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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Jan 24. 2021

매일 오후 1시, 책을 만나러 간다

책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반년이 넘어간다. 

남들은 출근하고도 훌쩍 지나 점심 먹을 때쯤인 12시 반에 집을 나선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일터로 가면 딱 1시다. 사는 동네에서 일터까지 차로는 20분 남짓이지만 버스 기다리는 시간까지 도합해 정확히는 12시 20분에 집에서 나온다. 


정류장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론 5분, 느긋하게 걸으면 10분 좀 안되어서 일하는 건물에 다다른다. 요즘엔 길이 얼어 꽤나 미끄러웠기에 조심히 걷느라 내심 답답했다. 늘 쫓기듯 걷는데 습관이 되어 있어 더 불편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건물 4층인데, 2층이 한의원이라 엘리베이터에선 미세한 한약 냄새가 난다. 그러다 4층에 다다라 문을 열면 종이책 냄새가 난다. 아이들이 모인 곳인데도 조용하다. 

선생님이 책을 권해주고 아이들이 책을 읽는 그런 공간이기에 장소가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곳에선 책 읽기가 내 취미가 아니라 일감이 되며, 일종의 기술이 된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기술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이전만큼 순수하게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는데 아직 풋내기라 그런지 여전히 설렌다. 



책을 읽는다는 것, 몸은 고요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마음속은 치열하게 움직이는 작업이다. 

아이들이 고르는 책 중에서 제 입맛에 꼭 잘 맞는 책도 있지만 가끔 만만찮은 적수도 만나게 된다. 무슨 일이든 안 그러겠느냐만은 오늘 잘 해내면 내일은 생각만큼 안 될 수도 있는 거다. 

'제인 에어'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푹 빠져 3시간을 30분처럼 보내는 날도 있고, '세계 곳곳의 지붕 이야기'책을 앞에 두고 30분간 10쪽도 못 넘길 때도 있다. 대체 나와 이탈리아 성당의 돔 지붕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의뭉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투덜투덜 읽는 거다. 


그런데 어찌 됐건 그냥 하는 힘이란 꽤나 강력하다. 그걸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저 관찰하듯 보고 있노라면 책 읽는 힘이 매일 자라나는 걸 느낄 수 있다. <백 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님은 책 읽기가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콩나물에 물을 주듯 쉼 없이 자신을 키우면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책을 왜 읽어야 할까, 대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5살부터 책장 앞에서 책을 읽던 내향인의 입장에서 이 대답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목적을 갖고 책을 읽었다기보단 책 속의 세상에서 노는 게 좋았기 때문에 책을 읽었다. 그런데 삶 속에서 업으로 이 일을 만났고 이제는 저마다에게 꼭 들어맞고 납득이 갈만한 방안을 제시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김형석 교수님의 비유처럼 책 읽기란 궁극적으론 성장의 작업이다. '주식 투자 단타로 이익 내는 법'이나 '인터넷 마케팅으로 광고 창출하는 법'처럼 모종의 기술이 필요한 것과는 다르다. 어느 것이 더 낫다 판가름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그 쓰임새의 색깔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씨앗을 심고 물을 꾸준히 주면 결실이 맺힌다. 

흙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씨앗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강낭콩일 수도 있고 해바라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활짝 피기 위해 씨앗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꾸준히 가꾸어주면 열매는 맺힌다. 그러기 위해 씨앗이 생명을 품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 씨앗은 저마다의 가능성이고 책은 그 가능성에 물을 주는 작업이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어른과 다르지 않다. 

아이나 어른이나 책을 잘 읽고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좋은 건 아는데, 막상 몰입하자면 그 진입장벽이 있어서 쉽지 않다. 


사실 앞서 말한 것처럼, 씨앗이 품고 있는 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의 답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가장 나답게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 방법인 것이다. 

너무 뻔한 답인 듯 하지만 정말 이게 맞다. 

그 누구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취미 생활을 즐길 때 의무감을 갖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잘 맞고 좋으면 내 시간을 내어주면서도 하는 게 사람의 당연한 본성이다. 


자칫 거창 한듯한 답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당연하고 일리 있는 답이기도 하다. 어쩌면 결국 내 입맛에 맞는 책을 선별하고 읽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니, 그로 인한 반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그만큼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가장 내 입맛에 맞고 가장 내가 즐거울 때 최적의 아웃풋을 낼 수 있는 일이 바로 독서라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독서가 어렵고 무겁게 느껴진다면 아직 그건 나와 '인연'이 되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즐겁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독서의 첫출발이 시작된다. 서점에 널려 있는 베스트셀러나 포털에 뜨는 다양한 분야 서적은 그것이 필요한 어떤 이들의 취향인 것이다. 그걸 읽어야 할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그걸 읽어야만 한다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혼자만의 의무감에 벗어나 그 본질을 느껴보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부담에서 해방되고 책과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책은 어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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