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가 말하는 코스피 5000 시대

코리안 디스카운트에 대하여

by 작가h

흔히 한국 시장을 두고 '코리안 디스카운트'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도 안 되는 기업이 수두룩했습니다. 여기서 PBR이 1 미만이라는 건, 회사의 장부상 순자산이 100원인데 시장에서는 70원짜리 취급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기업들이 땅이나 건물을 살 때 취득 당시 가격으로 적는 '원가법'을 주로 쓰다 보니, 장부에 적힌 100원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미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습니다. 수십 년 전 사둔 금싸라기 땅들의 가치상승분이 장부에 반영되지 않으니, 실제 이 회사를 평가하면 200원, 300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시장은 낮은 장부 가치인 100원조차 인정해주지 않고 70원에 거래하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저평가 위에 저평가가 겹쳐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왜 이럴까를 고민해 보면 결국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현실이 보입니다. 주가가 오르면 대주주는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때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실제 자산 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주가가 낮게 유지되어야 세금을 덜 내니, 대주주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오히려 큰 짐이 되는 구조였던 셈입니다. 그러니 굳이 주가를 띄울 이유가 없고, 배당을 시원하게 풀어서 주주들을 기쁘게 하기보다 돈을 쌓아두는 편을 택했습니다.


배당을 많이 줄수록 투자자들은 그 주식을 소유할 가치를 느끼고 수요가 늘고 주가가 오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배당에 인색하다 보니 주가 상승의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죠. 여기에 '자기주식(자사주)' 문제도 한몫했습니다. 외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사서 아예 없애버리는(소각) 방식으로 주식의 희소성을 높여 주가를 올리지만,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사두기만 하고 나중에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일반 주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거버넌스(Governance)', 즉 기업의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있죠. 회사의 주인은 모든 주주인데, 실제 운영은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결정되는 구조를 뜻합니다. 알짜 사업부를 떼어내 따로 상장하는 '물적분할'이 대표적인데, 이는 마치 잘되는 맛집의 핵심 레시피만 쏙 빼서 옆에 새 가게를 차리는 격이라 기존 주주들은 내 자산의 가치를 도둑맞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과 비교해 보면, 미국이나 일본의 기업들은 주가가 오르면 주주 모두의 이익입니다. 특히 일본은 최근 'PBR 1배 미만 기업은 개선 계획을 내놓으라'며 강력하게 압박해 지수를 끌어올렸고, 미국 기업들은 번 돈의 대부분을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에 쓰며 주주 가치 높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주 환원율이 글로벌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니, 외국인 투자자들 눈에는 한국 주식이 매력 없이 보이는것이 당연합니다.


코스피 5000이 단순히 지수가 올랐다는 의미를 넘어서길 바랍니다. 산술적으로 지수가 5000에 도달했을 때의 PBR은 대략 1.4배에서 1.5배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우리 시장이 드디어 PBR 1배를 넘어 코리안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코스피 5000이 앞으로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섣부른 기대감에 올라탄 거품은 아닌지, 혹은 제도의 변화 없이 숫자만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기업의 체질 개선 없이 유동성의 힘으로만 오른거라면, 우리는 다시 하락장으로 빠질지도 모릅니다. 체질개선을 통해 건전한 시장으로 한단계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퇴사 후 입사, 연말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