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
'오직 불행한 사람만이 행복의 존재를 확신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 스스로 받아들인 의미는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나의 불행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또는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조차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자체도 반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문득 그래도 어떤 삶이 좋은 삶일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수전 울프가 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녀의 강의, 그 강의에 대한 논평, 논평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 그것이다. 우선 그녀의 강의에서는 '의미있는 삶'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수전 울프는 실천이성의 이원론적 입장은 사람의 행동 동기가 자기이익을 위해 행동하거나, 도덕성을 좇아 행동한다는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의 다양한 동기들을 배제한다고 반박한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을 위해 헌신한다거나, 도덕성과 무관하게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 목표를 좇아 몰두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어떤 대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이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행동에서 지루함이나 소외감을 느낀다면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아무리 열정적으로 몰두하더라도 마약처럼 가치가 없는 대상이라면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수전 울프는 의미 있는 삶이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추구하되, 객관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삶의 의미는 '주관적인 이끌림(subjective attraction)'이 '객관적인 매력(objective attractiveness)'을 만났을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네 명의 학자들이 논평을 한다. 첫 번째로 시인이자 철학자인 존 쾨테는 "무모한 열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수전 울프의 주장이 다소 결과주의적이라는 것에 대해 지적한다. 예를 들어 화가 폴 고갱은 덴마크에 가족을 버리고 예술을 위해 파리로 건너왔는데, 고갱이 아무 재능이 없는 예술가였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곱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가의 시선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열정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낭비에 불과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수전 울프와 같은 대학 교수인 로버트 애덤스는 "뭔가를 성취해야만 삶은 의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앞서 말한 존 쾨테와 비슷한 맥락에서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다가 실패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삶에도 위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을 얻을 수도 있는데 이는 수전 울프가 중요하게 말한 '성취감'과는 거리가 멀다.
브라운대학교 철학과 교수 노미 아르팔리는 "객관적인 가치를 담아야만 의미있는 삶인가"라는 반박을 한다. 울프 교수는 의미가 없는 삶의 예시로 일생을 금붕어를 돌보는 데 몰두하거나 퍼즐을 푸는 데 몰두하는 삶을 들었다. 노미 아르팔리는 여러 질문을 던졌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데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능 발달이 늦은 아이가 금붕어를 보살피면서 성취감을 얻는다면? 최고의 가치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뉴욕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는 '중대한 관여'와 '벌집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준다. 그는 승마에 푹 빠진 여학생을 예로 들며, 말을 타는 행위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도 아니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도 아니라는 점에서 시시포스가 바위를 끊임없이 옮기는 행위와 다를 점이 없지만 중대한 관여 (vital engagement)를 함으로서 그녀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했다. 또한 자기의식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아의 개념은 17-18세기 서양에서 태동했으며 꿀벌처럼 사람은 초사회적인 존재로서 집단 속에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수전 울프는 논평에 대한 답변을 하는데 그녀의 강의와 같은 맥락이라서 생략했다. 본질적으로 철학책이다보니 읽는 동안 다소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논의, 예를 들면 '객관적인 가치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와 같은 물음 때문에 다소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입장에서 '삶의 의미'의 '의미'에 대해 굉장히 진지하고 세심하게 논의를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고 실제로 토론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하고 싶은 일을 할지, 잘하는 일을 할지, 해야 하는 일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중이었는데 책 덕분에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삶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전한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