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자유여행을 택한 이유
해외여행의 어려움2.
입국신고서, 왜 이렇게 복잡한 걸까
여행 경비를 위한 준비를 마친 후에 남은 또 다른 난관은, 출입국 신고 및 세관신고서 작성이었다. 나도 헷갈릴 때가 있는 서류작성을, 19명의 아이들과 하려면 험난한 과정이 불을 보듯 뻔하게 예상되었다.
요즘은 신고서 작성도 미리 온라인으로 한 뒤 QR코드를 찍어 제출하는 방식이 흔한데 일본 또한 Visit Japan Web을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해보니 이메일 주소로 가입을 하고 비밀번호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인터넷을 활용할 때 의외의 난관으로 작용하는 게 영어다. 한국 사이트만 이용해도 인터넷 주소, 아이디 등 기본적인 도구들이 모두 영어라 적어도 알파벳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알파벳을 몰라도 똑같은 모양 찾기라도 하려면 대문자와 소문자의 매치는 돼야 한다. 보이는 글자는 소문자인데 키보드에는 대문자만 있으니. 화상키보드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그 부분은 낫지만 비슷비슷한 모양이 많아 구별이 쉽지 않다.
이메일 주소는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저 너무 긴 알파벳과 특수문자의 나열인지라 기억하기가 어렵다.
비밀번호는 더 어렵다. 각 사이트마다 조건이 제각각이다. 기억하기 쉬운 생년월일이나 전화번호, 연속되고 반복되는 숫자는 보안상의 이유로 안 되고, 몇 자리 숫자여야 하고, 영어나 특수기호가 섞여야 하고 등등 기억은커녕 만들기도 어렵다.
그런데 Visit Japan Web의 비밀번호 조건은 무려 다음과 같았다.
…what?! 이 난관을 뚫고 QR코드를 발급받아 찍고 들어가느니 신고서를 수기로 작성하는 게 낫다 싶었다.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 양식을 출력해 작성해 보고 완성본을 사진으로 찍어 가 똑같이 베껴 쓰게 하는 작전이었다.
1시간 여의 사투 끝에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난관은 영어만이 아니었다. 생년월일을 알아도 익숙한 순서가 아닌 일, 월, 연도의 순으로 써야 한다든지 한 자리 숫자는 앞에 0을 붙여야 한다든지 칸을 맞춰서 써야 한다든지 예상치 못했던 많은 부분이 난관의 연속이었다.
특히 소근육이 약한 일부 아이들은 정보를 알아도 작은 칸에 맞추어 또렷한 글자로 쓰기가 어려웠다. 평소 필기도 엄청난 악필인 아이는 신고서도 도통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단기간 연습으로 수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알려주지 않은 개인정보도 알아서 털어가는 시대에 이런 건 왜 이리 어렵게 작성하라고 하는 걸까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일단 어려운 아이들을 파악하여 교사들이 도움을 주는 걸로 계획을 하고 어찌어찌 연습을 마쳤지만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싶어 또다시 폭풍검색에 들어갔다.
그러다 Visit Japan Web에서 이전에 못 봤던 ‘대리 입력’ 메뉴를 발견했다. 냉큼 시도해 보았지만 해당 메뉴는 여행사 등에서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여행객들이 각자 입력할 해당 정보를 불러올 수 있는 방식인 것 같았다.
계정 가입이 어려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메뉴는 아니었으나 대리 입력이 가능하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웹사이트 이용방법을 샅샅이 훑었다. 대부분 정보가 성인이나 가족 여행객에 맞춰져 있어 우리처럼 특별한 경우를 위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동반가족 등록의 대상과 제한에 대한 문의를 열심히 탐색한 결과 드디어 내가 학생들을 동반가족으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찾아냈다!
법정대리인이 아니어도 동반가족에 등록할 수 있다는 답변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래서 다음날 휴대폰을 이용한 입국 및 세관신고서 작성에 다시 도전했다.
계정 가입이 가능한 아이들은 각자 가입하여 정보를 입력하도록 했다. 예상대로 비밀번호 생성과 이메일 인증에 다소 시간이 걸렸고,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며 애매한 사진들 속에서 특정 사진을 선택하라는 까다로운 요구까지 맞닥뜨렸다! 흐리멍텅한 사진 좀 식별 못 한다고 사람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야 하다니…. 몇 번의 오류를 거쳐 겨우 계정생성에 성공했다.
항공편 입력은 항공사 목록이 너무 길어 선택이 오히려 더 어렵기도 했다. 그래도 실물여권이 있으면 사진 촬영만으로 여권 정보가 자동 입력되고, 숙소 주소는 우편번호 검색으로 한결 간단하게 입력할 수 있으며, 국적이나 직업 등의 정보는 한글로 된 보기 중에 선택하면 된다는 등의 장점이 있었다. 한번 신고서를 작성해 본 경험이 헛되지 않아 제법 수월하게 정보를 입력하고 QR코드를 캡처했다.
그리고 계정 가입이 어려운 아이들만 교사들이 나누어 동반가족으로 등록한 뒤 QR코드 사진을 각자의 휴대폰에 저장하고 찾아서 보는 연습을 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거나 사진을 삭제하는 만약의 사태(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경우다)를 대비해 개인별 QR코드를 모두 출력해 교사들이 가져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트래블월렛 카드를 충전하고 ATM에서 출금을 하는 방법과 트리플 앱에 사용한 용돈을 기록하는 방법까지 안내를 한 번 하고 진짜 여행 준비가 끝났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니 서류만 한 더미였으나 무거워진 짐만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유여행은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지나고 나면 더 많은 추억으로 남는다.
패키지여행에서는 근사한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면, 자유여행은 그 풍경을 찾아 헤맨 모든 과정이 추억으로 남는다. 패키지여행에서는 맛있었던 음식이 기억에 남지만 자유여행에서는 성공적인 메뉴 선택도, 대실패 한 메뉴도 훗날의 에피소드로 추억된다.
스페인 여행에서 2주 동안 맛보았던 수많은 음식 중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바르셀로나에서 보이는대로 들어간 빠에야 전문점으로, 매우 짜고 비싸서 소위 말하는 '눈탱이를 맞은' 식사였다. 당시에는 분노했으나 지금은 가족끼리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박 5일의 여행뿐 아니라 여행을 준비한 두 달 여의 기간이 아이들에게는 모두 설레고, 기대되고,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자유여행에 도전한 의미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