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by 글쓰는 외과의사


생체 신장 이식은 기증자 수술과 수혜자 수술이 동시에 진행된다. 기증자의 신장을 떼어내 수혜자에게 혈류가 다시 공급되기까지의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이 시간이 짧을수록 이식 결과는 더 좋아진다. 이런 이유로 이식 팀은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여러 의료진이 관여하지만, 그날 기증자 신장 절제는 나와 교수님의 몫이었다.


처음 외과를 전공할 때는 쳐다도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수술이 기증자 수술이었다. 환자가 아닌 기증자의 장기를 절제하는 수술은 더 큰 책임감을 요구했다.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건강했던 기증자가 환자가 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할 수 없을 것 같던 수술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하고 있었다. 언제 익힌 것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시나브로 축적된 지식과 테크닉은 수술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혜자 방의 수술 준비가 끝나면 기증자의 신장을 배 밖으로 꺼내는 일만 앞두고 있었다. 이 과정은 기증자 수술의 마지막이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신장을 먹여 살리는 기증자의 동맥을 결찰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초 단위로 측정된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야 하지만 타임 어택은 수술자에게 극도의 압박감을 준다.


수혜자 방에서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받고 혈관을 잡기 시작했다. 동맥을 잡는 순간 사고가 발생했다. 동맥 앞을 가리고 있던 정맥이 찢어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복강경 카메라 렌즈는 곧바로 빨갛게 물들었다. 모든 복강경 기구를 빼고 빨리 배를 열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오래 고민할 수 없었다.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그 순간 교수님은 별말 없이 정맥을 자를 수 있는 기구를 건네주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기구를 건네받고 침착하게 피가 올라오는 아래쪽 정맥을 물었다. 사실 침착하지 않았다. 온몸에선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출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정맥을 자르고 나자 다시 복강경 카메라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신장은 안전하게 수혜자의 방으로 이송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이제 막 끝낸 사람처럼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자리에서 서서 하는 수술이었지만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상황을 돌이켜봤을 때 수술보다 더 기억에 남았던 건 교수님이었다. 나였으면 피가 나는 순간 큰소리부터 나올 상황이었다. 기구를 건네주는 대신 자리를 뺏고 직접 해결하려 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질책 한번 없이 기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끝까지 상황을 해결하도록 믿어주셨다. 수술이 끝나고도 수술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수술 중에 있었던 실수조차 내가 알지 못하도록 감싸주셨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된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수술은 여전히 도제식으로 교육된다. 직접 손으로 하는 개복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은 경험이 많은 교수님들의 감각을 절대 무시 못 한다. 수술 감각만큼 중요한 것은 후배를 믿을 수 있는 담대함이다. 경험을 나눠주고 위기의 순간에 손을 줄 수 있는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외과의사에게 큰 복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복이 많은 편에 속했다. 닮고 싶은 선생님이자 어른이 외과에는 너무나 많았다.


처음 외과를 시작할 때는 수술 기술을 배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지런히 배우고 싶은 건 손기술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이었다. 수술실에서 말이 아닌 방식으로 전해지던 것들 속에는, 선생님이자 어른으로서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