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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Sep 10.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10]

기대와 실망, 그 사이 어딘가

영화 '스파이더 맨'에 나오는 등장인물 MJ (젠다야 콜먼)이 숱하게 읊는 대사가 있다.


If you expect disappointment, then you can never really be disappointed

(실망할 것을 예상하면 실망할 일 없을 거야.)


지난 월요일 배아 이식을 한 후 동결 배아 등급이 워낙 좋았던 탓에 한껏 기대를 했던 우리 부부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슬슬 줄어들고 있다. 피검사에서 나온 호르몬 수치가 낮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내의 체온이다. 착상이 성공했다면 아내의 체온이 조금씩 올라가야 정상인데, 너무나도 정상적인 체온이다. 아내는 결국 이제 체온을 재지 않겠다고 말하며 나에게 이번에 잘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미리 위로를 건넨다.


아내의 말을 듣자마자 난 MJ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래,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면 실제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 충격이 덜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특히 주사 자국으로 여기저기 멍들어 있는 아내의 배를 보면 더 그렇다. 이렇게나 고생하는데,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하고 난 몰래 좀 더 기대를 하려 한다. 정확히는 기대와 실망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기대도 아닌 그렇다고 실망도 아닌 언저리. 난 누구보다 가장 힘든 아내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싶기에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실망을 예상할 수는 없다.


MJ가 다시 한번 저 대사를 읊으려고 하자 피터(톰 홀랜드)가 말한다.


No, we're going to kick some ass

(아니, 조져버리자.)


그렇다. 실망을 예상하는 건 좀 더 뒤에 해도 된다. 시술 후 받는 1차 피검사까지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정확히는 5일) 실망할 것을 예상하는 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나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 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난임은 노력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오늘도 여보 닮은 예쁜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이 꿈에 나왔으면 싶어.

그러니까 여보. 아직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예상하지 말자.

꿈꾸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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