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를 성찰하면서 떠오른 말이다.
"골드형 인간"
일단 골드가 주는 이미지만큼 좋은 뜻은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 어중간한 재능은 오히려 저주와 같다고. 내 삶이 전반적으로 그랬다. 무얼 하든 쉽게 보통 이상의 성적과 성과를 낸다. 하지만 성장이 안 된다. 마치 굳어있는 금처럼 말이다. 언어는 감정에 색칠을 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했던가. 이 말을 떠오르기 전까진 인지하고 못했지만 "골드형 인간"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정립하자마자 정말 신기하게 내 삶 모든 부분이 이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고등학교때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할 때였다. 나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냈다. 한 친구는 내게 13연패 가까이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게임이 힘들어지고 버거워지더니 기어이 그 친구에게 패배하고 교내 순위에서 최하위권을 달성했다. 열심히 했냐고 묻는다면 열심히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안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 하는만큼 했다. 근데 뒤쳐졌다. 이것이 나를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스타 뿐만이 아니다. 기타를 쳤을 때도, 롤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별다른 노력 없이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근데 그게 끝이다. 이 단어의 어원이 "골드형 인간"이 된것도 그 이유이다. 요즘 게임들의 티어에서 골드는 "잘하긴 하는데 어중간함", 혹은 "잘 하는 건 아닌데 어떻게 하는 줄은 앎"이라는 포지션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취미로 끝나면 얼마나 다행일까. 요즘엔 직업적으로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모든 게 어렵다. 모든 게 생소하다. 아는 게 없는 느낌이다. 잠깐이나마 "내가 프로그래밍을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냥 하찮은 개미새끼였다. 개미새끼... 개미새끼니까 열심히 기어야겠다. 엉금엉금 꾸물꾸물.
어쩌면 앤서니 웰링턴이 말한 의식의 4단계 중 3단계, 의식적 지식 상태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의식적 지식 상태는 자신의 일을 파악하고 이론을 습득한 단계인데 지식은 너무 많고, 부족한 점은 너무 잘 알고, 그래서 고통스러운 단계라고 한다. 사실 의문이라기보단 그런 상태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이다.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모습을 보면 그냥 이 어중간한 상태가 유지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지 않기 위해 발버둥은 치고 있지만 발버둥으로 끝날지, 골드라는 어중간한 껍데기를 깨고 우화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이 과정과 생각 그 자체가 굉장히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