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이야기] 집념의 참가자들과 폭풍의 부산 여행2

by 길위의스튜디오

하, 그러니까 트래킹 포기하고 계획을 바꾸자니까 말을 안 듣더니……. 할 말은 많았지만 속으로 삼켰다.


<길 위의 스튜디오>는 참가자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자유여행이다. 여행에는 안전을 위해 두 명의 지도교사가 동행하지만 가이드처럼 인솔자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참가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발달장애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문제상황에서 적절한 방법을 찾고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다. 현실에서 문제상황은 수없이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해결능력은 이론적인 학습으로 습득하기 어렵다. 여러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며 적응능력을 높이는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문제해결과 의사결정능력 등을 높일 수 있는 아주 좋은 매개이다.


참가자들끼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조언을 했지만 이미 감정이 격앙된 참가자들은 쉽게 조율이 되지 않았고, 결국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어 일단 모두를 달래 근처 카페로 이끌었다. 마침 그 성낸 참가자가 추천한 카페였다.

우선 달콤한 음료를 마시자고 권했다. 달콤함이 주는 기분 좋은 효능이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당이 부족하면 짜증이 치솟는다.

안락한 실내에서 한숨 고른 후 차분히 지금의 상황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대안을 찾도록 기다렸다.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으나 방향을 잡으니 신속하게 움직였다.

트래킹 계획은 해변열차 탑승으로 변경했고, 식당도 이동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변경했다.

대안은 모두를 만족하게 했다. 그리고 감정이 가라앉자 스스로 지난 상황을 돌아보더니 조심스럽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서툴지만 진솔한 사과에 혼탁했던 내 마음도 사르르 가라앉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위해서 애써 평온을 가장했지만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동요된 게 사실이었다. 비바람이 나만 피해서 치는 것도 아니고, 체력적인 고됨은 20대 팔팔한 청년들보다 내가 더 하다. 그 와중에 성격도, 원하는 것도 제각각 다른 7명을 다독여 여행의 기분을 망치지 않게 한다는 건 정말 나에게도 시험에 들게 하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내가 애썼음을 알아채고, 먼저 마음을 표현하는 참가자들을 보자 힘들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그날의 집념은 계획을 고수하는 고집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대안을 끝까지 찾아보려는 노력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에는 씨라이프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아쿠아리움은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기대 이상으로 높았던 곳이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 몰랐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 나오면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인어공주쇼를 무척 좋아했다.

역시 취향이란…… 또래의 친구들끼리만 공감하는 무언가가 있다.


실내 아쿠아리움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바깥의 날씨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바람은 불고, 하루 종일 걷고 피로했기에 오후 6시가 넘어가자 스멀스멀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심지어 이후 일정은 야경 관람이었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야경을 보러 가는 건 무리라는 것이 합리적인 나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상황을 지켜보며 논의를 했다. 내 편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친구 챗GPT도 동원했다. 챗GPT는 부산 CCTV 화면을 증거로 보여주며 오늘은 야경을 보기 어렵다고 내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챗GPT도 틀릴 때가 있어요.”


기술의 발전도 야경을 보고 피시 앤 칩스를 먹겠다는 참가자들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안갯속을 걸어 야경을 보러 더베이101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는 더 내렸지만 비가 뿌연 안개를 걷어내며 더베이101의 화려한 불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념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참가자들은 더베이101을 배경으로 피시 앤 칩스를 놓고 맥주 한 잔을 부딪히며 진한 추억이 될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망가진 우산 대신 조그만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는 참가자들은 궂은 날씨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완전히 날려버린 것 같았다.


마지막 날 역시 비 예보가 있었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참가자들이지만 이틀간의 경험은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함께 대안을 고민하여 태종대에서 아르떼뮤지엄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예보와 달리 날이 갰지만 참가자들은 계획을 변경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은 늘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것은 계획대로 하는 것도, 계획을 바꾸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이라는 점이다.

내가 선택했기에 더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여행. 부산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여행도 기대하며 Coming soon.

금요일 연재
이전 10화[K의 이야기] 집념의 참가자들과 폭풍의 부산 여행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