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환자와 그 보호자 이야기
6개월간의 간이식 주치의가 끝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단연 '옴' 환자다. 올 한 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킨 환자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시점은 환자가 안 좋아 위급상황이 생길 때, 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환자와의 실랑이가 생길 때다. 전자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후자가 더 크게 가슴을 뜨겁게 할 때가 있다. '옴'환자는 후자였다.
요즘시대에도 '옴'이 있을까 했지만 있었다. 간이식을 하고 몇 달이 지난 젊은 남자 환자였다. 옴이 걸린 시점은 퇴원 후 다음 외래 전이었다. 환자가 주장하는 옴이 걸린 장소는 병원이었다. 감염 위험성은 외부보다 병원이 훨씬 더 높은 건 사실이니 환자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이 사단으로 병원비를 낼 수 없다며 이미 외래에서도 유명한 환자였다. 흔히 말하는 'Named' 환자가 간수치 상승으로 입원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입원시킨 동료는 어려운 환자가 입원했으니 고생 좀 하라며, 행운을 빈다고 얘기해 주었다.
입원날 병실에서 처음 마주한 환자는 온몸이 노랗게 뜬 채 전신을 짜증스럽게 긁고 있었다. 노랗게 뜬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이전에 했던 간이식도 술로 인한 간경화가 원인이었다. 환자는 이식 후에도 술을 끊지 못했다. 수술 후 회복이 되고 있는 찰나 알콜성 간염이 진행한 것이다. 옴으로 가려운 와중 설상가상으로 황달수치 상승으로 인해 전신을 긁어댔다. 옴 때문에 생긴 가려움인지 간이 망가져 올라간 황달수치로 인한 가려움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가려움으로 그가 내뱉는 모든 말에는 단어마다 짜증이 배어있었다. 보호자 또한 병원에서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번에 모든 걸 해결하라며 묵직한 경고를 날렸다.
환자와 똑같이 짜증을 낼 순 없었다. 다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하였다. 옴에 대해 피부과 진료를 보고, 술로 인한 간염은 보존적 치료를 시행했다. 다행히 입원기간 내 환자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회진 시 툴툴거리긴 했지만 병원의 지침을 잘 따라주었다. 경과도 좋았다. 간수치는 잘 떨어졌고, 옴 피부 병변도 좋아졌다. 피검사도, 환자 컨디션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보호자인 환자의 어머니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했다.
동료의 경고가 떠오른 날은 퇴원 시점을 알려드린 날이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해드릴 건 없었다. 퇴원 후 환자가 다시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주말 퇴원이라 알려드리자 환자는 동의했지만, 보호자는 벌컥 성을 냈다. 아직도 환자가 가려워 긁고 있는데 어떻게 집에 가라고 하냐며 병동 스테이션까지 나와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환자의 검사결과와 앞으로의 경과도 설명드렸지만 막무가내였다. 피부색과 가려움이 온전히 다 나아야 퇴원하겠다며 버텼다. 보호자의 높아지는 언성에 발맞추려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저씨 엄마라도 저 상태에서 퇴원시키겠냐."는 말에 내 뱃속이 뜨거워졌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차갑게 튀어나온 내 말은 "퇴원시키겠다, 그리고 환자가 이렇게 된 이유는 술 때문인 거 아시죠?"였다. 보호자는 두고 보자며,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들이 얼마나 가려웠으면 술을 마셨겠냐. 그걸 이해 못 해주냐."
순간 그간의 나의 상식이 헷갈렸다. 간이식으로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으면 술은 더 이상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기증자이기도 한 보호자, 환자의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다. 옳다고 믿었던 상식과 그들의 현실이 교차하며 몇 날 며칠 동안 그날의 사건이 떠올랐다.
처음 며칠간 퇴근길에 드는 생각은 '나는 아직도 하수'였다. 병원에서 보호자와 똑같이 나의 감정을 드러낸게 실수였다. 감정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순간 직업적 본분을 잊은 셈이다. 감정에 이끌려 반응하곤 번번이 후회한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 보낸 며칠이 지나고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보호자의 사랑은 단순히 나와의 갈등에서 오는 고집이 아닌, 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환자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어마어마했다. 한편으로는 저런 든든한 어머니를 백으로 둔 아들이 부러울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아들을 위해 간을 내어주고, 이식 후에도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해해 주었다. 상식을 넘어선 "언컨디셔널 러브(Unconditional Love)"였다.
보호자와의 말이 며칠간 내 귀에 맴돌았던 이유는 단순히 언성이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이 얼마나 가려웠으면 술을 마셨겠냐"는 말속에는 자식에 대한 단단한 사랑과 끝없는 인내가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겨왔던 환자의 행동 이면에,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다. 그 사랑은 이성으로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의료진에겐 부적절해 보였을지 몰라도, 어머니에게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의료진은 환자의 몸을 치료하려 노력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환자의 삶 자체를 지탱한다. 때로는 그 사랑이 상식을 벗어나고, 심지어 의학적 관점에서 옳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환자의 삶에 어떤 힘으로 작용하는지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어머니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 사랑의 무게를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여전히 서툴고 완벽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이, 어쩌면 인간으로서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한 모습일 수도 있다. 부모님의, 가족의 사랑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가장 근원적인 치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