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뿐이었던 엄마의 일상
#19.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커피 취향
엄마랑 몇 년 전, 아니 대학생 때였으니 벌써 한 십여 년 전이 되겠구나. 카페에 처음 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메뉴를 멍하기 올려다보며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어쩔 줄 모르던 엄마.
가정주부에 만나는 친구도 특별히 없다 보니 이런 카페에 와볼일이 없는 것이고 호기롭게 들어오긴 하였으나 메뉴판에 뭐가 잔뜩 적혀있으니 하나씩 묻기는 살짝 민망하고. 한참 미간을 찌푸리며 올려다보다가 점원이 무엇을 주문하겠냐는 질문을 "당하곤" 나를 보며 하는 말.
"그냥 엄만 커피.."
"엄마 여기 다 커핀데 그냥 커피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시 취업준비생이었거나 이제 갓 신입사원이었거나 했던 나는 잔뜩 예민 병에 걸려있을 때였다. 퉁명스럽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이상하게, 아주 이상하게도 엄마가 커피 주문을 세련되게 하지 못하는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젊은 혈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조차 핑계라 여기며 악에 받쳐 "대기업" 타이틀 붙은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댔던 결과였다. 번듯한 회사에 합격했다. 축하도 많이 받았다. 아빠 정년퇴직이 한 일 년 반쯤 남았을 때라 엄마가 어떻게든 그전에 맏이인 나라도 좀 어떻게 자식농사를 끝내 놓고 싶어 했고 나는 그 바람을 꼭 이루어 주고 싶었다.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길 헤매느라 칼바람에 한강변을 한 시간씩 걸어 면접장에 가서 있는 힘껏 면접을 보고도 수도 없이 불합격 통보받던 좌절의 날들을 견뎠다.
"귀하의 자질은 우수하나.."
거짓말하지 마. 우수하지 않으니까 떨어뜨린 거잖아.
계속 불합격하다 보니 나중엔 회사의 불합격 멘트들이 약간 웃기게 느껴졌다. 뭔가 쓰긴 써야겠고 할 말은 없고, 행간에 느껴지는 인사담당자들의 난감함이 읽혔달까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복사실에서 기말고사 프린트물을 출력하고 있을 때 국내 모 금융그룹 계열 증권회사에서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면접 때 밸류에이션이 뭐냐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으나 가르쳐주면 잘하겠다며 헛소리를 해댔던 기억에 어찌 붙었는지 의아했지만, 합격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의 기쁨 가득한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했다.
"와, 어머 딸 정말? 잘했어 어머 세상에 엄마 너무 기뻐"
내가 무언가 잘 해냈을 때 엄마와 아빠는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고생했네 다독이고 자축하곤 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엄마. 내가 살아오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뭔가 목표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내 힘의 끝의 끝까지 짜내 달릴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때 합격했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한 번의 이직을 거쳤다. 몇 년 전 말단이나마 공무원이 되어 정착하고 결혼했다. 아빠랑 집에 있는 컴퓨터로 경찰공무원 합격자 명단의 내 수험번호를 확인했을 때 외출 중인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무슨 누가 보면 로또 당첨이라든가, 뭐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고 오해할 법한 비명을 지르며 격하게 기뻐했다. "엄만, 너 될 줄 알았어."
엄만, 내가 무엇을 해서 먹고살든 내 밥벌이는 꼭 하길 바랐다. 당신은 가정주부 말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나는 꼭 직장 생활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하라며 응원하고 지지해주었다. 본인이 갖지 못한 기회들을 내가 쟁취하는데 큰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나도 그것을 알기에 실망시키지 않고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핑계라면 핑계지만 다른 딸들처럼 엄마랑 쇼핑을 다니거나 커피숍 다닐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과외를 여러 팀 하면서 돈을 벌기까지 했는데 어쩌다 짬이 나면 다 팽개치고 짧고 굵게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 한번 다녀오고 다시 일상을 굳세게 살아갔다. 그런 내 강한 정신력과 열심히 사는 의지가 효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짜 진짜 뭘 해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참 웃기게도 엄마가 커피숍 한번 제대로 다닌 적이 없었구나, 알게 된 그때부터 무엇을 먹든,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내가 누리는 모든 행복에 엄마가 의식이 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이랑 우르르 몰려와 어버버 더더더 했으면 이 아줌마, 완전 구닥다리네 했을 테지. 엄만 약간 민망해할 것이고 나는 우리 엄마가 흔하디 흔한 커피숍 방문조차 특별하게 여길 만큼 집에 갇혀 살았구나,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누가 무심했다고 해야 하는 거야, 공부한다 연애한다고 일한다 바쁘다고 유세 떨던 나? 아니면, 엄마랑 이런데 다니면서 데이트 좀 하시지 맨날 송정역 어디서 하루 걸러 하루 회식한답시고 부어라 마셔라 한 아빠? 그것도 아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탄현 2 지구 밤거리를 배회하며 밤새 술집과 고깃집 피시방을 전전하던 엄마의 아드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려보려 해도 나는 항상 집에서 우릴 기다리기만 했던 엄마를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내 몫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딸이니까. 엄마랑 뭔가 모를 그런 뭔가가 있는 딸이라서 였던 것 같다. 그래서 커피숍에서의 그날 이후 내 즐거움을 바꿔 엄마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시간도 돈도 그 무엇도 아낌없이 내어놨었다. 그랬기에 후회는 없다고 나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엄마가 죽고 나니 엄말 위했던 나의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만 같아 속이 많이 상하다.
늘 나에게 물어주던 엄마.
"어디니. 밥은 먹었니. 몇 시에 오니"
비단 엄마가 기다리는 대상이 나뿐이었을까.
늘 집에서 우리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기껏 외출해 나간 곳이라곤 마트였을 엄마. 누군가가 먹고 싶다고 한 간식, 부식거리를 잔뜩 사다가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프림 없는 알 커피에 설탕 두 스푼쯤 넣은 커피 한잔을 반 모금쯤 마셨을 즘 문자를 보냈을 우리 엄마.
대충 차려도 맛있던 엄마의 식탁에서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시답잖은 일상조차 세상 흥미롭게 물어봐주고 들어주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제는 내 곁에 없다.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