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3학년이 되면 화이트 가운 세리머니 행사가 열린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본인의 이름이 적혀있는 가운을 받게 된다. 이는 학생들이 병원으로 실습을 나갈 예정임을 암시한다. 무릎까지 오는 흰 가운을 펄럭이며 병원으로 향하는 첫 실습 길은 학생들에게 마치 의사가 된 듯한 환상을 심어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머리에 든 지식은 빈약하기 그지없었지만, 실습에 대한 기대감은 충만했다.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었고, 티셔츠 대신 와이셔츠를 입었다. 깔끔한 복장은 병원 실습의 필수요건 중 하나였다. 복장 때문이었을까, 병원 실습에 기대감과 허세가 함께 들어온 시기였다.
실습 첫 달을 떠올려 보면 나는 마치 속 빈 강정과 같았다. 본과 1, 2학년 시절 배웠던 의학지식은 온데간데없었다. 교과서와 실제 임상 사이의 괴리는 상당했다. 교실에서 배운 의학지식을 환자에게 적용시키기까지는 한세월이 걸렸다. 지식은 얕았지만 환자 앞에서는 의사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이 속 빈 강정 같은 행태는 외래에서 더욱 요란했다.
외래에선 진료실 한편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 교수님의 진료를 소리 없이 참관했다. 운이 좋으면 교수님의 뒤에 앉아 환자들의 폐음을 청진하거나, 정형외과적인 신체진찰을 해볼 수도 있었다. 실습 초반에 돌았던 산부인과 외래에선 평소 좋아했던 교수님의 바로 뒷자리에서 교수님의 문진을 참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참관하는 내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마 외래에 있는 동안 주눅 들어있는 학생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까. 외래 가 중반부로 접어드는 시점, 교수님이 갑자기 홱 뒤를 돌아보셨다. 그리곤 차갑게 한마디 하셨다.
"환자가 들어왔을 때 의사가 팔짱을 끼고 앉아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겠니?"
외래 내내 줄곧 팔짱을 끼고 있던 나의 태도를 보고 보다 못해 한마디 하신 것이었다. 황급히 팔짱을 풀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모른 채 어정쩡하게 앉아 남은 외래를 참관하다 나왔다. 그리곤 곧 기억에서 잊혔다. 크게 혼이 난 날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반성할 만큼의 그릇이 큰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뜬금없게도 이 사건은 8년이 지난 시점에야 문득 다시 상기되었다. 그간 임상을 접하고, 환자와 학문에 높은 벽을 여러 차례 느끼면서 고개는 절로 숙여졌다. 고개가 숙여지는 시기에 고개가 빳빳했던 과거의 일이 떠오른 것이었다. 산부인과의 외래 에피소드는 젊은 날의 허세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의사처럼 보이고 싶었던 학생은 자신의 빈 지식을 감추기 위해 팔짱을 끼고 있었다. 혹여나 누가 질문을 해 본인의 무지가 드러날까 방어막으로 팔짱을 이용한 셈이다.
외과 의사가 되고 지금까지 모시는 교수님들을 떠올려보면, 팔짱을 낀 채 환자를 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좋은 교수님들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운의 일환일까. 팔을 안으로 접기보다 허리를 접고, 고개를 숙이는 어른으로 성장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