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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Jul 13. 2024

30년 내공의 리더에게 배운 4가지 자질

일터의 근육

밀도 높은 기획안을 요구하고, 소통도 꼼꼼하게 하는 편집장이라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했지만, 선배의 디렉팅을 받을 때마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씁쓸함과 '중요한 걸 배웠다'는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성장에 대한 갈망은 이 두 기분이 동시에 찾아올 때 가장 짙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Editorial Thinking 중


나는 바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내게도 이런 상사가 있었다. 좋다, 싫다, 어느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하기 힘든, 존경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던 사람.  


그녀는 30년 넘게 일했다. 나는 그중 고작 8개월을 함께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남긴 임팩트는 그 어떤 상사보다 컸다. 8개월 간, 나는 그녀가 일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방식을 빼놓지 않고 관찰하려 노력했다. 한 사람이, 그것도 여성이 현업에서 30년 넘게 버텼다는 것은 보통 일을 잘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요인들이 그녀를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만든 것일까 궁금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나만의 결론이다. '오랜 시간 현업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일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덧붙이고 싶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전략 업무입니다.”

첫 원온원 때 그녀는 우리(커뮤니케이션) 조직이 하는 일을 이렇게 정의했다. 함께 했던 리더들 중 어느 누구도 커뮤니케이션이란 업을 전략 업무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10년 가까이해도 아직도 어려운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전략적 사고는 무엇인가?"


자신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특히 업에 대한 리더의 정의는 구성원이 스스로 불타오르는 동력을 제공하기도, 가지고 있던 불씨를 꺼버리기도 한다. 그녀의 정의는 나를 다시 한번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일을 기자를 만나고 보도자료를 쓰는 일이라고 말할 때, 그녀는 커뮤니케이션이 실행보다 전략이 더 중요한 업무라 정의하고 있었다. 그녀가 매번 두 발자국 더 앞서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업을 정의하는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만의 엣지를 찾아라. 그리고 나대라.

OOO 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한 가지. 그 한 가지가 그 사람의 엣지(edge)고, 유니크함이다. 일을 잘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대체불가능한 무언가를,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늦어도 40대가 되기 전에는 꼭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직장인들은 40대가 되면 지금 있는 자리를 잘 보전하는 데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2,30대에 만들어 둔 자신만의 유니크함이 있다면 40대 이후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무기가 되어준다고.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엣지를 발견하는 데서만 그치지 말고 세상 밖으로 계속해서 떠들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즐겨 듣는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이란 팟캐스트에서는 이를 전문용어로 "나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대는 일, 나 역시 참 못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오래도록 나를 지키며 일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나댐을 연습해야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유니크함을 인정해 줄 때, 세상에 놓인 더 많은 기회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자연스럽게 나의 뾰족함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나대지 않으면 정말 아무도 모른다.



모든 일은 '왜(why)'에서부터

와이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설명 가능한' 자신만의 까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 그 이유가 틀렸다고 할지라도, 한번 생각해 보고 선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결정은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 속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단기적으로는, 이유 없이 선택한 결과물을 가져갔을 때 더 많이 깨졌다.


그녀는 모든 일을 '왜'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이 단어는 왜 쓴 거죠?", "기자는 그 데이터를 왜 요청한 거죠?", "이 강연은 저희한테 왜 들어온 거죠?" 등등등. 팀 메신저에 쓰는 단어조차 허투루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처음에 나는 이런 '습관적 와이 중심 사고'가 꽤 혼란스러웠다. 스스로 나도 굉장히 'why' 중심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을 극도로 지양하며, 이유와 의미 없이 일을 시키는 리더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인데, 그녀의 '왜'에는 왜 제대로 답을 못하는 것인가?!


그것은 '처음 하는 일'과 '하던 일'을 구분해 사고하는 차이였다. 기존에 내가 'why'에서 출발한 업무들은 대개 기획안이나 제안서를 쓸 때처럼 처음 해 보는 프로젝트성 업무였다. 하지만 그 외 일상적으로 해오던 업무들은, 'what'만 고려해 빠르게 해결하는 데 집중했었는데, 그녀는 이런 일상적인 모든 업무에서도 'why'를 중시했던 것이다.


연차가 쌓이다 보면 해보지 않은 일보다 해봤던 일이 훨씬 더 많아진다.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어떤 일도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하던 방식대로만 처리하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기 쉽지 않아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의 '습관적 와이 중심 사고'는 일상 업무에서도 새로움을 만들기 위함이자, 실수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디테일은 원래 한 끗 차이에서 나오는 거니까.

 


해야 할 말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그녀는 참 뾰족한 사람이었다. 해야 할 말은 언제나 명확하고 단호했다. 쿠션어가 없어 오해와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가 A라고 말한 건 그냥 A였다. 그래서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진 않았다. 누군가는 그녀의 말에 찔려 아파했다. 나도 그런 순간들이 꽤 있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지 않나, 아쉬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배울 점으로 꼽은 건, 그녀의 직설적인 화법이 매우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급하게 돌아갈 때, 빠르게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그러나 모두가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룰 때, 그런 순간에 그녀는 좋은 사람보다는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의 화법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런 순간에는 옳았다.


모든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고 의견을 존중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름을 종종 경험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해야 할 일을 빠르게 하는 것이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나를 포함,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움받을 용기, 책임지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용기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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