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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늼 Feb 06. 2017

03. 이력은 심플 이력서는 화려

생애 처음으로 취준생이 되었다.

02. 그만 둘 줄 알았더라면 (이어서)


0.

노는 건 참 좋다. 좋게 노는 건 더 좋다. 나는 착하고 좋게 잘 놀았다. 천성이 착한 건 아니고, 세상 모든 운이 내가 나쁘지 않게 가지치기를 해줬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처음 간 클럽에서 흑인 분들과 싸우지 않았다면 난 클럽 죽돌이가 됐을 것이다. 춤이 좋으니깐. 대충 이런 운들이 많다. (그렇다고 잘 놀았다 얘기하기엔 어중간하다.) 그렇게 이력서를 쓰다 보니 나의 이력서는 쓸데없이 화려했고 영양가 있는 이력은 부족했다. (뭔가 쓴건 많은데 재미는 없다) 이걸로 이직한다면 기적에 가깝다. '이력서를 다시 써야겠다' 싶었다. 


01.

이력서는 어렵다. 나는 원래 글쟁이가 아니었다. 발로 뛰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놀이 대장이었다. 공만 있으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재미지게 놀 줄 아는 놀이대장이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나를 남기기 위해서 글을 써야만 했다. 글을 쓴다고 샌님이란 뜻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 놀이 대장일 때가 귀엽고 쿨했다고 생각이 든다. 뭐 아무튼 19살 때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22살 때는 학점 잘 받으려고, 27살에는 좋은 회사에 가고 싶어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글 쓰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은 정말 쓰기 쉽다. 지금처럼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그대로 옮기면 된다. 말로 생각을 내보내는 것은 쉽다. 내보낸다기보다는 거의 뱉어내는 수준이니깐.


하지만 이력서는 어렵다. (일단 뭔가 더 정리 할 게 많다) 이건 생각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잘 정제해야 하고, 세밀하게 생각하고 수를 계산해야 한다. 단점은 장점이 되고 강점은 약점이 된다. 그만큼 공을 들인다는 뜻이다. 헌데 문제는 공을 들이다 보면 글이 산으로 간다는 점이다. 이력서에는 나의 모든 부분을 담아낼 수 없다. '적합성'이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와 가장 적합한 나의 특성을 최대한 이끌어 낸다. 문제는 나의 작은 특성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결국 내가 끄집어낸 나의 작은 특성 즉 '그것이 정말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가?'라는 것인데, 실제로 글을 쓰다 보면 이런 갈등에 부딪혀서 글 진행 자체가 멈추게 된다.


오늘은 이 순간적인 멈춤에 의해서 스턴 상태 (*순간적인 마비, 아니 거의 뇌의 기절)가 찾아온 김에 글을 쓴다. 어렵다. 무슨 말로 이걸 더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어려운 건 앞서 얘기했다시피 나를 담아내는 단어를 선택하고 글을 풀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한껏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아닌 나를 설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이 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이 글을 쓴다 한들 면접관은 나를 모르겠구나...'라는 자괴감과 설령 말도 안 되게 붙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야 하나...'라는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02.

이전 직장에서는 근무를 하면서 수많은 아르바이트 친구들을 만났었는데, 그 친구들을 선발하면서 '사람을 보는 기준'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개인적인 기준을 세웠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인간됨과 책임감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사람을 뽑는 것만큼 뽑히는 것에도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다. 헌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에 대한 기준이 있었지 '최대한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은 안 해봤다. 아르바이트야 말 그대로 시간에 대한 노동이었다. 그 시간을 극대화하고 쥐어짜는 듯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하고자 하는 일은 다르다. 마케터는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이어야 하고, 퍼포먼스를 극대화해야 한다. '최대한의 나'를 끄집어내야 한다. 자신감이 하락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알고 있던 게 아닌 게 되는 순간은 한순간이었다. 


결국 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적합성과 나다움의 경계에서 나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잃은 자신감 대신에 자존감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해봐라. 지금은 굉장히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내가 사회초년생이며 약자인 것은 확신할 수 있으나 나에게도 선택권은 있다. 어쩌면 좋은 '회사'라는 매물들을 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게다가 나는 이전에 직장을 다니지 않았나?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다고 어쩌면 나는 좋은 고기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몇 가지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전보다는 정보를 찾는 능력과 양이 많아졌다. 또한 나에게 들어오는 제안들의 수도 이전보다는 곱절로 많아졌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전보다 마음이 여유롭다. 25살이 되던 해 나는 마치 19살과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줄만 알았던 바로 그 시기. 나는 재수를 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세상이 무너지고 내 방이 하루 종일 지진 날 줄만 알았다. 25살 때도 그랬다. 졸업을 했는데 취직을 못하면 설날에 친척 집에도 못 갈 줄 알았다. 근데 막상 겪어보니 별 거 없었다. 아무도. 단 한 명도 그런 거에 신경 안 썼다. 어차피 내 인생이다.


03.

그래서 나는 이 어려운 이력서를 쓰면서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아니 아직도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작성 중이니, 그래야겠다. 비록 폰트와 레이아웃에 흔들릴지언정 내용을 작성할 때만큼은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아야겠다. 어쩌면 내가 스턴 상태에 걸린 것도, 글을 작성하는 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런 다짐이 부족해서였지 않을까 싶다. 쓰기 싫은 것도 한몫을 했겠거니와 익숙하지 않은 글 쓰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마 이런 다짐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싫고 어렵다고 꼭 안 하지만은 않았다. 싫고 어려워도 공부했었고, 싫고 어려워도 내가 먼저 용기 내서 고백도 했었다. 내가 먼저 방귀 뀌었다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난 놀이 대장이었다. 이미 어릴 때부터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가 꿈이었던 나는. 놀면서 성장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놀면서 공부하기를 연구했다면 진작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건 불가능하니깐. 하지만 놀면서 성장은 가능하다. 나는 수다 떠는 게 좋았다. 글 쓰는 것은 어렵다. 수다 떨 듯이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글 쓰기는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공은 못 가지고 놀았지만 차선으로 좋아하는 수다는 떨었다. 포트폴리오는 다 못 만들었지만, 아직 밤은 남아있다. 작성법에 대한 기준은 못 세웠지만, 작성해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 만들었다. 



끝.


04. 면접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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