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파주의보 어느날
한국 나흘 째.
이틀간은 피곤함에 그냥 까무룩 잠들었지만 사흘째 되던 날 결국 자는 방 시계 건전지를 빼냈다.
그제야 안온한 밤.
옆 테이블의 커플이 투닥거리며 싸운다던가 자산 불리는 노하우를 속닥거릴 때 귀는 더 쫑긋해진다. 신체에서 가장 툭 튀어나온 존재감에 비해 기능 여부를 외관으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은 순간이다.
하이톤의 아이 목소리, TV소리를 뒤로하고 바닥에 다다미 2장씩 1-2인용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된 조용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마주 앉은 대학생 둘은 2시부터 각각 수업과 아르바이트가 있단다. 그중 한 명은 원하는 이상형을 미리 적어두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소리를 최근 들었다고 한다. 서해로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기서 일출도 볼 수 있는 거 맞냐고도 한다. 너무 귀여운 이십 대 초반.
그 옆 테이블에선 초중년의 두 여성분이 소형 팔레트를 갖고 모여 창을 번갈아 보아 가며 아기얼굴만 한 작은 스케치북에 바깥풍경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서로의 명암에 대해 조언을 나누며 터치를 더해간다. 손과 눈은 이렇게 키보드를 누르며 연기 중이지만 이놈의 밝은 귀 때문에 스케치북을 구경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더불어 두 분 덕에 여태 준비하지 못한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서둘러 준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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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땅 중에 몇 평, 가장 안전하고 내 것이라고 생각한 내 집에서도 이따금씩 들리는 베트남어 대화 소리는 내가 이방인임을 느닷없이 재확인시켜주곤 했다. 거의 2년을 살았건만 이제 겨우 중국어와 베트남어를 구별할 수 있을 뿐 숫자와 인사말 외에 내가 아는 단어는 열손가락 안에 꼽힐듯하다. 6 성조의 허들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의욕의 싹이 잘렸다고 핑계를 대본다. 코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한들 나는 알아챌 수가 없는 것이었다.
20년 넘게 산 이 동네로 돌아와 두 귀가 솔깃해지는 지금. 양 테이블의 대화가 청력검사 중인 듯 너무 잘 들린다. 재즈풍 캐럴과 두 테이블의 대화가 마구 섞인다.
이상하게 편안하다.
시계의 작은 째깍거림도 소음인 나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