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년을 마주하다
<해변의 카프카>는 내가 접한 하루키의 작품 중 4번째 작품이며, 소설 중에는 3번째 작품이다. 연대순으로 읽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이끌리는 대로 읽게 됐다.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미레가 말한다.
"내가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어."
<해변의 카프카>에서 카프카 군이 여긴 도대체 어딘지 모르겠다며 궁금해하자 사쿠라가 앞선 두 작품과 카프카 군이 던진 모든 질문에 답한다.
"어디라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통과하는 지점에 불과하니까. 이쪽에서 이쪽으로 말이야. 장소의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런 것에 의미는 없어.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가 아닐까? 안 그래?"
매우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읽는 순서 따위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해변의 카프카>가 나를 선택한 것일지도. 책을 선택해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에서 하루키는 오시마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바꿔 말하면, 그 작품이 너를 발견한 셈이지."
그렇다면 <해변의 카프카>는 왜 나를 선택했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명료했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말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카프카 군은 하루키 자신이자 동시에 독자 이기도 했다. 카프카 군은 자신의 여정을 통해 나에게 수없이 속삭였다. '내가 너고, 네가 나다.'라고. 주인공 카프카 군뿐만 아니라, 나카타와 호시노까지 모두 나였다. 그들의 삶엔 내가 녹아 있었고, 내 삶엔 그들이 녹아 있었다. 텅 빈 거울을 보며 꽉 채워지는 아이러니의 향연, <해변의 카프카>. '나의 글, 나의 인생' 매거진 2화부터는 <해변의 카프카>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게 된 나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려 한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 그는 열다섯이다. 하지만 결코 열다섯의 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녔다. 한 예로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으로 표현되는 내면의 또 다른 자아를 소환해 끊임없이 대화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루키는 '열다섯 살 소년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것은 그들이 아직은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존재이며, 그들의 정신 상태가 한 방향으로 고착돼 있지 않다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난 카프카 군을 보며 열여섯의 나이에 멈춰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는 순간적으로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어린 날에 머물고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하루키의 말은 그런 날 안심시키고 진정시켰다. 난 아직 한 방향으로 고착돼 있지 않을 뿐,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존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이 마흔둘에 열다섯의 카프카 군을 만난 후 '왜 나는 열여섯의 나이에서 더는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있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딘가에 적어 내려가며 정리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다섯 생일날, 카프카는 가출을 단행한다. 아버지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을 떠나 자신을 채워 줄 어딘가로 향하기 위해. 오시마를 통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카프카 군은 말한다.
"이렇게 돼서 유감이라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오히려 유감인 것은 좀 더 일찍 죽어 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카프카 군과 나를 정확히 일치시킨 지점이다. 그리고 내가 열여섯에 멈춰 서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없어져버렸으면 했던 아버지. 그가 마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난 슬프지 않았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만일 결혼을 하더라도 난 아마 아이는 낳지 않을 거야. 내 아이한테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모를 게 틀림없으니까."
사쿠라에게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카프카 군이 건넨 이야기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내가 아이를 바라면서도 온전히 바랄 수만은 없었던 그 이유와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유전자뿐이라고 말하는 카프카 군도 그 피의 힘을 절대 얕잡아 볼 수 없다 직감했던 것 같다. 대체 이 아이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 왜 나와 같은 생각,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사쿠라는 카프카 군의 아버지가 외계에서 온 것 같다 말하지만, 내게는 카프카 군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고 여겨졌다. 책 밖 세상에 살고 있는 나와 겹치는 점이 너무나 많다는 이유로.
하지만 겹침은 거기까지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카프카는 어려워도 힘들어도 끝까지 나아갔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 뒤 현실 세계로 아주 멋지게 귀환한 반면, 난 열여섯 그때의 나로 멈춰서 있었으니까.
왜 나는 열다섯의 카프카를 보며 내가 열여섯의 나인 상태 그대로 멈춰 서 있다 느꼈을까?
왜 나는 세상을 살아갈 충분한 힘을 갖지 못했나?
왜 나의 성장은 더디기만 한 것인가?
"거울 보듯 한 삶이 텅 빈 나를 풍요롭게 하니, 오 난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깨우친 것 같아."
래퍼 김하온의 노래 'ADIOS'에 나오는 가사다.
카프카 군은 나를 자신에게 이입시킨 것으로 임무를 마친 것이 아니었다. 그를 거울삼아 들여다보며 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와준 것 역시 카프카 군이었다.
카프카 군은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마주하고자 계속해서 가설을 세운다. 유효한 반증이 발견되지 않은 가설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결국 깨닫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안쪽이고, 위협처럼 보이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공포의 메아리라는 것을.
"거기에 쳐진 거미줄은 내 마음이 쳐놓은 거미줄이고, 머리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은 내가 기른 새들이다. 그런 이미지가 내 속에 생겨나고 뿌리를 내려간다."
그 깨달음을 통해 카프카 군은 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나침반을 버렸다. 손도끼도 내동댕이쳤다.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할까 봐 지나온 길을 표시하고자 지녔던 스프레이도 던저벼렸다. 자신을 단단히 봉인되어 있는 중요한 친서를 지닌, 스스로를 위한 밀사라고 여기며 앞만 보고 나아갔다.
난 내가 길을 잃은 줄로만 알았다. 방향을 잃고, 목적지를 잃고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카프카 군이 내게 알려주었다. 나침반이 없어도, 손도끼가 없어도, 돌아갈 길을 표시하며 나아가지 않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길 위에 서있는 것이라고.
옆에서 오시마 씨가 거들고 나섰다. 불완전한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고. 그리고 아주 만약 내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조금도 어김없는 나인 거고, 나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라고. 나는 나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본질이 껍데기고 껍데기가 본질이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 내가 구성되는 과정 자체가 나일 수 있다. 본질이든 껍데기든 내가 어떤 것으로 어떻게 구성되더라도 내가 나라는 정체성은 변함이 없다. 내가 나로 되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진짜 나'인 것이고, 그래서 난 오시마 씨의 말처럼 '조금도 어김없는 나'이다.
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존재이다.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그 상태 그대로 작품이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통해 느리게 성장하더라도 확실함이나 명확함 보다 질문을 소중히 여기는 자, 자신을 드러내어 강함을 내뿜는 자들보다 내면 깊은 곳에 남겨져 진리를 탐구하려는 자가 더 '진짜'에 가깝다 말한다. 진지하고, 내면을 갈고닦으며,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이해해야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외롭고 험난한 과정이지만, 이 길을 묵묵히 나아가 길 끝에 다다라서야 다른 누군가의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카프카 군이 내 발밑을 비춰준 것처럼.
하지만 성장했다는 느낌은 무뎌짐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오만과 편견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읽고, 울고, 질문하며 섬세하게 나아가고자 한다. 내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까마귀의 날개는 더 커질 테고, 내 안에 존재하는 울창한 숲 속에 나를 향한 길이 보이게 될 테니까.
written by 규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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