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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Aug 08. 2021

엄마와 여행하며 짜증낸 이야기

코로나, 지루한 삶이 시작되었다.

작년 2020년 1월, 제주도 여행을 했다. 그 당시 뉴스란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생(?)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물론 그 당시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2월, 뉴스에서 코로나 관련 기사가 점점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친구가 '야, 우리 대만놀러 갈까?' 라고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1월에 이미 제주도로 여행에 대한 욕구가 한번 풀리니 괜히 피곤해서 "나중에 가자" 라고 말했고 지금도 그 말을 후회합니다. 그 이후로 다른 나라에 여행할 기회는 지금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생활이 극도로 단순해졌습니다. 직장 집, 아주 가끔 소수의 모임. 친구들과의 만남도 부담되어 1차로 만나고 2차는 꿈도 못꿉니다. 아동 미술 선생님이라는 직업 특성상 더 예민해 져서 사람 많은 곳 자체를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 자체가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 휴가 때 큰 맘먹고 호캉스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데도 가지 않고 괜찮은 호텔에서 푹 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집에 계신 어머니를 봤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광화문에서 문화해설사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실 분이었지만 코로나로 모든 것이 막혔습니다. 그저 일하시는 카페, 집, 카페, 집... 그리고 TV와 유튜브... 내 삶도 지루했지만 그래도 다양한 온라인 통로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렇게 지루한데 어머니는 얼마나 재미 없을까.'


이 생각으로 넌지시 함께 여행하자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몇번 '너 즐겁게 다녀와라' 라고 거절하셨지만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적 한번 가본 경주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고 계속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한번 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참고로 한여름의 경주는 굉장히 더워 결코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봄, 가을 추천)

어머니와 나란히 걷는 건 은근히 쉽지 않다. 

-어머니와 단 둘이 여행을 한지 거의 8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나이도 65세 이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한번 부산에 갔을 때는 어머니는 신나게 걷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제 기억은 그 때의 어머니에 머물러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와 나란히 걸었다면 지금은  조금만 빨리 걸어도 바로 뒤쳐지고 제가 천천히 속도를 맞춰서 걸어야 했습니다. 매일 보는 어머니이기에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함께 여행하기 보다는 '모시며' 여행하는 쪽에 가까워 지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는 것은 꽤 많은 집중이 필요합니다. 조금만이라도 내 생각에 빠져 걷는 순간 어머니는 뒤로 가버립니다. 최대한 숨을 들이키고 보폭과 속도를 어머니께 맞춥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휠체어에 할머니를 모시고 걷는 가족과 마주칩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계속 베풀고 싶어하신다.

이게 여행하면서 제일 화(?)가 나고 짜증났던 부분입니다. 자식으로서 아주 좋은 호텔은 아니지만 리조트를 예약해 드리고 모든 여행에서 최대한 편하게 이동하고 맛있는걸 사드려도 계속 돈을 내시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계속 "너무 비싸다" "너가 정말 돈을 많이 쓰는구나" 하면서 최대한 싼 것을 드시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이 점이 제일 짜증이 납니다. 아무리 맛있는걸 사드리려고 해도 계속 먼저 돈을 내십니다. 이점이 싫지만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예전에 지인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아무말 없이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 들렸다 간 것에 대해 굉장히 서운해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뭐 자식에게 부담되지 않으려고 그러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인은 저에게,


"나중에 네가 나이들어보면 알거야. 부모님이 자식에게 아무말도 안하고 혼자서 병원 들렸다 내려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충분히 베풀고 싶은데, 잘해드리고 싶은데 정작 부모님에게는 자식에게 부담되는걸 싫어합니다. 자식은 '내가 능력이 없어 보여서, 돈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매번 식사를 해도 "너 많이 먹어" 하면서 본인은 자꾸 싼 반찬이나 리필되는 전을 먼저 배불리 먹는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신경질이 났습니다. 차라리 완전한 타인이라면 서로 덜 불편할 텐데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제가 의지하고픈 상대라기 보다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라는 그 감정 자체가, 제 자신이 덜 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좀 먹으면 안돼?”
“그냥 좀 받으면 안돼?”
“제발, 그냥 좀 미안해하지 말고, 부담갖지 말고 당연하게좀 받아줘”

어머니께 너무나 하고 싶었던, 하지만 할 수 없었던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 천국이 존재한다.

한여름의 경주는 정말 정말 너무나 덥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름에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너무나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안압지, 포석정… 참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예전에 봤던 것들이라 밋밋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벌써 30년도 더 된거 같다. 너 어릴때 왔었는데 너무 좋다” 라고 하시면서 어린아이처럼 이곳 저곳을 봤습니다.

저는 기억도 안나는 과거지만 어머니는 “세상에 저 돌다리가 저기였구나. 지금보니까 엄청 작네” 라고 하시면서 곳곳을 둘러보며 과거의 데이터와 동기화를 했습니다. 


어머니와 최고의 대화 콘텐츠는 ‘어린시절’ 입니다.

막상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여행을 오니 처음에 할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제외하고 뭔가 재잘재잘, 딸처럼 살갑지도 장남처럼 듬직한 아들도 아닌 그저 어리광부리고 철없는 막내의 모습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불국사를 둘러보면서 제 어린시절을 물어봤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계속 말해주셨습니다.

여행지 어디든 제 어린시절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 때 나는 저기서 뭐하고 있었어?” “그때 형은 뭐하고 있었어?”

자식들은 스마트폰으로 맛집이나 관광지를 검색하는데 능숙합니다.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스마트폰 검색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그저  을의 입장에서 기다리는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면 정보의 갑과 을은 뒤바뀝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제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 내가 어릴 때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혹시나 부모님과 여행지에서 대화할게 없다면 어린 시적을 꼭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한여름에 경주를 가신다면 밤길을 꼭 걸으세요.

지난 2년간 계속 혼자 경주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름밤의 경주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절대로 오래 있지 못합니다. 황리단길 = 황천길 입니다. 

하지만 노을이 지고 밤이 되면 경주의 숨겨진 모습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경주는 밤에 찬란한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유적지에 조명을 잘 설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쪽샘유적지입니다. 아직은 계속 조사중인 지역이지만 그곳도 조명으로 길을 잘 마련해 놨습니다. 2년 전 야간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했을 때 별 생각없이 걷고서 반한 곳이었습니다. 마치 눈 앞에 별천지, 별빛 바다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어머니와 함께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고요하면서도 무덤(?)들이 있어도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잔잔한 노란 조명, 고즈넉한 분위기, 이따금 산책하는 관광객들, 이 모든게 완벽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행 내내 효자는 커녕 못난 아들 역할만 톡톡히 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또 언제 올지 모르니 더 보고 싶다” 라며 많은 곳을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나중에 가을에 잠깐이라도 다시 들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만약 더 여유가 되었다면 더 좋은 호텔에, 더 맛있는 곳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르고 있다는 것과, 그에 발맞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도 빠르게 흐르는 걸 경험했습니다.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단순해지고 반복적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즐길것이 그래도 많지만 부모님 세대는 많지 않습니다. 혹시나 부모님(또는 편부, 편모)과 여행을 계획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제 글이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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