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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Oct 04. 2021

느림보같이 보내는 1박 2일(여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남편과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러 나오니 모처럼 설레었다. 남편은 일탈하는 기분이라고 마냥 신나 했다. 내가 아빠만 챙기느라 많이 무심했었는지 남편은 고작 일박 외박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이를 두고 <날라리 된 것 같다>며 들떴다.


여주는 일정 빡빡하게 하고 돌아다닐 만큼 볼거리가 있진 않다. 내륙지방의 느린 도시랄까. 녹음이 많아 거리에서도 산 공기 내음이 나서 좋다. 우리는 낮에 신륵사에 들러서 기와에 소원을 써서 남기고 엄마 명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부처님상 앞에서 절도 아홉 번 했다.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제사를 지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종교보다 불교가 엄마한테 더 잘 닿을 거 같아서다.


남편과 나는 저녁 무렵이 되어 특별히 갈 곳이 없어 여주에 유명하다는 프리미엄 아웃렛에 들렸다. 식사 전이라 뭔가 아웃렛에서 사서 리조트에 들어가려고 했다. 남편이 나이키 매장에서 새로운 조거 바지에 심취해 구입하는 사이  우리가 원했던 '타코 벨'이 문을 닫아버렸다. 음식을 사서 방에서 맥주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와르르 무너졌다. 시간이 저녁 아홉 시 무렵이었는데 여주시내에도 웬만한 음식점은 문을 다 닫아 마지막 행선지로 이마트에 갔다. 무엇이든 있는 이마트에서 뭐라도 먹을 것을 구해 볼 요량으로 말이다. 여주까지 와서 이마트에 가다니. 남편과 나는 그마저도 재미있어 깔깔 웃었다.


리조트에 돌아왔다. 목재로 장식되고 룸마다 개인 정원이 마련되어있는 리조트였다. 이름도 팀버 하우스(Timber House)라더니 그에 걸맞게 조경이 정말 잘되어있었다. 남편은 오늘 일박이일 외출을 위해 좋아 보이는 숙소 찾기에 공을 들였을 것이다. 누가 날 위해 그렇게 까지 해줄까 싶어 몹시 고마웠다. 그런데 두둥! 더블 침대가 아니라 싱글 침대 두 개가 놓여있다..!

싱글침대 두개가 놓여있던 우리의 숙소

"우리 따로 자는 거야?" 놀리듯 물었다.


남편은 당황해서 부랴부랴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침대 타입이 싱글베드 밖에 없는 건지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좁은 1인용 베드에 베개를 나란히 놓고 누웠다. 비좁아도 꼭 끌어안고 말이다. 남편은 부부는 싸워도 잠은 같이 자야 한다는 주의라 오히려 속상한 일 생기면 쪼르르 도망가서 소파에 눕는 나를 콕 집어다 침대에 같이 눕혀놓곤 했었다.


여주에 와서 특별히 한 것은 없다. 아웃렛을 가거나 이마트를 가거나 하는 것은 집 근처에서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린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났다. 나보다도 남편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흐뭇했다. 한편으로는 엄마 사고 이후 아빠한테 집중된 내 관심을 가끔은 온전히 받길 원하는 남편을 위해,  남편이 놀러 가자고 꼬실 때만이라도 잘 받아주는 부인이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간 여주에서 일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비가 많이 온다. 남편은 말없이 운전을 하고 있다. 배가 고플 것 같은데 휴게소를 들리 자고 할까. 남편인데 가끔은 아들 같은 남편의 운전하는 옆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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