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발달장애 당사자와 교사들이 함께 쓰는 이야기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쓴 여행 후기와 실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하며, 가독성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일부 내용은 편집, 각색하였습니다.
예전의 나는 혼자서 다니는 것이 어려웠다.
크게 다친 적이 있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무서웠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도 겁이 났다. 지하철을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그나마 낫지만 버스는 타기가 쉽지 않았고, 우리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버스를 타야만 나올 수 있었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 노선을 보는 것도 잘 몰랐다.
어딘가를 가야 할 때는 대부분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함께 해 주셨다. 감사한 일이지만 불편한 점도 많았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약속을 할 수 없고, 멀리까지 다니기도 힘들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래도 학교에서 계속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을 하니까 괜찮았는데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니까 혼자서 다니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는 정말 낯설고, 겁도 났다. 그렇지만 시지각 치료도 열심히 하고, 재활운동도 꾸준히 하고, 대중교통 노선도 외워서 드디어 혼자 대중교통을 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지만 아직은 가끔 헤맬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토요일에 창동 <길 위의 스튜디오> 수업을 갈 때 시청에서 1호선을 갈아타는데 계속 기다려도 의정부 행이 오지 않았다. 다른 열차 몇 대를 지나 보내고 타다 보니까 운이 없으면 수업에 늦기도 했다.
의정부 행 말고 소요산이나 동두천, 연천행 같은 걸 타도 되는지 나는 몰랐었다. 몇 번 수업을 지각한 후에야 배워서 알게 되었다.
강릉 여행을 가기 위해 청량리 역에 KTX를 타러 갈 때는 부모님도 걱정을 했다. 기차역을 혼자 가는 건 처음이어서 지하철에서 KTX 타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어려우면 데려다주시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서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 성인이니까.
여행을 떠나는 날, 혹시 잘 못 찾을까 봐 서둘러서 일찍 출발했다. 청량리 역에 내려서 KTX 표시를 잘 따라갔고, 헤매지 않고 친구들과 만났다. 혼자 KTX역을 찾아오다니, 내가 참 대견했다.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안 된다고 했다. 카페를 찾느라 헤맬까 봐 걱정하시는 거다. 나는 잘 찾아갈 자신이 있는데…… 그렇지만 기차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일단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선생님과 만난 후에 같이 카페를 들러서 아메리카노를 샀다. 커피를 안 마시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그것도 얼죽아다.
한 번은 아빠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취향일 줄 알고 같이 마시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8잔 사줬는데, 다들 커피를 안 마신다고 해서 당황한 적도 있다.
강릉 바다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친구들과 셀카를 같이 찍어서 기분이 좋았다.
날이 더워서 시원한 막국수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더위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계산도 내가 키오스크 더치페이로 직접 했다.
강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짚라인을 탄 것이다. 선생님은 꼭 타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남자답게 도전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여서 힘이 났다.
짚라인이 내려갈 때는 아주 조금 무서웠다. 그렇지만 하늘을 나는 것 같아서 가슴이 뻥 뚫렸다.
나는 멋지게 성공했다. 고소공포증을 이겨낸 내가 진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강릉중앙시장에서 닭강정을 산 것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너무 많았지만 가족들을 위해 닭강정을 샀다. 내가 찾은 닭강정 가게는 유명해서 줄이 진짜 길었다.
실수로 돈만 내고 닭강정을 안 받아오는 바람에 선생님이 도와주셨고, 무사히 닭강정을 살 수 있었다. 따뜻한 닭강정 냄새가 솔솔 풍겨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래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꾹 참고, 청량리 역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부모님은 택시를 타고 와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갔다. 닭강정도 잘 들고 갔다. 집에 도착해 가족들에게 내가 산 닭강정을 선물하자 가족들이 감동을 했다.
직장일도 하고, 혼자 기차역도 찾고, 짚라인도 타고, 가족들에게 닭강정도 선물하고……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