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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극한직업 Sep 21. 2023

캠핑 가서 잠만 자던 아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 학생들과 캠핑 프로젝트1

여전한 늦더위에 실감이 나지 않지만, 어느새 9월이 다 가고 있다.

1년 간 버킷리스트를 정해 실행하는 교양학부 1학년 청년도전 프로젝트는 2학기의 시작과 동시에 캠핑 준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버킷리스트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매번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친구들과 함께하는 캠핑'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며 급격하게 유행한 캠핑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였나 보다. 그럴 만도 하다. TV나 온라인에서 보이는 캠핑 영상을 보면 나도 설렐 때가 있다. 고즈넉한 자연, 예쁜 텐트, 감성적인 조명, 맛있는 음식 등.    

낭만적인 캠핑의 분위기… 그러나 현실은
그러나 현실의 캠핑이란, 낭만은 짧고 고생은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핑 수업을 계속하는 데에는, 학생들이 원한다는 이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캠핑은 끊임없는 협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회성과 대인관계에 취약점을 가진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활동이 된다. 유튜브 속 캠핑 전문가들이야 혼자서도 척척 타프, 텐트를 친다지만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에게는 반드시 함께 하는 일손들이 필요하다.

커다란 텐트를 함께 맞잡고, 펼치고, 세우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살피고, 협동을 위해 소통하고, 상대와 호흡을 맞추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을 배운다.

물론 쉽지는 않다. 비장애 대학생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팀플 아니던가. 나 역시 대학시절 팀플이 있는 과목은 최대한 피해 다녔다. 혼자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과제뿐 아니라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될 수 있으면 기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나 결국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원만한 대인관계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협동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나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누가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상황을 살펴 자신이 할 일을 찾고,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하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기도 하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타인의 의견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인간관계의 이해'를 교과목 중 하나로도 가르치지만 학습이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에서 적용되게 하려면 실제 상황 속에서 연습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캠핑에서 요구하는 기술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적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인지적인 능력 이외에도 소근육 사용, 협응, 공간 및 모양지각, 절차적 기억 등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비장애인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기술에도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타프, 텐트, 의자, 테이블 등 여러 캠핑용품들을 설치하고 정리하며 아이들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 기술들을 연습하게 된다. 그리고 기본생활기술은 결국 직업생활에서 수행하게 될 직무 기능의 바탕이 된다.

기능습득에는 꾸준한 반복연습이 필요하고, 캠핑은 이를 위한 아주 좋은 활동 중 하나이다.


또한 여행, 스포츠 활동 같은 버킷리스트들이 한두 달의 준비와 실행으로 시작하고 종료되는 것과 달리 캠핑은 한 학기 이상 틈틈이 진행할 수 있는 활동거리가 많다. 주 1회, 4시간씩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날씨, 계절 등의 이유로 각 버킷리스트 사이사이 생기는 공백들을 알차게 채워줄 수 있는 활동이 캠핑이다.

학생 활동지: 캠핑 마인드맵

텐트를 설치하는 것 외에도 캠핑요리, 게임, 가랜드 만들기 등 연관된 여러 가지 활동거리가 많기 때문에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한 첫 해에는 캠핑으로만 일 년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청평이라는 멋진 자연환경을 가진 우리 학교는 교내 잔디밭에 캠핑의자와 테이블만 놓아도 캠핑의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교내에서 즐기는 한낮의 캠핑


실제로 올해 1학년들은 학기 초에 캠핑을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정했고, 날씨와 준비기간을 고려하여 가을에 캠핑을 하기로 계획했다.

캠핑용품은 설치방법을 익히는데 여러 번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에 틈틈이 타프부터 치는 연습을 했다. 텐트는 취침을 하지 않는 이상 활용도가 낮기 때문에 우리는 그늘막인 타프 치는 방법을 먼저 가르쳤다.

몇 년간 캠핑 수업을 하다 보니 솔직히, 타프를 치기로 한 날이면 출근할 때부터 힘든 기분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 시간 안에 설치부터 정리까지 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빠듯하기 때문이다. 즐기는 시간보다 노동의 시간이 서너 배 길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협동은 모두가 똑같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과제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한쪽 끝을 잡으면 다른 사람은 반대쪽 끝을 잡아야 하고, 한 사람이 폴대를 잡으면 다른 사람은 줄을 걸어야 하는 등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원활하게 협동을 할 수 있다.

단순모방도 어려운 아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찾고 수행하도록 하려면 교사는 이쪽저쪽을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 어느 정도 아이들이 제 몫을 해낼 쯤 되면, 그 아이들은 2학년이 되고 또 새로운 신입생이 온다.


어릴 때 가족여행을 가면 우리 아빠는 텐트를 설치해 주고 내리 잠만 잤다.
그때는 놀러 와서 잠만 자는 아빠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은 호텔이 최고다.


나는 호텔을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4년째 캠핑을 하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타프를 설치하고 짧은 휴식을 만끽할 때면 아이들이 한 마디를 한다.


“힘들지만 행복해요.“


환한 웃음만으로 충분히 짐작 가는 마음이지만 한 번 더 물어본다.


“힘든데 왜 행복해?”

“친구들하고 같이 캠핑하니까요.”


경증의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한 긍정의 경험’이 지극히 적다. 대부분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내며 물리적으로는 통합되어 있었으나 진짜 대등하게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되긴 어려웠던 까닭이다.

교내에서 후다닥 타프만 쳐도, 미니화로에 소시지 하나씩만 구워도 기쁘고 행복한 아이들은 지금 자라섬 캠핑을 앞두고 설레고 있다.

지쳐서 잠만 잘 지언정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여행을 떠나고 텐트를 쳤던 그때 그 아빠의 마음이 지금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덧) 브런치의 연으로,  KTV <생각의 힘>​​ ​​에 출연을 했습니다. ‘장애인’ 편견을 버리세요(23.09.19) 라는 제목으로 해외 자유여행 도전기와 캠핑 등 프로젝트 수업이 담겨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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