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이야기] 집념의 참가자들과 폭풍의 부산 여행1

by 길위의스튜디오

<길 위의 스튜디오>의 마지막 그룹은 직장생활 경력이 꽤 되는 참가자들이다. 사회초년생이 많은 다른 두 그룹과 달리 연차도 좀 있고 모아놓은 돈도 좀 있고 이래저래 여유가 있는 그룹이다.

반면 사회생활에 연륜이 쌓인 만큼 일에 찌든 흔한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여행에 대한 욕구는 누구보다 높다.

지금껏 직장에서 고생만 하고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왕 가는 여행, 최대한 길게 가자’가 이들의 바람이다.


그래서 선택한 첫 여행이 부산 2박 3일 여행이다.

일정이 길면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다른 두 그룹보다 한 달 여를 더 준비한 끝에 6월 20일,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내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본격적인 장마와 더위가 시작되기 전 여행을 다녀오고자 했지만 출발 전부터 비 소식이 있었다.

준비 내내 들떠있던 참가자들은 매일 뉴스를 확인하고 전달하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출발일은 비가 잦아들며 살짝 흐리기만 했다.


부산까지는 KTX로 2시간 30분가량이 걸렸는데, 참가자들은 이동하는 내내 친구와 나란히 앉아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워했다.

이 그룹은 서로 단짝이거나 연인인 참가자들이다. 학창 시절 인연을 졸업 이후에도 쭉 이어가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자신들끼리는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길 위의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특히 연인관계인 두 참가자는 함께 떠나는 첫 여행에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갈등도 있고 이별도 겪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현재는 1년 넘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은, 다른 연인들처럼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우려로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 여행이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들뜬 참가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부산에 대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앞다투어 꺼냈다.

참가자들은 ‘단짝투어’를 시작한 이후로 주변 사람들과 여행을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관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공통화제가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단짝과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하고, 절친하던 동료는 퇴사하면 멀어진다. 서로 소속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며 공유하는 관심사가 줄어들면 대화거리가 없어지고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반면 ‘여행’이라는 화제가 있는 단짝투어 참가자들은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온종일 함께 하다 보면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정도. 그래도 그만큼 신나고 흥이 가득하다는 의미라 피곤하지만 귀엽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다가 도착한 부산. 조금씩 비가 흩뿌렸지만 이동에 어려움은 없었다.

짐을 맡기고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숙소를 먼저 찾아갔다.

먹거리, 이동방법, 여행지에서 할 일까지 파워 J처럼 꼼꼼히 준비했기에 여행은 거침없었다.

무사히 숙소를 찾아 짐을 맡기고 근처 맛집으로 향했다. 첫 식사는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

참가자들이 찾은 참잘돼지국밥 집은 고향이 부산인 친구도 이름을 알고 있다는 소문난 맛집이었다. 평소 참가자들의 식성과는 거리가 좀 있으나 여행이라 그런지 모두들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하려는데, 바람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날아갈 듯 세찬 바람이 불고, 구름을 몰고 온 탓인지 점점 가시거리가 짧아졌다.

그래도 다음 일정인 깡통시장까지는 괜찮았다.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있어 계획했던 간식도 맛보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돌아보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감천마을이었다. 해 지기 전부터 야경까지, 감천마을의 예쁜 풍경을 온전히 감상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그렇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야는 흐릿해졌고, 끝내는 코 앞의 풍경마저 흐릿해졌다.

계단처럼 층층이 쌓인 색색의 집들을 내려다보는 게 감천마을의 묘미인데…… 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온 세상이 뿌연 안개로 가득했다.

그 유명한 어린왕자 동상과 어깨동무를 하고 인증샷을 찍었지만 사진 속에서 감천마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든 첫 여행에 대한 집념이었을까? 참가자들은 늦은 저녁까지 포기하지 않고 골목을 걷고, 포토스팟 하나도 지나치지 않으며 첫날을 꽉 채웠다.


그리고 바람은 다음 날도 힘차게 불었다.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로 스카이캡슐과 해변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서는 바람 때문에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 모자는 날아가고, 우산은 뒤집어지고, 스카이캡슐은 지연되고……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다행히 탑승은 가능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미포에서 청사포까지 편도만 탑승하고, 걸어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아주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비용도 줄일 겸 그 정도 트래킹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호기로운 계획이었다.


이 그룹은 월급을 스스로 관리하며, 수업료와 여행비용 모두를 자신이 번 돈으로 지불하는 참가자들이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써야 할 땐 거침없이 쓰지만 또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땐 아끼려는 노력도 많이 한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은 계획대로 트래킹을 고집했다.


우산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빗줄기에 옷은 젖고, 세찬 바닷바람에 체온은 내려가고, 지연된 일정으로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 허기도 밀려오는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던 참가자들도 몸이 힘들어지자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기색이었다.

말투에는 점점 가시가 돋쳤고, 갑자기 자신이 추천한 카페에 가지 않는다고 성을 내며 혼자 맛집투어를 하겠다는 참가자도 생겼다. 하나둘 투덜거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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