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때문에
영화 내내 정영희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얼굴이 만들어진다. 괴물 같았다.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차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102분 동안 관객은 이 증언들을 들으며 나름대로 영희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진이 공개된다.
별거 없다.
약간 못생겼을 뿐인, 그냥 평범한 얼굴이다. 동환은 그 사진을 보고 운다. 이 울음의 의미가 뭐냐는 건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갈리는 지점일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자책, 혹은 아버지와 닮은 자신의 얼굴에서 느끼는 서글픔. 다 말이 된다. 근데 내가 느낀 건 조금 달랐다.
고작 이것때문에?
영희의 인생이 그 모양이 된 이유가 고작 저 얼굴 때문이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허탈함.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했다. 차마 못 보겠다고 했다. 근데 실물은 그 정도가 아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혐오는 어디서 온 건가.
순수하게 외모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영희는 모자란 사람이었다. 지능이 낮았고, 눈치가 없었고, 말투가 어눌했다. 성실하긴 했는데 그 성실함이라는 것도 도를 지나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워 옷에 변을 지릴 정도였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외도를 동네방네 말하고 다녔고, 공장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은 종이에 일일이 적어서 여기저기 돌리고 다녔다. 대자보까진 아닌데, 그 경계가 애매한 어떤 것. 본인은 아마 고발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받아보는 쪽에서는 미친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피해자가 오히려 영희 탓을 하기도 했고.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다. 사실을 말한 것이다. 근데 사실을 말하는 것과 그 사실이 받아들여지는 것 사이에는 냉정하게도 화자의 사회적 위치라는 변수가 끼어 있다.
사람은 자기보다 못났다고 은연중에 판단한 상대의 말에 대해서는 내용과 무관하게 거부감을 먼저 느낀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조언이 되기도 하고 주제넘음이 되기도 한다. 영희가 한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건 사실이었고, 공장에서 벌어진 일도 사실이었다. 근데 그걸 말한 사람이 영희였다는 게 문제였다. 모자라고, 어눌하고, 거기에 못생기기까지 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어떤 공감대도 갖기 싫은 존재. 영희의 바른 말은 바른 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오히려 영희라는 사람 전체를 더 밉게 만드는 재료, 아니 명분이 됐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에서 이 혐오가 시간이 지나면서 외모로 수렴했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싫어할 때 그 이유를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 싫어?" 물어보면 복잡한 감정을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가장 눈에 보이는 것, 가장 반박하기 어려운 것으로 치환한다. 영희의 경우 그게 얼굴이었다. 모자란 성격, 눈치 없는 행동, 거기서 오는 불쾌감. 이 모든 게 "못생겼다"는 한 단어로 함축된 것이다. 그러니까 영희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괴물 같은 얼굴은 실제 영희의 얼굴이 아니라, 영희라는 사람 전체에 대한 혐오가 얼굴이라는 하나의 기표에 응축된 결과물이다.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메커니즘은 늘 작동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한번 부정적인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그 사람이 뭘 해도 안 좋게 보인다. 같은 실수를 해도 어떤 사람은 "그럴 수 있지"가 되고 어떤 사람은 "역시 저 사람은"이 된다. 한번 형성된 기류는 그 사람 주변에 일종의 중력장처럼 작용해서, 이후의 모든 행동과 말과 존재 자체를 그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영희에게는 그 중력장이 40년 동안 작동했고, 죽어서 백골이 된 뒤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영희가 똑부러진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자기가 보고 겪은 것들을 적당히 함구하고, 소위 "분위기"라는 것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단순히 "좀 못생긴 사람" 정도로 치부되고 끝났을 것이다. 비극적인 인생을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근데 영희는 그런 유도리가 없었다. 보이는 대로 말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했다. 그게 모자람이었는지 올곧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 보여준 건, 공동체에서 유도리 없이 솔직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자본에 비례해서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동환의 울음은 그래서 더 무겁다. 40년간 괴물이라고 불린 여자의 얼굴이, 죽어서까지 놀림당하고 혐오받고 사지불구가 된 성폭력 가해자한테도 모독을 당한 나의 어머니가, 지금의 동환보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된 이유가 고작 이것 때문이었나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