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마흔
나는 겨울이 되면 꼭 가죽장갑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정전기를 너무 싫어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옷 입혀주는데도 정전기 나면 흠칫 놀라고 피한다. 신랑과 연애하면서도 손과 얼굴 혹은 옷이라도 맞닿아 아프기라도 하면 짜증내기 일수였다. 아프고 놀라고 싫은 것이 나에게는 추위보다도 정전기가 겁이 났다. 심지어 결혼식도 12월이라 신랑 팔짱 끼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꼭 겨울이 가까이 되면 겨울옷을 꺼내면서 가죽장갑을 찾는다. 비상 가죽장갑을 매년 겨울에 사놓는다. 급하게 나가야 하는데 보이지 않거나 외출했다가 잃어버렸을 경우 꼭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에 문손잡이를 잡을 때 특히 유용하다.
대부분 정전 기가 나지 않지만 정전기가 일어나서 따갑거나 아플 경우 두꺼운 가죽장갑 덕분에 덜 아프다. 이런 가죽장갑의 유용함 때문에 겨울에는 나와 떨어질 수가 없다. 보통 구입은 백화점 외대에 판매에서 찾아서 살 수 있다. 2만 원 안팎인데 운 좋으면 만 오천 원 안팎을 찾을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는 필요 없지만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이름을 붙이자면 “비상 키트(kit)”라고 이름 붙여보았다.
비상 키트라고 하면 갑자기 아플 때 먹는 약이 떠오른다. 일반 가정집에는 비상약들도 상비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아이들 열날 때 먹여야 할 해열제, 심한 두통이나 통증 있을 때 먹는 게보* 등 이 있다.
얼마 전 신랑이 회 먹고 싶다고 해서 연어와 방어를 반반 시켜서 먹었는데 자기 전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설사는 다행히 안 했지만 복통이 심해져서 집에 위장염 약을 먹고 앓으면서 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났다.
너무 고마워진 비상약을 생각하면서 필요한 것들이 더 있나 찾아보았다. 종합감기약과 소화제가 없는 것 같아서 신랑 퇴근길 부탁했다. 감기가 걸리면 병원에 가는 게 좋긴 하지만 가벼운 감기 증상에 먹어보고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집에 특이한 ‘비상 키트’를 꼽아본다면 화장실에 있는 바디 스프레이이다. 결혼은 했지만 최소한의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준비한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 나올 때 그다음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뿌려준다. 그러면 한 개밖에 없는 화장실이라 그다음 급하게 이용하러 들어간 사람도 악취보다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아이디어로 얼굴 붉힐일들이 줄어든 것 만으로 흐뭇하다.
또 첫째 출산 이후 사과즙을 늘 시켜먹는다. 시판되는 슈퍼에 과당액보다 개인농장에서 사과를 짜낸 즙이 더 나을 거 같아서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너무 목이 말라서 주스를 찾던 중에 친구의 권유로 먹게 되었다.
수유도 끝났지만 아침에 목마름을 충족시키고 과일을 적게 먹는 나에게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도 규칙적으로 가게 해주고 목마름과 배고픔까지 해결해주니 여건이 되는 한 끊을 수가 없다. 갑자기 손님이 오셔도 컵에 따라드릴 수도 있고 아이 간식으로도 쉽게 줄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유용한 것들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불필요한 습관과 물건들을 없애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루틴과 취향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현관에 향수를 놔두거나 우울할 때 꺼내먹는 아이스크림을 손꼽았다. 여건이 되는 범위속에서 일상을 즐겁고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비상 키트를 늘려가는 것. 살아가는데 소소한 재미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