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나 (2)

#2 텅 빈 나를 마주하다

by 박이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명 주인공을 열다섯의 다무라 카프카 군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극 중 카프카 군의 성장을 이끄는 사건의 중심축엔 나카타와 호시노의 여정이 있고, 이 둘 없이는 이 작품을 온전히 말할 수 없다. 매거진 <나의 글, 나의 인생> 3화는 이 두 명의 인물 중 하나인 나카타를 통해 돌아본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 텅 빈 나를 마주하다


"나가타는 글씨를 읽지 못합니다."


"나카타는 머리가 아주 나쁩니다."


"나카타는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


예순이 넘은 아저씨, 나카타. 그는 마을 주민이 의뢰한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일을 한다. 물론 직업은 아니다.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기에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다. 그의 말투는 어눌하면서도 어딘가 좀 이상하다. 상대의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경어를 쓰며, '나' 또는 '저'가 아닌, '나카타'라는 자신의 이름을 주어로 사용한다.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번에 알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한 아저씨'라는 짙은 느낌과 대비되는 점도 있다. 그건 바로 그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의 반쯤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주인공 카프카 군과 나의 접점이 아버지였다면, 나카타와 나의 접점은 '폭력'이 될 것이다. 나카타는 수재라 여겨지던 총명한 학생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비어있었다. 밥공기 산(엎어놓은 밥공기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붙은 동네 산의 별칭)에서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완전히 텅 비어버리게 되는 '입구'이긴 했지만, 그 이전에도 가정에서 언어적, 정신적인 학대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해야 하니까 하는 아이, 온전히 아이로 존재할 수 없었던 아이.


어릴 적 난 집이 싫었다. 그 공기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알아주던 수재였지만 사업의 실패와 건강 악화로 빚과 죽음의 경계에 서계셨다. 그리곤 실패의 무게를 자녀들 어깨에 고스란히 옮겨 실었다. 난 그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계속 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그 나카타처럼 아이임에도 아이로 살지 못했던 것이다. 어둠, 그리고 무겁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철이 든 척을 하는 아이여야만 했다. 억지로 심어진 꿈을 거부했지만 새로운 꿈을 심을 공간 또한 없었다. 꽉 들어찬 어둠과 왠지 모를 공허함 속 아이의 눈엔 빛이 들어 올 여백이 없었던 탓이리라.


나카타는 그가 아홉 살이던 해에 부모에 의해 친가에 맡겨졌다. 그는 시골 학교에서 지내며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밥공기 산에서 담임 여교사에 의해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뒤로 그는 문자 그대로 '완전히' 텅 비어버리게 되었다. 총명함을 잃었고, 눈빛은 더 공허해졌으며, 그림자도 반토막이 났다. (진하기가 옅어진 것인지, 크기가 줄은 것인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도 나카타와 같은 일을 겪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설렘과 두려움을 모두 안은 채 진학한 고등학교. 신입생 생활을 함께 하게 될 친구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며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고자 부단히 애쓰던 시기였다. 그 친구는 용모가 빼어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 친구들의 호감을 사는 인물이었다. 별명은 '감귤'. 실제 그의 모습은 얼굴도, 몸도, 손도, 발도 모두 길쭉해서 동그란 감귤보다는 오이가 연상됐지만, 손발이 확연히 노랬던 탓에 '감귤'이 되었다. 감귤은 말을 아주 재밌게 했고, 친구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말과 행동을 하며 스스로도 만족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학기 초에 반 친구들 모두의 면면을 알 수 없었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감귤을 반장으로 뽑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마치 나카타가 그랬던 것처럼 텅 비어버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물리 시간. 과목이 주는 느낌처럼 딱딱하고 재미없고 무심하고 무뚝뚝했던 물리 선생님. 수업 중 교실이 소란스럽다는 이유로 반장을 교탁 앞으로 불렀다. 선생님은 감귤을 한참 노려보다 심한 사투리 억양으로 언성을 높여 그를 나무랐다. 그리곤 '손바닥 내!' 하는 고함과 함께 항상 지니고 다니던 드럼 스틱 비슷한 막대기로 감귤의 양 손바닥을 무지막지하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실제 그날의 하늘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내 머릿속 그 장면은 어둡고 무거우면서도 차가웠다. 적막 속 들리는 소리라곤 그의 손바닥에 내리 꽂히는 매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매가 손바닥에 닿으며 발생하는 둔탁하고도 날카로운 마찰음, 그리고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손바닥을 맞던 반장 '감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마지막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감귤이 손을 내리자 또다시 '손 내!' 하며 고함을 치는 물리 선생님의 잔혹한 외침뿐이었다.


물리 시간이 끝나고 감귤이 바로 집으로 향했는지, 아니면 극심한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수업을 다 마치고 하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다음 날부터 감귤이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라면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묻거나 위로의 말을 건넬 법도 한데, 나만의 기억일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나와 우리 중 그에게 연락을 취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며칠 후, 어쩌면 일주일도 훨씬 넘은 후 감귤이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사건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손에 붕대를 감고 온 감귤은 말이 없었다. 웃지 않았다. 눈빛은 공허했고, 조용히 허공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난 후,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학교는 자퇴하기로 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감귤은 서서히 나와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해변의 카프카> 속 나카타라는 인물을 통해 감귤이란 친구를 내 오래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나카타는 만나는 고양이와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일을 겪은 후 텅 비어버리게 되어 머리가 나빠지고 글도 읽을 수 없으며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고양이를 찾아주며 받는 소소한 사례금으로 연명하는 보잘것없는 인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고양이에게 잔인한 짓을 벌이는 폭력의 상징 '조니 워커'를 처치했고, 다무라 카프카 군의 현실과 꿈의 경계를 여는 '입구의 돌'을 직관만으로 찾아내는 엄청난 일을 했으며, 그저 세상에 떠밀리듯 살아온 호시노에겐 '위인'과 같은 존재가 된다. 텅 비었다는 것이 텅 빈 것이 아님을, 채워져 있지 않음으로 누군가를 채워줄 수 있음을, 순진과 무구의 삶 그리고 천진과 난만의 삶이 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지고 불필요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그런 존재가 나카타인 것이다.


어쩌면 그날 이후 자취를 감춘 감귤도 그 무너짐을 안고 살아가며 고양이와 대화를 하거나 혹은 입구의 돌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혹은 이미 입구의 돌을 들어 올려 마흔둘의 나를 그 입구로 들어가게 한 사람이 바로 감귤일 수도 있다. <해변의 카프카>에선 나카타가 호시노에게 위인이 되었듯, 현실에선 감귤이 나에게 위인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귤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침묵'은 어쩌면 늘 나의 삶 어딘가에서 나카타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반쯤 비춰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감귤이 지금 내 옆에 있다면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제 그만 입구를 닫아도 좋아."


나카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떠나갔다. 누군가는 '입구의 돌'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다행히 나카타의 곁엔 한 청년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떠올라 나카타와 동행했던 청년. 세상에 떠밀리듯 그저 살아지는 대로 흘러온 청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누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온 청년. 그 청년은 텅 비어있는 나카타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깨뜨리고 새로 태어나게 된다. 다음 화는 이 청년 호시노를 통해 돌아본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written by 규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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