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이라는 덫
4000주 - 올리버 버크만
시간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내가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집념에 의해 악순환된다.
즐거운 일을 하는 이유는 세상이 제공하는 경험들을 만끽하며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상에는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인생의 가능성을 만끽한다는 느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효율성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멋진 경험을 더 많이 할수록 그 이상으로 더 멋진 경험을 해보고 싶고, 해야만 한다는 욕망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실존적 압도감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정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은 결국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정복하려는 모든 것은 크기를 한없이 키워가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자신과 약속을 하고, '조모'(포기하는 것에 대한 기쁨) 즉, 대안을 포기하는 것이 자신의 선택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때 불안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한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너무 열심히 '그 순간 더 많은 것'을 얻으려 노력할 때 자의식은 우리가 스스로 정신적으로 고양되어 그 순간 시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현재에 존재하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제로 보고 느끼기 위해 이 순간에 더 머물고자 할수록,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존재하더라도 그 순간의 경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실제로 아무리 먼 미래까지 계획을 세워놓더라도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확신으로 두 발 뻗고 안심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 대신 불확실성의 경계는 점점 지평선 너무로 멀어질 뿐이다. 크리스마스 계획이 정리되면, 1,2,3월의 계획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결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요소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얻으려 할 필요가 없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포기하는 순간 인생이란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해결하는 과정이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의미 있는 존재에 결함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문제란 존재의 본질 그 자체다.
사실 시간은 '네트워크 상품'이기도 한데, 이는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몫이 당신의 몫과 얼마나 잘 조율되어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상품을 의미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확실한 예시가 전화망이다. 전화기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만큼 당신에게 가치가 있다.
집단적인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나 자신이 확장된 이상한 기분, 말하자면 내가 점점 부풀어 올라 나라는 생명체보다 더 큰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