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보험금 때문에 그러시죠?

#23. 엄마가 죽은 이유를 묻는 게 보험금 때문이겠냐

by 풍선꽃언니

우리 집은 아파텔이라 빨래를 널 별도의 베란다 공간이 없다. 대신 안방 침대 옆 여유공간에 빨래를 넌다. 빨래 마를 때 섬유유연제가 마르면서 공기에 독소가 벤다는 카더라를 언젠가 주워듣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는다. 아빠가 자는 방이라 신경이 쓰인다. 창문을 열다 보니 집이 27층이라 하늘이 가깝게 보인다. 오늘은 점심 즈음부터 날이 슬 흐려지더니 비가 내렸다. 가슴속에 아련해지는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다가 이내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빠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턱밑에 대롱대롱 달린 눈물을 슥슥 닦았다.


남편은 대학원 과제한다고 오후 두시쯤 집 앞 카페로 나갔다. 밤 열 시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했는데, 다 끝내고 집에 저녁 먹을 때나 돼야 들어오겠지. 그래도, 우리 집 이런 분위기에 상심에 젖은 아내 돌보며 장인을 모시고 살면서도 직장생활 착실하게 해내고 대학원 중간고사도 잘 치러내는 남편. 내 마음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 주려고 항상 힘을 내달라며 다정하게 말해주던 남편, 정말 고마워.


휴직하고 나니 평일이고 주말이고 일상이 비슷하다. 유연근무를 하는 남편은 열 시까지 출근을 하고 아홉 시 즈음 집을 나선다. 나는 생각을 할 시간이 많다. 아빠도 생각할 시간이 많다. 둘 다 원한다면 출근을 할 수 있지만 심신이 힘들어서 의욕이 없다. 나는 정신과 처방약으로 감정을 다스리는데 보통 낮에도 계속 잠을 잔다. 깨어있을 때는 밥을 차렸다가, 청소를 했다가 하며 전업주부처럼 살림을 한다. 아빠는 아침 여섯 시부터 하루를 시작해서 한 시간 정도 단지 내 커뮤니티센터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출근하는 남편 배웅을 하고 시리얼로 아침을 때운다. 점심 즈음에 내가 점심식사를 준비하면 같이 먹고 냉커피를 한잔 타서 건네주면 그때부터 각자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생각에 잠기는 것이 보통의 우리 둘의 루틴인 것 같다.


그날따라 아빠는 거실에서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엄마 사건 담당 형사와 통화하고 싶다고. 며칠 뒤 이사 가면 버릴 침대, 엄마 자리에 누워 설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잠결인데도 스피커폰 통화도 아닌데 아빠와 상대방 경찰관의 대화들이 선명하게 들렸다. 본인이 담당 형사가 아니라고 했다. 아빠는 담당 형사 연락처를 물었다. 상대는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내선을 알려달라 언제 통화 가능하냐 물었다. 외근 중이라 모르겠단다. 사건이 종결이 되었는지 정도는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아마도' 국과수 답변을 기다리고 있거나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하. 무책임하긴.

나도 당신과 같은 경찰 가족이라 일 많고 바빠서 오는 전화마다 만족할만한 답변하기 어렵겠다는 이해는 하오만 당신은 아는 게 뭐요.

우린 아직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아직 사건 종결되었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엄마가 죽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정보공개 청구도 요청해 두었다. 사고 당시 담당 경찰관은 마치 엄마의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실족사인지 아무튼, 죽음의 비밀을 우릴 위해 최선을 다해 파헤쳐 밝혀 줄 것처럼 말했었다. 당시엔 믿음직스럽고 고마웠다. 남동생이 "엄마의 시신에 훼손된 이빨"을 받으러 갔을 때도 문밖까지 따라 나와 실족사로 종결이 날 것 같다며 심심한 위로를 전해주던 담당 형사. 그 사람은 바빴을 것이다. 다른 진짜 수사를 요하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엄마의 사건에 대해서는 결과적인 부분만 확인하면 되는 부분이고 해서 뒤로 미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경찰의 소관사항은 타살이냐 자살이냐(형법상 죄가 되냐 되지 않느냐)의 문제이지 그 죽음의 방법이 아니다. 우린 엄마 죽음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알고 싶었고 경찰관의 말과 행동에서 그 원하는 내용들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형사는 전화를 끊었고 아빠는 이것도 저것도 모른다는 형사와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좋게좋게 통화를 마쳤다.


전화벨이 울렸다. 새로운 형사. 본인이 담당 형사는 아니지만 전화하셨다는 메시지를 받고 연락드렸다고 했다. 아마 우리가 집요하게 묻는 통에 직무대리쯤 되는 사람이 대충 넘겨받아 전화를 했겠지. 그는 검사가 사건 종결하라고 했으며 그간 한 달 가까이 우리가 알던 것 이상의 어떤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몹시 불쾌했다. 그렇지만 그렇다는데 뭐. 가족들은 엄마를 겪어온 세월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실족사에 절대적 무게를 두고 있는 상태라 그 형사가 뭐라고 결론이 났다 말한들 흔들리지 않을 것이었으나 참고차 확인을 하고 싶었다.


"예, 알겠습니다." 아빠가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대방의 목소리.


"사망 보험금 때문에 그러시죠?

어떻게 하면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지.

안녕하세요 형사님.
저는 당신의 이름도 알고 소속도 알고 있습니다.
왜 당신이 제 분노를 샀는지 알고 계실까요.
어머니의 사망으로 상심한 가족들의 심정이
당신이 일을 하는 하루에 있어서는 그냥 그런 귀찮은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 달 만에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해 담당 형사를 찾은 가족의 전화가 상식 밖의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희 어머니와 같은 사고를 겪고 사망보험금 청구를 위해서라며 사망사유를 확인시켜달라고 형사님을 들볶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저희는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깊은 슬픔에 빠져있어 돌아가신 정황을 여쭤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당신 소속 경찰서 서장실 직통전화로 당신의 무례함을 질책할까도 고민했으나 당신의 삶에 한 번의 실수였을지 모르는 오늘의 한마디로 당신이 받을 불이익을 배려하여 참습니다.
사람 목숨이 누군가한텐 돈이 결부되는 중요한 문제 일수 있지만 저희에겐 돈 주고라도 살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사랑의 문제이니 그런 무례함으로 다른 이에겐 다신 상처 주지 마세요. 그러기를 바라며 이번의 당신의 실언은 용서합니다.

엄마의 사망사인은 추락사라는 것 말고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제 그저 우리가 정한 것이 진실인 것이고 그리 믿고 사는 수 밖에.


살면서 가족밖에 모르던 우리 엄마. 소녀 같던 우리 엄마. 우리 모두를 자신보다 더 많이 사랑해 주었던 엄마. 함께한 추억속에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하는데 그런 엄마는 우릴 함부로 떠날 용기를 낼 모진 사람이 못되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을 주고 받았던 길다면 긴 세월이 안다.


엄마, 우리 이제 곧 이사가.

엄마 자리는 늘 우리 곁에 비워두고 있을게

봄바람타고 한번씩 나들이 와요.

우리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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