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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끝자락에서

시간에 대한 작은 생각

by 박이운

한 해의 마지막 날, 지나온 1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달성한 목표도 있고, 실패한 도전도 있었으며,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는 일이 있었던 반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분노와 무기력함을 느낀 일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이 한 해를 가득 메웠고, 내 안에 고스란히 쌓였다.


양자역학에선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닌, 공간처럼 놓여있는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가 아닌 보다 고차원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가 2차원의 평면 세계를 들여다보듯 시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선 영화 필름을 예로 들었는데, 우리 인생은 영화 필름처럼 구성되어 있고, 영사기에 넣어 필름을 돌리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지만 영사기를 돌리지 않으면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시간은 정말 흐르지 않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면 믿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시간은 문학적으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외수 작가는 자신이 새롭게 본 세상을 <감성사전>에 담았다. 사전적 풀이가 아닌 작가 고유의 감성과 스타일로 단어를 새롭게 풀이한 책이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풀이는 이렇다.


* 시간 : 탄생과 소멸의 강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강에서 태어나고 그 강에서 죽는다. 그러나 흐르지는 않는다. 흐르는 것은 시간의 강이 아니라 그 강에 빠져 있는 물질들이다.


방송 작가계에서 전설로 불리는 박경덕 작가는 자신의 저서 <프로작가의 탐나는 글쓰기>에서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며 '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 시간 :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곤 하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 내 안에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의 내가 있다. 내 안에는 짝사랑을 시작한 그날의 내가 있다. 가슴을 치며 후회한 그날의 나도 있고, 세상을 얻은 듯 기뻤던 그날의 나도 지금 내 안에 있다.


개인적으론 시간에 대한 풀이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매일, 매분, 매초를 살면 그 시간은 한 겹 한 겹 내 안에 고스란히 쌓여간다. 그 쌓임이 내가 된다. 지금의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다. 시간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으로 쌓아가는지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


마크 트웨인의 말 중 메모해 두고 자주 꺼내보는 말이 있다.

-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실망할 것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거기서 얻는 것이 있고 내 안에 쌓이는 것이 있을 터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후회와 실망만 쌓인다.'가 될 것이다. 시간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간다면 그것이 비록 실패의 기록일지언정 후회와 실망보다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주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오늘로 올 해가 끝이 난다.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이다. 바로 오늘이 이벤트 호라이즌(사건의 지평선)을 지나는 길목이다. 가수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 가사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처럼. 지난 1년간 더 양질의 것들을 내 안에 쌓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여기까지만 하려 한다. 대신 다가오는 새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얼마나 좋은 것들을 내 안에 쌓아갈지, 그리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인 후 난 어떻게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를 떠올리려 한다. 쌓아온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쌓아갈 시간으로 내가 원하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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