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편
이제 곧 여름휴가가 오고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로 이번 여름휴가도 갈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놀러갈 때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은 그리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또 글을 씁니다.
그리고 항상 말씀드리지만.. 댓글은 항상 큰 응원이 됩니다!!ㅜㅜ
그럼 시작합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전시회에서 사진 촬영 대신 하드커버 노트와 3색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훨씬 더 많은 감상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이나 전시회에 간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간단히 제 경력을 말하면 현재 아이들(6~13세) 미술을 8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워낙 아이들과 노는걸 좋아하고 만들기, 그리기를 좋아하다 보니 직업으로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업 이외에 여러가지 특강을 진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다녔습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모아 세계 각지로 다녀오는 것이죠.
이 여행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반에 한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일본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우와 일본 어땠을까? 정말 재미있었지?"
"아뇨. 별로 재미 없었어요."
의외로 시큰둥한 아이의 대답에 사뭇 놀랬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만해도 신나는 일이었는데 말이죠.
"왜?"
"아빠는 맨날 온천갔다가 잠만자고 엄마는 카페만 갔거든요"
여기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른에게는 힐링이 되는 여행지가 아이에게는 굉장히 따분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애초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만 데리고 다니면 어떨까? 철저히 아이들의 시각에 맞춘 여행은 어떨까?'
이 생각을 원장님에게 말씀드렸고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프랑스
프랑스, 낭뜨
스페인
이렇게 1년에 한번씩은 꼭 6~9명의 인원을 데리고 다녀왔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걱정하셨던 학부모님도 이제는 또 언제 보낼(?)수 있냐고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원래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작년, 올해도 어딘가로 향했을 겁니다.
스마트폰, 훌륭한 진정제
아이들과 여행에서 여러가지 고충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 사용입니다. 당장 공항을 봐도 대부분 아이들은 한 손엔 스마트폰을, 한손에는 닌텐도 스위치를 가지고 다닙니다. 여행지에서도 많은 경우 대기시간이나 이동시간에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이 굉장히 편리(?)합니다. 일단 쥐어주면 조용해집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안전이 제일 큰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안보는 사이에 호기심대로(?) 행동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마트폰은 잠시동안 부모가 숨을 돌릴 수 있는 틈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스마트폰은 훌륭한 진정제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들은 어른을 따라합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부모님을 상담했는데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제일 큰 아이러니는 부모인 본인은 사용하지만 아이들에게 제재를 할 때 "왜 엄마(아빠)는 사용하는데 나는 안돼?" 라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 말에 당황해 자신들도 줄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이들 나름대로의 평소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의 성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게임을 하고 카톡을 하고 틱톡(?!)을 하기도 합니다. 유명한 미술관을 가거나 관광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아이들도 어른들 만큼이나 추억을 남기고픈 욕구(?)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문제는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른과 똑같습니다. 바로 찍고 이동하고 또 찍고 이동하고... 여기에 아이들의 고유의 에너지까지 합쳐지면 정말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 때 선생님으로서 뭔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대부분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비슷하게 행동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분명 아실겁니다. 여행중에 찍은 수백, 수천장의 사진의 90%는 공유하고 나서 다시 안 볼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 때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더 깊은 관찰과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바로 그리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어볼 겁니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리기 자체가 가장 효율적으로 눈 앞의 상황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확신합니다.
예를 들어 글로도 상황을 묘사할 수 있지만 일단 상황을 보고 언어적인 표현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별 무리 없지만 글을 써보지 않은 성인이나 아이들의 경우 펜을 드는 것 조차 힘듭니다.
반면, 그리기의 경우는
준비물이 간단하고
선 하나에 수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고
아웃포커싱 효과로 쓸데없는 것 대신 좋아하는 것만 담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2번의 경우 예전에 연재한 글, 지금은 '디지털 잠시 멈춤' 도서의 295페이지 ' 그리기로 기억하라'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찾아오는 길을 종이에 급하게 약도로 그려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물론 지도앱이 훨씬 정확하겠지만 때로는 급하게 그린 약도에 나온 길이나 글씨를 보면 훨씬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시험공부를 하면서 손으로 필기한 자료와, 단순히 출력한 워드 자료는 깊이가 다릅니다.
기록할 때 자신도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정보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3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론 풍경이 좋아 사진을 찍고 나중에 다시 볼 때 감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숲 속의 나무와 공기, 바람이 좋아 촬영했지만 나중에 보면 빽빽한 나무들만 찍혀 있을 뿐입니다. '대체 뭐가 좋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밋밋합니다. 사진은 렌즈에 들어온 모든 것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렌즈를 바꿔 아웃포커싱 효과로 주변의 쓸데 없는 정보들을 걸러냅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그리고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셔터를 누르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그리기는 애초에 우리의 손과 발(발줌?)로 직접 기록합니다.
체력과 집중력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갖고 싶은 장면만 그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기 자체는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것만 골라내는, 쓸데없는 정보를 필터링하는 과정입니다.
나중에 보면 정제된 정보를 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진보다 훨씬 생생하게 그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여행으로 가보겠습니다. 잠시 공항을 둘러보면,
대기실에서 어른들은 카톡과 인스타를, 아이들은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부터 어른들이 먼저 태도를 바꾸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어른들을 계속 관찰합니다. 만약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인터넷 서핑을 한다면 아이들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바로 알아차립니다.
저같은 경우, 스마트폰을 아예 가방에 넣고 노트를 꺼내는 순간
라고 바로 물어봅니다.
물론 게임에 열중해 있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행동보다는 게임 속 세상이 더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루한 때는 옵니다. 특히 모든 것이 막혀있는 환경, 비행기 안에서 인터넷이 끊킨 아이들은 새로운 것은 찾아 헤맵니다. 물론 기내 VOD 서비스와 게임이 있긴 하지만 스마트폰의 빠른 속도와 자극적인 게임에 비교할 바는 안됩니다.
이때가 정말 중요합니다.
선생님들도 살짝 지루해지고
옴싹달싹 못하는 공간
인터넷이 끊킨 공간에서
정말 깊은 집중력이 탄생합니다.
특히 인터넷이 끊킨 스마트폰은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닌텐도 스위치는 이제 배터리가 거의 닳아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체력은 다시 재충전되고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 때가 가장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좋은 순간입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안입니다.
현재 야간비행이지만 이미 아이들은 체력을 회복하고 심심해 옴싹달싹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 선생님인 제가 먼저 펜과 노트를 꺼냅니다.
그리고 싶은 이미지를 먼저 그립니다.
"어 선생님, 뭐해요?"
아이들의 눈빛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나 둘 "나도 그리고 싶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아이들은 그리기를 거의 하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학원 특성상 만들기가 대부분이고 아이들도 만들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부모님께서 보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좁은 기내에서, 모든것이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즐길거리를 찾습니다.
이 때 그리기는 굉장히 좋은 집중력 도구입니다.
미니 팔레트를 펼쳐봅니다.
이쯤 되면 대부분 아이들이 자신도 그리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자그마한 노트와 연필로 집중해서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 만큼은 선생님으로서 굉장히 뿌듯한 순간입니다.
흔히 우리 어린시절, 억지로 그리기 싫은데 그려야 했던 학창시절이 있을 겁니다.
그냥 놀고 싶은데, 아님 그리기가 너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아무거나 그려야만 했던 시간이 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던 모습은 없었습니다.(물론 학교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이 먼저 그림을 그리는 순간, 누구의 압력도 없었는데 아이들은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좋은 종이에 그리고는 상관 없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집중해서 오늘 본 풍경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집중과 학습이 됩니다.
만약 기내에서도 그냥 게임이나 영화를 봤다면 자신이 본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스마트폰에서 본 멋진 장면을 따라 그리기도 합니다.
이것도 좋은 현상입니다. 단순한 이미지 소비가 아니라 관찰과 집중이라는 과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관찰과 집중은 곧 기억력의 향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기억은 해마에서 탄생합니다. 정확히는 해마에서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냅니다.
이때 장기기억으로 선택될 수 있는 자격은 '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즉, 집중의 시간입니다.
오랜 시간 집중한 것은 '중요한 것'으로 판단해 장기기억으로 넘깁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단기기억으로 넘겨지고 대부분 사라집니다. 많은 경우 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 자극적이지만 너무나 많은 컨텐츠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먹은 점심은 잊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_-)
일단 인터넷이 강제로 차단된 것 자체가 굉장한 기회입니다.
그리고 옴싹달싹 하지 못하는 것도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한 좋은 자세(?)입니다.
이럴 때 게임을 하며 신기록 점수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그림을 그려보며 집중하고 관찰하는 학습을 하는 것도 굉장히 좋습니다.
그럼 무엇을 그려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대상은
1. 공항에서 찍은 비행기 사진들
->남자아이들이 특히 좋아합니다. 비행기 꼬리만 보고도 어떤 모델인지 아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2.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게임 캐릭터라고 해서 전혀 문제될게 없습니다. 중요한 건 관찰력과 집중력이지 대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됩니다.
3. 여행지에서 볼 예정인 건축물
->상당히 좋습니다. 여행 책자나 미리 저장한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어 놓고 부모님이 먼저 관찰하고 그려보면 굉장히 좋습니다. 아이들도 옆에서 그려보고 나중에 실물을 보면 사진에서 본 특징을 발견해 보면서 좋은 학습이 됩니다.
그 외에도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기내의 모습, 기내식, 비행기의 문 손잡이, 수도꼭지... 기내의 특이한 형태의 물건들을 그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못그리고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특정한 순간에 얼마나 집중해서 관찰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관찰 능력이 나중에는 무엇을 할 때도 대충 보지 않고 세밀하게 보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 선생님이 먼저 해야 합니다.
(계속)
p.s 기내에서 그림 그리기는 이전 브런치에 좀 더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기내에서 그림을 그리다(1)
https://brunch.co.kr/@gys3888/17
기내에서 그림을 그리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