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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Jung Oct 04. 2023

내향형 부부 관찰일기

참 다르고 같고 다르고 같다

@ Hanoi, Tay ho


1. 내 사고방식의 대기권을 뚫는 사람을 만났다. 누가 뭐라 하던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호불호를 명확하게 말한다. 주로 불호를 말했다. 신기하고 놀랐다. 아니 놀랐지만 사실 몰랐던 건 아니다. 10년 넘게 보아온 가족 중 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XY 염색체라는 것만 남편과 공통점일 듯. 촌수만 가깝지 마음상으론 참 먼 가족 한 명이 하노이를 방문했다. 대접을 바라고 온 건 아닐 테지만 아니해드릴 수도 없고, 빈손으로 오시진 않아 또 마땅히 해야 할 것 같은 부채감으로 그분을 만났다.


첫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머지 개인 스케줄을 묻는 중이었다.


나: 베트남은 열대과일이 다양하니까 호텔 들어가시는 길에 몇 개 사서 드셔보시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 : 아 제가 열대과일은 안 먹습니다.


나: 오늘 저녁은 뭐 드실 거세요? 현지음식이나 한식 싫으시면 여기 XX 피자도 맛있어요!

남편: 맛 괜찮아요. 그리고 화덕피자예요!

- : 내가 피자는 입에도 안대. (워딩 그대로)


남편: 쇼핑 가시면 A, B, C 브랜드 모두 다양하게 있어요. 편히 둘러보세요.

- : 나는 A만 입어.


'아 쎄하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적었다. 그 사람이 한 말에 악의는 1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불편한 건지. 앞으로 이틀의 만남이 더 예정되어 있는 남편이 우습고 (ㅋㅋ) 우려스러웠다. 분명 스케줄 상으로는 먹고 노는 내용인데 과연 저 둘 사이는 화기애애할까. 역시나 라운딩 / 마사지 / 식사 반복 후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었더니 조용했단다. 남편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치 회사 접대 같았다고 했다. 그는 입병도 났다.


남편: 무시무시한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나: 뭔데?

남편: 내년에 또 보재!!

나: 으악ㅋㅋㅋㅋㅋㅋ


벌써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을 했던 이 분이 세 번째도 기약을 하고 돌아갔다. 우리 부모님은 한번, 시부모님은 한번도 오시지 않았는데 그 보다 먼 분이 이 곳을 너무 좋아한다. 어쩌지. 불편감을 불편하다 말하지 못하고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가족이니까..' 라며 최선을 다한 우리는 <거절의 필요성>을 느꼈다. 과연 내년은 어떻게 될까?


바다를 보며 이너피쓰-


2. 딸이 현지인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고용 규정상 운전을 할 수 없고, 회사에서 남편에게 지원해 준 운전기사가 있는데 나와 딸이 개인적 스케줄 동행을 부탁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하여 택시를 타고 딸을 키즈카페가 있는 쇼핑몰까지 데려다줬다. 이제 몇 시간 뒤 파티가 끝날테고 다시 택시를 타고 데리러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통비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근데 마침 파티 주최자 A와 같은 동에 사는 일본인 B도 초대를 받았고, 우리는 바로 앞 동에 사니까 자가용이 있는 A 엄마가 파티 종료 후 다 같이 데려다준다면 참말로 너무너무 좋겠다 싶었다.


이제 머리에 생각이 마구 피어오른다.

'혹시 무례한 부탁일까? 파티 끝나고 바로 집으로 안 올 수도 있겠네. 근데 아무래도 더 왕래가 잦은 일본인 B는 데려다준다고 했을지도 몰라. 그래 B 엄마에게 물어보자. 앗 아니지, 그럴 바에야 직접 A 엄마에게 묻고 말지. 그럼 데려다 달라고 하기 전에 파티 후 스케줄부터 함 묻자. 아냐 지금 완전 정신없을 테니 drop off까지 그냥 한방에 물어보는 게 나으려나? 정중한 표현 잘 골라 써야지. could you, it'd be good, if you don't mind, no pressure...'


아우.. 영작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이런 걸 묻는 것 자체가 참 불편하고 껄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이런 걸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을 곁가지 쳐 나가는 내가 참 괴롭고 짜증이 났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먼저 퇴근한 남편에게 내 마음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남편: 아휴 뭘 그런 걸 갖고 고민해. 그냥 물어봐.

나: 그치,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남편: 됐어. 그냥 물어봐. 근데 A엄마 차 공간 여유가 돼?

나: 응?

남편: B랑 우리 애랑 다 데려올 수 있어?

나: 몰라.

남편: 엄마가 운전할 줄 아는 거지? 오토바이로 간 건 아니겠지?

나: 아...

남편: 걔네 아빠는 파티에 없어? 아빠가 운전하려나?

혹시 운전기사가 있으면 애 셋 태우기 자리 좁은 거 아냐? 엄마가 운전하겠지? 알아?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


너무 웃겼다. 이런 건 또 나보다 칼 같이 쿨하게 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서 물었건만 나랑은 또 다른 걱정길에 물꼬를 틀었다. 그럼 나는 애 데려달라는 말에 앞서 누가 운전하니, 혹시 몇명이 차에 탈 예정이니를 물어봐야 하는건가. 어우 맙소사. 크크. 갑자기 내년에 또 오겠다는 그 남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누구는 그렇게 면전에 있는 사람 반응 상관없이 자기 할 말 쑥쑥 잘 말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남편과 내가 참 웃긴 거다.


남편이 종종 과한 쿨내를 폴폴 풍길 때마다 "T세요?" 하곤 했는데 (T 맞다)

이건 뭐 남편은 T 다운 걱정을 했고, 나는 F 다운 걱정을 했을 뿐이다.


남편이 걱정인형 스타일은 아닌데... 공감? 배려? 회피형? 소심함? 뭘까? 아직도 우리의 이런 성향이 어떤 포인트와 관련되어 어떻게 개선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아! 아마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또 서로 다를 것이다. 나는 개선시키고 싶고, 남편은 개선 필요성까지는 안 느낄테고... (그치? 남편? 크크) 그저 우리 부부는 서로 참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엄청 비슷하구나 싶다가 또 다르네 했다.


결론적으로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춰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역시 정신없이 바쁜 그녀는 확인을 못했고 우리는 시간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었다. 그 쪽 상황을 보아하니 절대 파티 후 바로 집에 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나아중에야 문자를 이제봤다고 답변이 왔다. 내 마음만 속 시끄러웠던거지. 크크.


덕분에 주말 저녁 쇼핑몰에 간 겸 외식도 하고 온 우리 부부.


연애 4년 + 결혼 곧 11년 차.

부쩍 서로가 짠해 보이는 빈도가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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