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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Oct 03. 2021

모든 게 옛날일 같아

2021년은 내게 너무 고되고 잔혹했던 한해

"모든 게 옛날일 같아."


남편과 여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가 말했다.


"올초만 해도 이런 길을 달려서 한국사 시험 본다고 다녀왔었어. 7급 시험 본다고. 하루에 여덟 시간 열 시간 공부도 했었어.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죽고 공부도 때려치우고 갑자기 합가에 우린 인천에서 이사를 왔지."


"내가 계열사를 옮기기도 했고."


"너 회사 바뀐 것도 그렇고 어머님네가 갑자기 인천으로 이사도 하고 아버님은 암수술도 하셨어."


당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던 2021년이었다. 시작부터 별로였다. 같이 근무하던 계원 중에 나와 진급시기가 겹쳐 경쟁자인 사람이 있었는데 막상 1월에 패를 까고 보니 과장은 그쪽이 더 고생했다며 2년이나 우리 과에서 서무를 봤던 나 대신 그 사람을 밀어줬다. 억울해도 이미 결과가 나온 마당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과장 말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작년에 워낙 사건사고가 많아 사건사고 담당이었던 그 사람은 하루 걸러 하루 날밤 새워가며 근무를 했고 반면 내 담당 업무분야는 무사 평탄해서 중간만 해도 특별히 모날 게 없었던 한 해였다.


이런 걸 운과 흐름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작년 진급 때 심사승진에서 그렇게 고배를 마시고 보니 나도 더 이상 여기 매여있을게 아니라 과감하게 내 원하던 일에 도전해야 할 때라는 판단으로 휴직계를 내고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올 2월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아이 갖기 전에 꼭 직장부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에 눈떠서 자기 전까지 공부 생각만 하는 전업 수험생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영상 강의를 듣다가 왠지 비범하게 울리던 전화는 나를 거실에, 어둠 속에 세워놨다.


"엄마가 죽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며 또 한편으로는 조문을 와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 때 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사는 게 바빠 좀 소홀했던 인연들도 나를 찾아와 슬픔에 젖은 내 눈물을 닦아주는구나. 엄마는 아마도 내가 외롭게 살지 말라고 몸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걸까. 좋게 생각해 보려고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던 것 같다. 어떻게 긍정 회로를 돌려보아도 고마운 것과 별개로 엄마의 죽음은 내 가슴을 할퀸 깊은 상처였고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공부를 때려치운 나는 집에서 울기만 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집중할 것을 찾아야 한다고 행정법 보던걸 마저 보라했다. 아빠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숨기려고 카페에 내려가긴 했지만 책은 한 줄도 읽히지 않았다.


"엄마, 엄마 때문에 나 시험 망했다."


매일 저녁 깜깜해지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집 앞 공터에 들러 주저앉아서 떠난 엄마를 원망하며 펑펑 울다가 눈물을 말리고 집에 들어가 괜찮아 보이는 얼굴로 아빠와 남편을 맞았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아빠와 합가를 했다. 서너 달 사는 패턴이 달라 사네 못 사네 하다가 서로 적응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최근의 일이다.


올 한 해에 너무 변화가 많았다. 하도 많이 여러 일들을 헤쳐나오다 보니 모든 일이 옛날일 같다. 이 많은 일들이 육개월동안 일어난 일이라니. 원하지 않는 변화였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독이고 살아나가야 할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며, 추스름이 필요한 그런 한해.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이 있어서 여기까지 6개월을 어떻게든 살아냈다. 나는 2021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올 한 해가 흘러가면 내년엔 우릴 위한 운과 흐름이 돌아오길 바라면서 2021년의 10월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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