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아요
#18. 심리상담센터 선생님의 조언1
나는 내 자연 생애주기가 짧았으면 좋겠어
너무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
하루가 저물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누웠다. 이불을 덮고 불을 껐다. 엄마가 신혼 때 해온 이불의 목화솜을 틀어 만들었다는 제법 묵직한 이불. 그 따뜻함에 푹 파묻혔다. 목 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었다.
엄마가 죽고 엄마와 아빠가 살던 집으로 우린 아예 들어와 버렸다. 인천의 집은 살림살이 살던 그대로 방치한 채 남편과 난 친정집 방 한 칸에 숙식 부치듯 들어와 살고 있다. 삐죽거릴 만도 한데 남편은 내가 괜찮아지는 게 최선이라며 아빠와 나, 그리고 본인까지 세 식구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다독여준다. 고맙다. 덕분에 이렇게 무의욕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에도 매일 잠을 자고 또 깨어나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볼 여유 아닌 여유도 찾고 있다.
"살아 뭐해, 엄마 봐. 죽으면 끝인걸 아무려면 어때"
"그렇지만 아빠랑 남편은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 삼주 전쯤 마지막으로 내 냉장고에 가득한 엄마의 반찬을 가지러 인천 집에 다녀왔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앞으로 일산에서 출근할 남편은 대충 본인이 입고 다닐 옷가지며 속옷 등을 챙겼다. 아빠는 우리 집에 엄마와 오던 때 그대로 리클라이너 소파를 제치고 앉아 스포츠 뉴스를 틀었다. 집의 모든 것이 엄마가 살아있을 때 우리 집 그대로와 같았다. 그런데, 난 그 집에서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던 순간이 오버랩되며 정신적인 쇼크가 심해 빨리 그 집을 탈출하고 싶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신혼집이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불안해서 계속 짜증을 냈다. 남편에게 짐 좀 빨리 챙기라고 닦달을 했다. 그냥 모든 것이 다 싫었다.
엄마가 죽고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방황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특별히 무엇을 하거나 먹고 싶거나 누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 가장 문제는 내 안에 삶의 목적이나 방향 같은 열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정받는 기분, 엄마의 신이 난 목소리에 담긴 뿌듯함은 내 성취감의 완성과도 같았다. 가장 높은 수준의 카타르시스.
이젠 엄마가 없다. 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든, 그냥 잠만 퍼자며 허송세월 하든 누가 뭐랄 것인가. 간섭이 없는 지금이 무척이나 낯설고 허무해 그저 숨만 쉬고 눈만 뜨고 있는 죽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냥, 굳이 오래 살아야 하나, 늙을 때까지 이렇게 건조하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견뎌가는 게 삶이라면 그 언젠가의 엄마의 말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엄마는 몇 살까지 살 거야?"
"응, 엄만 너무 오래 살고 싶진 않아. 예쁠 때 죽고 싶어."
까만 밤, 블라인드 커튼 사이로 새벽빛이 드는 밤에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
남편은 팔 베게 하고 있던 나를 확 밀쳐 뿌리쳤다. 그냥 좀 들어줄 수도 있는데. 홱 뿌리치는 남편이 야속했다. 왜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거야?
"나는 살면서 그리 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아. 허무해. 나도 엄마처럼 너무 늙기 전에 예쁠 때 죽고 싶어"
남편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럼, 널 위해 살고 있는 난 어쩌라는 거냐, 난 도대체 뭐냐 등등 본인의 분노를 두서없이 내뱉었다. 나는 다시 남편의 팔베개를 하고 싶어서 팔을 펼치고 억지로 그위에 누워 품에 내 얼굴을 묻었다.
"이럴 땐 그냥 날 안아주면 되는 거야. 화내지 말고."
남편은 나를 꼭 안아줬다. 나는 남편이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더 할 말이 없어서 모른 채 그대로 안겨 잠이 들었다. 까만 밤, 우리의 갈등. 나의 혼란. 엄마의 죽음..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없이 살아갈 나의 삶.
내일이 되어도, 눈을 떴을 때 달라지지 않을 현실을 원망하며. 이 밤이 이렇게 저물고, 내일도 그렇겠지.
"이번 한주는 어땠어요?"
"남편이 저 때문에 기분이 좀 나쁜 거 같아요"
"왜요, 남편하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가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어요, 자살 이런 거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고요. 내 자연수명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일주일 만에 만난 상담 선생님. 내 얘기를 듣더니 내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고 말하기를 멈췄다. 움찔, 했다. 내 안에 뭔가 더 나 올말이 있는지 기다리고 있는 걸까. 혹시 내가 자살하고 싶은 상태인지 아닌지 살피는 중인가. 아니요, 전 자살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말 그대로 너무 오래 살고 싶지가 않다고요. 지긋지긋해요.
"남편은 ○○씨에게 어떤 존재예요?"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예요. 제 인생에 아빠랑. 남편이랑 제일 소중하죠"
"남편은 왜 ○○씨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남편은 저하고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대요. 예순 쯤 되면 퇴직금을 몽땅 들고 가서 유럽에서 일 년 살이도 해야 하고, 아직 아기도 안 낳아봐서.. 여행도 더 많이 가야 하고 저랑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같이 있으면 자기가 행복하대요"
"그러면 ○○씨가 나 빨리 죽고 싶어, 오래 살고 싶지 않아 하는 말이 남편한테는 어떻게 전달이 될 것 같아요?"
심오한 질문. 나는 내가 온통 가시에 찔려 아파 죽겠는데 내가 하는 말들의 숨은 의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까지 생각해 보라니요. 상담을 받는 중에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말해줄게요. ○○씨 남편분은 아내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인내심도 많고요. ○○씨가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 줄 것 같아요. 통화하면서 얼마나 사려 깊은 사람인지 내가 느꼈거든요.
그런데요, 남편분은 ○○씨랑 하고 싶은 게 많대요. 같이 있으면 행복하대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맞춰주며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씨 마음이 편하기만 하다면 다 괜찮은 거예요"
"알아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요. ○○씨는 몰라요. 남편이 없어도 되는 거 아니죠? 그렇지만 지금 너무 힘들어서 인생이 길기까지 하면 이 고통이 안 끝날 것 같아 괴로운 거죠? 그럼,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게 맞아요. '여보, 나 지금 엄마가 돌아가신 게 충격이 너무 크고 힘들어서 인생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힘들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곁에 있어줘서 힘이 되고 고마워요'"
"남편도 제가 그렇다는 걸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요"
"네 맞아요. 알 거예요. ○○씨 남편분은 사려 깊은 사람이니까 아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 거예요. 그렇지만 남편도 사람이에요. ○○씨는 앞뒤 잘라먹고 빨리 죽고 싶다고 하죠? 그건, 남편 한 테는요. 난 당신이 필요 없어.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소중한 건 아냐. 이런 메시지로 전달이 되도록 말 하고 있어요. 남편이 상처 받는 거 괴롭지 않으세요?"
상담을 마치고 일부러 큰 길가가 아닌 미관광장을 가로질러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날이 부쩍 더워졌다. 꽃은 만개하고 평일 낮 시간인데도 공원은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노부부가 공원 가운데 조형물로 세워놓은 바위에 걸터앉아 물을 나누어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연로한 할아버지 한분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어제의 아빠와 내일의 아빠 모습인가, 하며 잠깐 서글프다가 하긴 아빤 죽는 날까지 내가 곁에 있을 거니까 외롭지 않아, 하며 좀 전에 본 노인들의 잔상을 떨쳤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공부 잘하고 있어? 학교 도착했어?"
(남편은 MBA 중간고사가 있어 반차를 냈다)
"응, 아기야. 아기는 상담 잘 받고 왔어? 선생님이 뭐라셨어?"
대낮부터 조금은 밝은 와이프의 목소리가 기뻤던 듯 남편의 목소리도 밝고 한층 다정했다.
"○○, 부인이 미안해"
"뭐가 부인아?"
"있지, 내가 상담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남편이 내가 자꾸 죽고 싶다고 하면 상처를 받는다는 거야. 내가 널 필요 없다고 하는 거랑 똑같다고. 남편은 나랑 같이 하고 싶은 게 많고 나랑 있으면 행복한데 부인이 계속 자기를 필요 없다고 하면 얼마나 속상하겠냐고. 미안해. 그런데 정말 그렇게 들렸어?"
"어휴, 야 너 그 상담센터 복지 횟수 끝나도 계속 다녀라. 내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표현이 안 되는 말을 선생님이 시원하게 말씀해주시네. 그래, 그렇게 들린다니까. 난 부인이랑 오래오래 백 살까지 같이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많단 말이야"
애교 섞인 남편의 징징 거리는 목소리에 처음으로 나의 삶의 이유에 남편이 있고, 내가 이 사람과 살아서 함께 책임져야 할 미래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엄마가 정해준 과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미래. 그렇지만 엄마가 아들보다 이쁜 사위라며 썩 마음에 들어하던 나의 남편.
엄마는 죽었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다. 엄마가 나를 만들어 이만큼 키워 놓는 동안 나는 엄마의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다. 내가 보란 듯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겠지. 엄마는 내가 행복하길 바랄 테니까.
누나. 엄마는 하늘에서도 누나 응원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보란 듯이 더 잘 살아.
나중에 누나도 할머니 돼서 최대한 곱게 늙고.
엄마처럼. <4.27. 00:03 남동생과의 카톡 발췌>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가 살아있는 한 엄마 몫까지 아빠 잘 챙기며 살게요
동생은 나보다 의연하니 걱정이 없긴 한데
아빠랑 가깝게 살고 가족이랑 시간 많이 보내고 싶다고
소령 포기하고 순경시험 보겠다고 하네,
나랑 아빠도 걔 인생에 뭐가 더 좋을지 잘 고민해볼게요
욕심 많은 남편 내조 잘하고 기 살려주며
서로 상처 안 주고 사랑하며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