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biny Jun 05. 2020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상하이편-11월 셋째 주

인턴을 시작한 지 두 번째 주가 되었고 그가 여행에서 돌아온지도 두 번째 주가 되었다. 11월 초의 변화는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아침 지옥철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도, 나의 하루에 “Leon”이라는 존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오히려 지하철 속에서 내 몸이 편안하면 혹시 늦은 건가 하고 시계를 확인하고 하루라도 그를 못 보면 무척 아쉬워졌다.


그 와중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다. 저번 주부터 시작된 감기로 기침이 떠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상하이는 한국보다 비교적 따뜻한 기후라 난방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전기장판 없이, 보일러 없이 찬바람이 들어오는 내 방에서 자다 그만 감기에 걸려버린 것이다. (18년도 겨울은 지금까지 내 생에 가장 몸이 안 좋았던 시절... 그래도 행복했지만) 빨리 낫고 싶다.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아프고 머리도 울리고 기운이 없다.

그날은 리온이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혼자 쉬려고 하다 그가 돌아와서 만나자고 했다.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데리러 온다고도 했고 혼자 자면 추우니까 리온이를 끌어안고 자면 좀 더 따듯하겠지 라는 생각에 만나러 갔다.


그 밤부터 감기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기침이 더 심해졌고 열도 나기 시작했다. 4시가 되도록 계속 기침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리온이도 내가 걱정돼서 잠을 못 이루겠다고 한다. 결국 다음 날은 출근을 쉬기로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기침을 심하게 하면 혹시 코로나인지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됐는데 이 일기는 18년도에 적은 거니까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건 아니지만 그동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나는 하루 종일 힘이 없었다. 그가 밥을 먹으러 나갔다 내가 먹을 샌드위치를 포장해왔다. 입맛이 없어서 한입 두입 먹고 그만두었다. 같이 누워있다 어느새 서로를 끌어안고 잠들어 버렸다. 평일 오후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편히 낮잠을 자다니! 아파야 결국 얻게 되는 조그마한 행복인 건가. 아픈 것도 나쁘지 않군, 콜록콜록콜록...

사무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후의 여유로운 빛


일어나 서로를 껴안고 장난치다 느지막이 병원에 갔다. 그가 같이 병원에 가줘서 고마웠다. 가는 길에 독일의 병원 시스템에 대하여 얘기해줬는데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어디나 영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리온이는 중국의 병원 시스템은 과연 어떨지 궁금해하는 중이다. 타지에서 아프면 참 서러워진다는데 서러웠고 중국 병원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병원을 나가기 전에 결제하는 한국과 달리 진료하기 전에 결제하고 피검사하기 전에 결제하러 가고 결과지 받기 전에 결제하고 약 받기 전에 결제하러 갔다. 돈을 낼 형편이 안된다면 그다음 단계는 바로 스탑이다. 중국의 자본주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나는 이러한 병원 프로세스를 몰라서 조금 긴장했었다. 중국어 하나도 모르는 리온이라도 곁에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약을 처방받고 돌아오는 길에 죽을 사서 먹었다. 그 날부터 리온이는 매일 밤 자기 전에 1층으로 내려가 물통에 뜨거운 물을 담으러 내려갔다. 나보고 따뜻한 물통을 끌어안고 있으라며. 그는 그 일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굉장히 뿌듯해하고 즐거워 보였다.

시간이 다르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회사는 빨리 퇴근했으면 좋겠고
이 프로그램이 어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계속 아파서 그런지 멘탈이 약해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면
그 와의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거다
그와의 시간은 최대한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그래 그럴 거면 영원과 같은 현재를 즐겼으면 좋겠다


상하이의 겨울 느낌쓰
매거진의 이전글 Are you mi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