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여행을 즐겨 다니는 편은 전혀 아니었다. 여행이야 가면 좋겠지만 안 가도 그만, 뭐 그런 미적지근한 태도 덕분에 좁은 한국 땅에서도 아직 모르는 곳이 많고, 가까운 일본조차 한 번 가본 적 없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지만 지나치게 바쁘고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여행은 일상과 사치 사이 그 어디쯤에 있으니까,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그런 한국을 떠나 유럽에 온지 한 해하고도 조금 더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유럽에서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행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처음엔 그저 마냥 좋았다. 내 첫 여행지는 영국, 그것도 크리스마스 연휴의 런던이었다. 전세계 물가 1위 도시 런던으로, 극성수기 크리스마스 연휴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났으니 유럽에 갓 도착한 새내기가 얼마나 물정 모르고 들떠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물론 그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런던이란 도시 그 자체도 좋았지만, 한국을 갓 떠나온 그 때의 내게는 그저 모든 게 다르고 새로웠던 덕도 없잖아 있었을 테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새내기 딱지를 떼고 이곳에서 보내는 날들이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 된 지금, 다시 런던에 간대도 그 때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타성에 젖었다.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것을 보는데도 큰 감흥이 없어졌다. 분명 처음 보는 것인데도 이전에 다른 곳에서 본 무언가와 비슷해 보였고,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른 이들이 학교를 떠나거나 직장을 관두고 일생에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보러 오는 광경을 눈 앞에 두고도 나는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몹시도 지쳐있던 어느 여행의 중간에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뭘 위해 여행을 하는가?'
열 명에게 물으면 열 가지 대답을 들을 물음이다. 내가 물었을 때 어떤 이는 일상의 굴레에서 탈출하고 싶어서라고 했고, 다른 이는 먹는 게 좋아 먹으러 간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그냥 멋있어 보여서라고 했다. 아무래도 좋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논리적인 정당성 같은 것은 필요 없으니까. 오랜 고민 끝에,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세계의 확장'이라고 대답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계획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여행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떠나기 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인터넷과 가이드북을 파고 들어 '가야 할' 곳과, '봐야 할' 것과, '먹어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숙제하듯이 목록을 지워나가는 건 내게 맞지 않았다. 특히나 남이 써준 추천 목록을 "누가 이게 좋다더라"며 쫓아 다니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 나중엔 떠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표만 끊어서 어디서 자고, 뭘 먹고, 뭘 할지도 모르는 채로 떠나게 됐고, 그게 좋았다.
그렇게 계획 없이 떠나서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생각지 못한 사람을 만나, 생각지 못한 세계를 마주치게 된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다른 세계와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그 세계로부터 새로움을 배우고, 때로는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신조차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의 세계는 그렇게 점점 더 넓어지고 다채로워진다. 그래서 내게 여행은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계획을 세우고 그걸 착실히 이뤄내는 과정이 뿌듯할 수 있다. 계획된 여행에선 한정된 시간과 경비를 더 효율적으로 쓰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올 수도 있다. 단지 내게 맞지 않는 옷일 뿐이다. 덕분에 깜빡하고 집에 두고 온 50mm 렌즈가 몹시도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고, 멀쩡한 워커를 두고 스니커즈를 신고 사막에 가 신발 가득 고운 모래를 채워온 날도 있었다. 무모하고, 비효율적이라 한다면 그것도 사실이다. 다만, 일상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신은 스니커즈에서 보드라운 사하라 사막의 모래가 느껴질 때, 생각지 못하게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올라 웃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계획 없는 여행만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