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인 Jan 20. 2023

호스피스에서 한 달

하늘로 올라가는 진홍색 종착역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날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곳은 용인 샘물호스피스였다. 


부모님이 꽤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오랫동안 해 왔는데도, 호스피스 병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전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의 의중을 물었다. 나의 결정에 의지하고 싶었으리라. 나에게 "그렇게 해도 되겠지?" 물었다. 사실 호스피스 전원 말고도 선택지가 있다. 집에서 임종 까지 간호도 가능하다면 가능하다. 엄마와 형이 그럴 수 있는 여건이라면 말이지. 그러나 급격히 노쇠해져 버린 엄마도 힘이 드셨나보다. 말기암 환자인데도 엄마한테 버럭 소리를 지를 때 만큼은 원기왕성이었다. 근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싫진 않았다. 신경이 쇠약해 진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아! 아버지가 힘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당연하지 엄마. 일단 엄마도 병원에서 한주 넘게 아버지 간호하느라 힘들었으니 며칠이라도 집에서 쉬어서 회복한 다음 생각해야 돼. 알았지?"


아버지도 따라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다. 시설이 이렇게 좋은데 굳이 따라들어와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래놓고 매일 저녁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혹시 몸 괜찮으면 언제 한번 올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도 안된다. 


같은 현상을 보아도 받아들임의 온도와 색깔은 천차만별이다.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다. 

병원에서도 손 못쓰는 환자 죽기 전에 지내는 곳이다.

세상과 작별하기 전 편안하게 남은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어떤 표현도 틀리다고는 못하겠다. 다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호소피스 병원은 진홍색이었다.  

차분하게 그러나 붉은 노을진 하늘 뒤에 타오르는 이글이글 붙볕이

살면서 사람이 품어왔던, 영욕, 희망, 사랑, 헌신, 애환같은 두껍고 끈적한 가치들을

모조리 그러나 서서히 불태워 녹이는 용광로를 떠올렸다. 

그 곳에 아버지가 홀로 들어가셨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식적으로 선고를 받은 암 환자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말기암 환자라고 해서 반 시체처럼 지내는 것도 아니다. 전이가 어디에 되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차이가 많이 난다. 간과 폐에 전이가 꽤 많이 되었지만 식사는 곧잘 하셨다. 식사=건강=생존이라는 등식이 뚜렷한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서 호스피스 병원 밥을 드셨다. 


1인실은 임종실이라고 한다. 

대개는 임종 예배를 드리면 임종실로 옮기고 

임종실에서 3일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 

그러나 입원 초기에는 대개 2인실을 준다. 

아침 점심 저녁 마음의 평안을 위한 예배가 있고,

자원봉사자들이 촘촘이 배치되어 있어서 병원보다 훨씬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도 아버지의 바보스러움은 변함이 없었다. 


항암을 더이상 하지 않는네도 밤에도 시도때도 없이 딸국질 (의사는 아직도 이 미스테리를 설명하지 못했다. 항암 부작용이기도 했지만 암의 폐 전이 그리고 뇌 전이의 시그널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나서 옆 침대 환자가 깰까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으로 기거나 휠체어로 올라가 찬바람이 들어오는 복도 끝 의자에서 잠을 청하거나 산책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새벽 대여섯시에 다시 방으로 들어오곤 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는 건 죽어도 싫어하니 어쩔 수 없나 보다. 게다가 매번 예배에서 맨 앞자리에서 찬송가 부르고 오늘 내일 죽을사람 같지 않은 연기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쉰 목소리로 씩씩하게 말하면 자원봉사자분들이 칭찬 한바가지를 부어 드리면 신나서 더 그러셨다. 실제로 시신 인도하러 가는 날 병원 직원 분들과 자원봉사자 분들이 따로 나를 만나서 인사를 했다. 너무 씩씩하셨고 특별하셔서 오래 기억할 것 같다고. 


실제로 죽음 앞에서는 인간이 살아온 모습 만큼이나 그 군상들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목사님인데도 하나님한테 쌍욕 바가지를 내뱉고 콜록거리다 죽는 사람도 있고, 마지막 순간 까지도 배우자를 원망하고 더 살지 못한다는 분노와 독기에 목덜미부터 머리 끝까지 거무튀튀한 피부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걸 생각하면 아버지의 고통 적었던 마지막 한달은 그가 받은 생의 마지막 큰 축복이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평생을 동분서주하고 옥죄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에 대한 전능한 존재의 위로였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실은 입원 전에 서약서를 쓰게 된다. 그 내용 중 하나가 "2개월 이상 생존 시 퇴원" 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은 두가지를 암시한다. 

2개월은 넘기는 환자는 거의 없다. 

2개월을 넘기는 환자가 있다면 그건 기적이고 아마 더 많이 살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말을 두가지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매우 높은 확률로 2개월 안에 돌아가신다

2개월을 넘기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재빨리 검색을 해 보았다. 이 호스피스 병원에 부모를 모셨던 사람들의 글을 모조리 찾아보았건만 3일만에 돌아가신 분도 있었고 6주를 넘겼다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며칠을 사실 수 있을까? 내가 이걸 계산하고 있다니. 아니 나는 계산을 해야 했다. 내가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올라 타서 아버지를 당장 만나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6주에 희망을 걸어보자고 믿고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남은 날은 제가 같이 있어드릴거에요" 


그러나 그 비행기 표를 예정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너무 잘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