아마 한 작품당 10초도 안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처음부터 돌아본다 한들 합쳐봐야 2~30초 정도 밖에 안될겁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작품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필살무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 메모리를 이용해 오래 보지 않아도 더 많은 걸 메모리에 담고 나중에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수백, 수천만 화소로 저장하고 최근 스마트폰은 저조도에서도 나름대로 깨끗하게 찍힐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전시회는 10분안에 사진촬영을 하고 끝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고 많은 경우 마음에 드는 작품은 사진을 찍고 만족합니다.


즉, 제대로 보는 시간은 이전보다 더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사진 찍었으니까 나중에 더 볼 수 있겠지'


이 생각이 결국 작품 관람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립니다.

문제는 나중에 다시 작품들을 보지 않습니다. 게다가 눈 앞에 거대한 캔버스가 아닌 스마트폰의 5~6인치 화면으로는 이미 감흥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렇기에 그 때 제대로 보지 않으면 대부분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백개, 천개의 전시를 본다 한들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지나가 버린 것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집중해서 자세히 본 것은 시간이 지나도 얼마든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래 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수많은 환경적인 변수가 있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굉장히 효과적인 도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리기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1. 카메라(스마트폰) 대신 노트와 3색 볼펜을 들고 입장합니다.


급한 연락을 받을 이유가 없다면 아예 스마트폰은 100원짜리 락커에 가방과 함께 넣어두고 오직 하드커버 노트와 3색 볼펜을 들고 입장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관람시간은 길어봐야 2시간 남짓입니다.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게다가 요즘 전시회 입장료는 15000원 전후입니다. 아이맥스 영화 한편 값입니다. 영화관에서도 스마트폰을 켜지 않는데 전시회에서도 굳이 켤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2.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서서 멍하니 10초정도 바라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합니다.

'나는 왜 이 그림을 좋아할까?'

'뭐가 이렇게 매력적일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한번쯤은 '언어적으로'질문해 보는 게 좋습니다.

물론 "삘(feel)이 왔어", "그냥 좋아서" 이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찰하다 보면 의외로 '액자가 특이해서 ' 라든가 '인물의 얼굴이 이전 연인과 닮았다' 라는 것 등의 특이한 이유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최소 1분에서 최대 5분, 마음에 드는 부분부터 그리기 시작합니다.

최대 5분을 정해놓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1. 한 자세로 5분간 한 손에는 하드커버 노트를, 한 손에는 볼펜을 들고 있는 최대의 시간이었습니다.

2. 한 공간에 너무 오랫동안 서 있는 건 사람이 많은 전시에서는 은근 민폐가 될 수 있습니다.

3. 한 작품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다른 걸 관찰할 기력(?)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대 5분을 잡고 그립니다.

절대로 잘 그릴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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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인상적인 부분만 캐치해서 그립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원본 이미지를 찾을 수 있도록 작품이름을 적어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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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그림당 2~3분 정도로 끝냈습니다.

원작은 상당히 배경도 복잡하고 소품도 많았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만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다시 봐도 순간적으로 이 작품이 내게 주던 영감,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납니다.


물론 미술뿐만 아니라 역사 전시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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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855b454e46b73.jpg?w=780&amp;h=30000 특이한 형태의 검. 나중에 아이들 수업 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855bbd52c17f6.jpg?w=780&amp;h=30000 경주 박물관에서 본 투구와 갑옷. 생각보다 간단한 구조여서 아이들 수업 때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렸습니다.



568e6dfd4932d0.jpg?w=780&amp;h=30000 달개라는 장식품이 특이해서 집중적으로 그려봤습니다.



568e83ce93f69d.jpg?w=780&amp;h=30000 서소문 박물관에서 본 작품. 철도에 쓰인 나무를 이용하여 순교자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스텔라의 타스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a855e760d6e59f.jpg?w=780&amp;h=30000 박물관은 아니고 경주월드에서 한 조각상이 너무나 멋져보여 그렸습니다^^;



물론 스마트폰 카메라와 병행해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학술적인 조사를 위해 실제 사진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촬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새로운 시각, 즐거움을 위한 전시라면 과감히 사진 촬영 자체를 배제하고 해보시길 바랍니다.

게다가 요즘은 구글에서 왠만한 이미지는 검색이 가능합니다.

내 스마트폰 보다 훨씬 훌륭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영상들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너무 사실적인 기록을 남기는데 신경을 쓰는 것보다 오로지 내게 확 다가온 느낌, 정말 멋진 포인트만을 골라 삐뚤빼뚤 그려보는 게 훨씬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직접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있는지 확실히 알게됩니다.

그리고 세밀하게 감상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예전에는 그림만 봤다면 이제는 그림을 담고 있는 액자나 작가의 서명, 그 외의 것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한번 희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을 정확히 2020년 8월 7일에 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사람들을 모집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2020년 8월 15일을 맞이했습니다.-_-

설마하던 광화문에서의 상황을 TV로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다행이 우리나라의 우수한 방역으로 백신 접종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희망자분이 계신다면 잠깐 모여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린 뒤 자유롭게 관찰과 그리기를 하고 다시 모여 서로 나눠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직장 근처 어학원에서 어마어마한 확진자가 나와 이런 추세라면 당분간은 절대 꿈도 못 꿀 것 같긴 합니다만..

나중에는 꼭 해보고 싶네요 : )


이번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편은 아이와 함께 전시관을 가서 그림을 그려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제 글이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