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의 알고리즘 밖으로, 낙관의 의지를 믿으며

확증 편향의 덫

by 규쌤

역삼동 '안목'에서 컨텐츠 기획자이자 인터뷰어로 활동하고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작년 성수동에서 보았을 때 그는 꽤 지쳐 보였다. 당시에 관심사나 정치적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에 심리적 거리감마저 느꼈는데, 다행히 이번 만남은 달랐다. 우리는 꽤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간 그에게는 꽤 많은 일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런베뮤(런던 베이글 뮤지엄)' 이슈 당시 대표를 인터뷰했다는 사실 만으로 뭇매를 맞았고, 회사의 주요 수익원인 한 채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친구가 인터뷰 영상을 내리고 해명 글을 올렸을 때, 수백 개의 댓글과 메일이 쏟아졌다고 했다. "왜 굳이 대응하느냐"는 질책부터 "구독을 취소하겠다"는 비난, 그리고 변함없는 지지까지. 친구의 채널의 구독자들은 대체적으로 지적인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인데, 같은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조차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너무나 다르게 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악플러들을 '키보드 워리어'라 치부하고 넘겼겠지만,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AI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심취하다 보니, 내 머릿속은 온통 부정적인 전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확증 편향이 만들어낸 공포는 실로 무서웠다.


친구도 역시 한때는 AI의 발전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자극적인 숏폼과 AI가 찍어내는 영상들의 무의미한 디지털 공해 속에서, 자신이 진짜 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했다. 잘될지는 모르지만, 잘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APR의 김병훈 대표는 "사업은 신념의 영역"이라 했다. 근거가 없더라도 잘될 것이라 믿어야 나아갈 수 있다고. 일론 머스크 또한 "비관적으로 맞기보다, 차라리 낙관적으로 틀리는 것이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삶을 지탱하는 건 데이터가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비관 역시 진실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프레임이다. 그 차가운 안경을 쓰고 세상을 냉소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 석기시대에도,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통에도, 여러 경제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할 일을 했고, 그 사이사이 행복을 느끼며 살다가 떠났다. 그러니 불안에 떨기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원치 않는 생각들을 주입하는 SNS와 미디어를 잠시 멀리하려 한다. 대신 좀 더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통찰력 있고 밀도 높은 콘텐츠를 직접 찾아 나설 생각이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기보다, 내 의지로 걷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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