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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Mar 25. 2024

37. 4000주 - 올리버 버크만

생산성이라는 덫

4000주 - 올리버 버크만



4000주는 4000weeks를 의미한다. 한 명의 인생에 할당되는 주수이다. 최근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차 마주친 책이다. 시간이 많으면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없는 생활은 무기력감을 안겨주었다. 이 많은 시간을 왜 잘 사용하지 못하는지 의문이었다. 책을 통해 시간 활용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삶의 전반에 대한 답을 얻었다.




시간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내가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집념에 의해 악순환된다.

 - 책의 머리말부터 눈에 들어온 구절이다. '요즘 시간 많을 텐데 뭐하냐'는 연락조차 달갑지 않았다.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 또는 욕심이 이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게 했었던 건 아니었을지. 시간 활용에 대해 조금 더 힘을 빼는 것도 좋았을 법했다.



즐거운 일을 하는 이유는 세상이 제공하는 경험들을 만끽하며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상에는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인생의 가능성을 만끽한다는 느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효율성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멋진 경험을 더 많이 할수록 그 이상으로 더 멋진 경험을 해보고 싶고, 해야만 한다는 욕망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실존적 압도감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 삶을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이견이 없는 이유라고 생각했지만 처음 들어본 반박이었다. 멋진 경험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이상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말에는 재반박의 근거가 없었다. 다양한 경험들을 만끽하고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겠지만, 인간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이전의 경험과 비교하고, 타인의 경험과 비교한다. 저자는 이어서  SNS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정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은 결국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정복하려는 모든 것은 크기를 한없이 키워가기 때문이다.

 - SNS는 항상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지역의 가장 좋은 숙소보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알게 되고, 세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숙소, 죽기 전에는 꼭 한번 가봐야 할 여행지를 알게 된다. 죽기 전에 모든 경험을 해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보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준다.



의식적으로 자신과 약속을 하고, '조모'(포기하는 것에 대한 기쁨) 즉, 대안을 포기하는 것이 자신의 선택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때 불안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한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 가지지 못한 경험에 대한 박탈감은 '조모(JOMO - Joy of missing out)'에서 일부 해결될 수 있다. '포모(FOMO - Fear of missing out)'의 반대말로 오히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의도적 '잊음'이다. 정복해야 할 무한대의 경험들 대신 지금 누리고 있는 현재를 의미 있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대안을 포기할 때 현재의 선택에 집중과 몰입이 더 잘 일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현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어서도 안된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그 순간 더 많은 것'을 얻으려 노력할 때 자의식은 우리가 스스로 정신적으로 고양되어 그 순간 시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현재에 존재하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제로 보고 느끼기 위해 이 순간에 더 머물고자 할수록,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존재하더라도 그 순간의 경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 저자는 현재에도 과하게 노력하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기 위해 노력할수록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지는 상상을 유발한다. 여행지에서도 '난 사진 대신 풍경을 즐길 거야'라고 마음먹는 순간 그 풍경은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과제가 된다. 이전 여행지와 비교를 하고, 무엇이 좋은지 는다. 결국 노력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답이었다.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 진짜 그 순간을 즐기는 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무심코 한 산책에서 기분이 좋아지고 뜻밖의 해답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아무리 먼 미래까지 계획을 세워놓더라도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확신으로 두 발 뻗고 안심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 대신 불확실성의 경계는 점점 지평선 너무로 멀어질 뿐이다. 크리스마스 계획이 정리되면, 1,2,3월의 계획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결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요소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얻으려 할 필요가 없다.

 - 즉흥적이라는 MBTI 'P' 인 사람들도 계획을 한다. 철저한 계획은 아닐지더라도 미래에 대한 생각과 기대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계획대로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한 번쯤 깨지기 마련이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깨지기도 한다. 그리고 계획되지 않은 순간들에서 뜻밖의 행운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인생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요소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 많다. 미래를 계획하고 통제하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인생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참고' 정도면 충분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포기하는 순간 인생이란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해결하는 과정이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의미 있는 존재에 결함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문제란 존재의 본질 그 자체다.

 - "문제란 존재의 본질 그 자체다."라는 말에 전율이 흘렀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문제가 없어야 하는 인간이 아니며,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인생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생은 끊임없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며, 문제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다. 결국 문제를 기꺼이 품고 즐기는 과정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실 시간은 '네트워크 상품'이기도 한데, 이는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몫이 당신의 몫과 얼마나 잘 조율되어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상품을 의미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확실한 예시가 전화망이다. 전화기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만큼 당신에게 가치가 있다.

 - 이로써 시간은 통제하는 개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개인에 의해 통제되고 조율된 시간에 타인이 함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몫과 당신의 몫을 조율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의 가치를 깨닫고 같은 시간 안에서 더 거대한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한다.



집단적인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나 자신이 확장된 이상한 기분, 말하자면 내가 점점 부풀어 올라 나라는 생명체보다 더 큰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타인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면 개인이 느끼는 감정 그 이상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공연에서 '떼창'을 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는 순간도 이와 같다.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는 개인의 확장을 이루어 준다.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은 따로 있지 않았다. 적당한 계획과 현재에 머물 수 있는 '여유'면 충분했다. 나와 함께 보내는 타인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시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했다. '문제란 존재의 본질 그 자체'라는 말처럼, 어쩌면 시간이 남아도는 이 상황 자체를 인식하고 또 해결해나가면 되는 일이다. 책을 읽고 글을 남기며 해결해나가는 지금도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문제의 연속인 삶을 '즐기면서' 해결해 나가기란 남은 인생의 꾸준한 숙제인듯하다.


번역투로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옥같은 구절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집중해서 읽어보시면 의외로 많은 것들은 챙겨갈 수 있는 책이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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