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면 깨어나는 대로 어차피 눈 떠도 일어났니, 다정하게 물어봐 줄 엄마가 없고, 집 안 가득하던 집밥의 온기도 없다.
늦잠 자고 싶어서 엄마 나 오늘 안 먹어, 하고 막 짜증 내던 지난날 들엔 이런 것들이 그리워질 줄 몰랐었다. 살아온 평생이 그랬듯 앞으로의 평생도 나는 아침마다 꾸역꾸역 뭔가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랑 더 잔다고 투정 부리는 나랑 입씨름하며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이상 내겐 그런 엄마가 없다. 밥을 먹든가 말든가. 내 자유지만 아빠와 남편의 아침을 준비해 주려면 일어나 뭔가 해야만 한다. 부은 눈으로 방 밖을 나서면 아빠가 속상하니까 눈 두 덩이를 빨리 꾹꾹 눌렀다. 아침의 주방에 엄마의 주방칼로 식사 준비를 하며 엄마가 사놓은 양배추는 이렇게 싱싱한데 우리 엄마는 없네,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엄마의 주방 살림을 만진지도 한 달이 지났다. 남편도 아빠도 집안에 여자는 나 하나니 요리 같은 건 뭐가 되었든 내가 더 잘 알거라 기대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얼마 전까지 나 역시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둘러앉아 맛있다고 재잘대며 이것저것 젓가락 바쁘던 엄마 딸이었다.
망각하길 바라며 매일 밤 눕지만. 놀랍게도 나의 무의식은 잠을 자는 중 꿈같은걸 꾸는 순간에도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처럼 투닥투닥 대화를 한다. 오늘 새벽엔 남편과 상하이 조계지를 여행하고 있었다. 거기서 가판대에 진열된 물건 중에 "편백나무 디퓨저"라고 불리는 물건이 있었다. 꿈인데도 물건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억이 날 수가 있구나. 어쨋든 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엄마한테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여느 때처럼 사진을 찍었다. 속으로 이거 괜찮은데, 엄마 꺼랑 내 거랑 두 개 사서 주말에 하나 가져다주면 되겠다, 얼마예요? 하다가 맞다 엄마가 죽었지. 하며 깨어났다.
엄마가 이제는 없다는 현실을 실감하는 건 이미 몇 주간 겪어 다 알고 새로울 것도 없는데 그때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처럼 놀랍고 무섭고 끔찍해서 몸안의 심장이니 폐니 하는 기관이 다 타는 것 같은 것 같다. 실은 다 타서 없어진대도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별 억울할 것 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예순다섯의 아빠는 딸이 병원 가는데 비 맞는다고 정신의학과와 산부인과를 차로 데려다주었다.
남은 이들은 이렇게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상의 배려를 하며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내가 만든 요리를 먹을 때마다 아빠 얼굴에 쓸쓸함이 스친다. 포도주 곁들여 가족끼리 주말마다 실컷 맛있게 먹던 엄마 음식을 욕한다. 너네 엄마 음식이 맛있긴 했는데 간이 너무 세서 내가 혈압이 높아졌어. 그런데, 정작 그 많은 사재 반찬들과 내가 한 음식은 어쩌다 한번씩 집어먹으면서도냉동실에서 해동한 엄마 잡채에 유독 손이 가는 아빠가 보인다. "이거 니네 엄마가 한거냐?"
아빠도 잊으려고. 이제 다 끝났다, 잊어보려고 괜한 트집 잡는 거 다 안다.
엄마를 잃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짠하다.
그냥 단순히 엄마가 지은 밥이라서 집밥이 아니었다. 식탁머리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 얘기 저 얘기로 양념치고 지지고 볶아야 비로소 진짜 집밥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