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60대와 이혼한 60대의 친구찾기

#21. 아빠가 난생처음 새로 사귄 동네 친구

by 풍선꽃언니

아빠는 최근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60대 아저씨들끼리 밖에서 강아지 산책시키다 만났다는데 주민등록증을 서로 보여주곤 동갑이네, 하고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전직(퇴직) 경찰관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아저씨의 신상정보 전부지만 아빠가 집 근처 가까운 데서 한 주에도 한두 번 회동하는 것을 보면 그분과 마음이 잘 맞나 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빠는 동네 친구를 만드는 법이 없었다. 아빠는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항공정비를 평생 업으로 해왔다. 공군 부사관, 한진 산업대(대한항공 위탁교육)를 거치기까지 학창 시절부터 직장, 인생의 전 기간에 걸쳐 동일한 친구와 인맥 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먹고사는 데 있어 거의 같은 길을 40년가량 긴 세월 같이 걸어온 얽히고설킨 인연들 틈에서 새로운 사람을 사귈 기회나 필요가 딱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이해 관계없는 사람과 길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니 별일이다 싶었다.


뭐, 아직은 깊은 속 얘기를 나누기까지는 진도(?)가 좀 남은 것 같긴 하지만 두 사람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아내가 없다는 점
둘째,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점
셋째, 은퇴 후 생활수준이 비슷하다는 점
넷째, 사회적 맥락의 상식이 통한다는 점

나는 엄마를 갑자기 잃은 충격으로 아빠와 남편 남동생에 대한 안전에 과잉 집착하고 있다. 가족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고통. 정신과에서는 이를 불안장애 증상으로 진단하고 양약을 처방해 주었다. 2주 정도 복용하면 불안함이 서서히 가라앉을 거라 했다. 믿고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복용하고 있다.


그런처지에 아빠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를 만나 갑자기 저녁을 먹고 소주 한잔을 말하는 때에 처음엔 <그게 누군데 어디서 만났는데 왜 갑자기 만나는 건데> 경계했다. 불안하여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날 뒤로하고 아빠는 기어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 후로도 한주에 한두 번씩 아저씨는 아빠를 동네 구석구석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안내해 기분 좋은 두 어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조금씩 경계를 풀고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이혼했대"


사연인 즉, 아저씨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딸이 있고 딸이 태어나자마자 두 달 만에 아이 엄마랑 헤어지게 된 사연이 있었다. 후에 딸을 위해 한 번 더 결혼을 했지만 정작 딸아이와 새 아내와의 트러블로 또다시 이혼을 하고 삼십 년 간 혼자 살아오셨다고. 혼자 집에서 밥해 먹는 것도 익숙하고 평생을 경찰공무원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취미생활 간간히 하며 그렇게 고요한 삶을 사셨던 "60대, 이혼 베테랑 돌싱" 이를테면, 아빠의 돌싱 선배.


아빠는 갑자기 한 달 전엔 상상도 못 하던 일이 일어나 졸지에 사별을 한 "60대, 사별 신입 돌싱"


매일 마누라가 해주는 밥이 맛있어 퇴근하고 집으로 달려가기 바빴던 아빠는 회식할 때가 아니면 밖에서 사 먹는 게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맛이 없어서 돈이 아깝다던 사람이었다. 어디 나가서 뭘 사 먹어도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순대국밥집이 전부였던 사람이다. 엄마가 죽고 하루 종일 무료함과 상실감을 달래려 총 90화가 넘는 넷플릭스 삼국지를 무한 재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빠에게 그분과 같은 동네 친구가 생겨 외출하는 게 딸로서는 좀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어떻게 만났어?"


아빠는 작년 11월 말에 직장에서 완전히 은퇴를 하고 집에 있는 동안 오전에는 단지 내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하고 오후엔 우리 까르 산책을 다녔다. 근처에 공원이 있었으나 회사ㅡ집 하던 사람이 강아지들 어디 모여 노는지 알턱이 없고 킨텍스 뒤편 공터에서 혼자 유유자적했던 모양이다. 그때 지나가던 아저씨가 "호수공원 가면 강아지들 모여 노는 데가 있어요" 하고 귀띔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며칠 만에 한번 가면 아저씨가 어쩔 땐 있고, 또 며칠 만에 가면 없고 하다 보니 인간적인 케미컬이 서로를 끌어당겼다나. 안 보이면 궁금하고 만나면 막상 낯선 남자 둘이 특별히 할 말은 없고 하다가 아저씨가 먼저 언제 한번 한잔 합시다, 좋은데 알아요. 하고 운을 떼주어 아빠가 몇 번 튕기다 처음 만난 장소가 생뚱맞게 염소 고깃집이란다.


"아빠 그 아저씨랑 연애해?"


참 웃긴 돌싱 남자들의 만남 얘기. 사회생활할 만큼 했겠다 남들은 마누라랑 어디 유람이나 다니고 손주나 보고 천천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갈 때 혼자 늙어갈 자유를 얻은 사람들. 물론 우리 아빠의 경우는 본인이 전혀 원하지 않던 자유이긴 하나 불안정한 감정을 다스리기에 이미 단단한 돌싱 커리어를 가진 아저씨가 이끄는 한주의 몇 시간은 그래, 세상에 이 사람 저 사람 사는 방식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고, 이제 아내 없는 삶이 현실인 마당에 마음의 평정을 얻고 일어설 수 있는 도움닫이가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내 걱정 말고 딸이 차려주는 조악한 밥상보다 훨씬 나은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아저씨랑 먹으러 다녀요.

아빠, 나는 아빠가 그 아저씨 만나는 거 좋아.
아빠가 취미생활도 하고 밝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떠난 건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사람이고 언제까지나 그럴 거야
나는 아침마다 아직 엄마가 살아있다고 최면을 걸고
엄마 카톡에 내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남겨요.
엄만 아무리 울어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우리 이제 받아들여야 해요. 힘내야 돼.
남은 우리끼리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아빤, 사후세계 같은 건 없다, 죽으면 끝이다 하지만
난 엄마가 멀리서 우릴 지켜보고 있다고 믿어.
내가 아빠 걱정하면 아빤, 너나 잘해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말겠지만
어제 아저씨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더라.
"아빠가 딸 자랑을 무척이나 하던데요"
사랑해. 우리 아빠.
도다리 회 가성비 굿! 사위랑 딸도 같이가서 한잔할까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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