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엄마의 죽음)을 견디는 과정<1개월차>

#22. <언제쯤 괜찮아 지나요>에 대한 경솔한 중간점검

by 풍선꽃언니
언제나 그래
이별은 생각보다도 먼저 오지
그래도 모두들 웃으면서 말하는 거야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나요
안녕, 어딘가에서 다시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중>

엄마가 죽은 지 한 달 하고도 한주가 지났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시간보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도 덩달아 늘어났고, 엄마가 추락해서 죽은 집의 창문에 남은 엄마의 손자국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잡다가 떨어졌을까 연구를 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흥분은 말랐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 그러나 이기적 이기라도 해야 하는 것 같다. 살아야 하니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잊고, 망각하고, 즐거운 경험들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그 기분에 파묻고는 겉보기엔 별일 없는 듯 위장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보호하면서, 그러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만한 것들 조차 차라리 잊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라는 게 참 양념감 자랑 다를 바가 없어.
치즈가루를 묻히든 칠리 가루를 묻히든 대충 그럴듯하잖아. 그러나, 가루 다른 거 묻혀서 맛 살짝 다르다고 해도 감자튀김은 감자튀김일 뿐.

집에 있다 보면 우리 집은 27층인데도 엠뷸런스 소리가 앵앵 울릴 때마다 그 소리가 쨍하니 울려 고막을 긁는다. 지난 며칠 동안 단지 내에 대기하고 있던 출동차량을 두어 번 보았다. 119 엠뷸런스 소리에 예민해진 것도 엄마의 사고 이후부터다. 누군가의 신고로 우리 집 단지 내 주차장을 출입문을 미끄러지듯 통과해 들어왔을 하얀 봉고와 응급구조사며 의료진 몇 명이 이미 의식이 없던 엄마를 살려보겠다고 CPR이니 전기충격을 시도했을 장면들이 눈에 그려진다. 엄마 곁에는 우리 중 누구도 없었다.


엄마의 육신은 엠뷸런스 안에서 이미 의식이 없었다는 검안서의 건조한 한 줄의 글귀가 큰 위로가 된다. 엄마 홀로 외로움 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았음을. 떠나는 길에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하고 그렇게 호흡을 거두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곁을 지키지 못한 남은 우리가 너무 미안해서 더 깊은 슬픔에 매몰되고 말 것 같다.


사십일 정도가 지나고 나니 뭐랄까, 내 경우에는 엄마의 빈자리가 아픈 단계에서 그 빈자리를 내가 메꿔 가족들의 상처를 꿰매어야겠다는 의지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당장 엄마가 없어져버린 첫 주부터 우리는 밥을 먹으려 식탁에 둘러앉을 때마다 가슴속에 울컥하는 고통으로 힘들었으니 나는 가사를 맡았다. 다른 사람들은 조악하나마 아등바등 엄마의 자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채우려는 나를 돕기 시작했다. 고기가 필요하다면 고기를 사다 줬고 집에 재활용 쓰레기가 다 차면 버리러 내려갔다. 함께 빨래를 널었고, 오늘의 메뉴가 뭔지 3,980원에 한 케이스 하는 딸기가 싼 건지 비싼 건지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그래 왔던 것처럼, 남편은 아내인 나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집안에 유일한 여자인 나와 소소하고도 중요한 가사문제를 상의한다.


버겁기도 하다. 나 역시 한 달 전엔 그저 이 집 문에 들어섬과 동시에 짐들을 내동댕이치고 "엄마, 나왔어. 나 배고파 고추장찌개 해주면 안 돼?" 하던, 그냥 엄마 딸이었으니까. 한 달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엄마가 뒤돌아보며 "왔니?"하고 묻던 주방 그 자리에 서서 엄마의 손때 묻은 칼로 양파를 써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그러나 이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현실을 인정하면서 내면의 고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그 며칠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 것 같았다. 엄마한테 궁금한 것도 많고, 화가 많이 났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발가벗고 뛰어다니는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화가 나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무엇에 대한 분노고 억울함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이 사람 저 사람 미친년처럼 붙잡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지나니 좀 살만하더냐고 막 따지고 물었다.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앞이 부얬다.

한동안 좀 힘들 거야. 시간이 좀 지나면 살아진다.
뭐라 할 말이 없네. 힘들 거야. 많이 울어도 된다.

한 달 하고도 한주 지난 지금, 엄마의 죽음은 일상의 현실이 되며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일이 되어 있다. 엄마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무모한 희망은 완전히 버렸다.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뇌리에 각인이 된 순간부터는 부질없는 희망고문으로 꿈이나 현실에서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가령, 유품 정리만 하더라도, 준비 안된 상태에서 유품을 만지며 상처 받을 바엔 일단은 미뤄두고 나부터 추스른다던지 하는 것이다. 안방 침대 머리맡에 엄마가 쓰던 성경책이나, 빨간 지갑, 묵주 같은 것을 늘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어느 날은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을 버린다는 핑계로 엄마의 화장대를 왕창 정리하고 또 한 며칠 엄마의 물건들과 함께 살고를 반복하고 있다.


갑자기 멀쩡히 살아있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죽었다고 하면 충격과 공포의 정도가 크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만큼 강렬하다. 내가 당장 괴로워 죽어야 할 것 같은 아픔과 분노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가만히 멍청하게 있을 수도 없다. 빈소 차려라, 끝나면 상속 서류에 사망신고에 보험처리 각종 명의변경에 직장에 알려야 하지 그 와중에도 팩스로 이것저것 보내야 되고 별의별 증명서를 다 떼서 제출도 해야 한다. 하다못해 은행도 은행마다 서류가 다르고 사망 상속은 워낙 드문 일이다 보니 직원들도 잘 몰라서 한 시간 씩 책 찾아보며 처리를 하는 지경이다.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감정 타령은 내 사정이고 차가운 행정처리를 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 나가야 한다. 꼬박 2주 간 매일을 법무사 끼고 별의별 은행이며 관공서를 쫓아다녔다. 집에 보험사 직원들 실사 나올 때마다 창문을 붙잡고 똑같은 설명을 해댔다.


"아빠, 나는 이 짓을 아빠 죽으면 또 해야 되는데. 나 힘드니까 아빠 앞으로 한 20년은 살고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 아빤 좀 다 써놔. "


"야, 네가 지금 문제가 아니고. 나는 우리 엄마 죽으면 이 짓을 또 해야 하는데.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친할머니, 살아계신다)


아빠와 나는 완전히 지쳐 소파에 쭉 뻗어 누웠다. 지겹고 힘들다 다신 하고 싶지 않다, 읊조리듯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내 또래 혹은 조금 나보다 더 어른인 누구라도 자기 가족 중 누군가가 죽으면 그 후에 어떻게 버티는지, 또 얼마나 지나면 좀 괜찮아지는지, 이런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의 감정의 진폭과 내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견디라, 시간이 언젠가는 해결해 줄 문제다, 정도가 현답일 수밖에.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내게 그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걸려 추슬러 나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모르니까. 아파하는 내가 안되어 보여 그저 한번 꼭 안아주었을 뿐.


지병으로 오랜 시간 앓던 이를 보낸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조금이나 벌었던 덕에 망인이 된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여드릴 수 있다. 덕담을 하며 잘 가라고, 다정한 눈빛을 나누며 그렇게 떠나보낸다. 병으로 보내는 경우는 내 경우보다 조금은 낫다고들 한다.


어쨌든,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요즘 어떠니>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안 살아질 줄 알았는데 살아는 있노라고 딱 그 정도만큼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할 것 같다. 한주에 한 번 상담센터에서 실컷 울고 옵니다. 감정을 주관하는 영역에 병적 징후가 있어 트라우마 치료 약 처방을 받아 하루 세 번 먹는다는 그런 것은 알리지 않을 것 같다.


<가족들은 어떠니>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우리 가족은 엄마의 상실을 건강하게 애도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할 것 같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아빠는 엄마한테 고마웠다던가 안타깝다던가 하는 말을 좀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나 남동생이 엄마 보란 듯이 더 열심히 살겠다고 의지를 다진다는 것들은 알릴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엄마를 잃고도 무너지지 않는 건 떠난 엄마와 남은 우리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아낀 시간의 힘이 있기 때문이고, 엄마는 죽었지만 우리 안에 살아 남은 삶을 함께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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