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연습
#17. 남동생의 정신승리
한참을 춥기만 하더니 기온이 많이 높아졌다. 뉴스에서 초여름 날씨를 운운하던데. 마스크를 하고 나가면 호흡이 갑갑해지는 것을 보니 넋 놓고 보낸 한 달 동안에도 자연의 시계는 말없이 흘러왔고 멈춘 건 내 시간뿐이었나 보다.
엄마의 죽음 이후로 나는 집 밖에 나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는다던가 하는 일체의 행위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건강하지 못한 애도 행위 임을 알고 있어도 좀처럼 다른데 관심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일부러라도 재미난 프로나 영화를 틀어보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노력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그만두었다. 아빠나 남편의 권유로 산책이라도 나가면 조금만 걸어도 푹 지쳐 땅에 심기는 기분이라 바깥바람을 쏘였다는 정도에 만족하며 얼른 집으로 돌아간다. 언젠가는 안정될 것이라 기대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을 만큼 상심의 깊이가 깊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나 혼자 이겨내야 할 문제다. 가족들 모두 각자의 전투에 피를 철철 흘리며 간신히 하루를 살아내는 마당에 누가 누구한테 엉겨 붙어 위로를 구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빨리 잠이라도 자야 하루가 끝이 나니 억지로 잠을 자려는데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만약 엄마의 죽음을 기억하는 뇌의 회로 같은 게 있다면 그 부분만 어떻게 펜치로 살짝 끊어 단 하루라도 엄마가 죽기 전 완벽한 행복을 누리던 나로 살아보고 싶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은 일요일. 그냥 엄마한테 다녀오고 싶어서 남편하고 오늘 즈음 가보자고 했는데 남동생네도 시간이 잘 맞아 동화 경모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빠는 어제 휴대폰의 엄마 사진을 정리하며 심각하고도 우울한 표정으로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또 우리가 죽은 엄마에게 가자고 하니 딱히 내키지 않아 했다. 그래도 함께 또 가족이 움직이는 든든함라는 게 있으니 특별히 더 무슨 말을 하지 않고 동행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주변에선 누구나 다 죽는데 네 처는 조금 빨리 갔을 뿐이라고 위로한다지만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아 더 기분이 가라앉을 뿐이라 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엄말 외면하는 게 아빠 나름의 노력이라며 괜찮은지 눈치를 살피는 날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또 걱정하는 아빠를 지켜보는 나는 나대로 속이 상할 뿐이고, 아빠는 아빠대로 내색 안 하기 전쟁에서 한참 치열한 전투 중인 것이고, 뭐 그렇다. 일단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남동생의 등장이 아빠에게 한 번의 웃음을 준다는 것이고 남자들끼리만의 그 특별한 정서 공감으로 인해 아빠가 좀 더 편안해 보인다는 점 덕분에 오늘 남동생 부부네와 시간이 맞는 게 크게 의지가 되었다.
남동생이 납골당 내 엄마 호실 문을 꾸미겠다며 작은 "추모 벽화병"을 사 가지고 왔다. 일전에 사진 넣는 액자 프레임도 올케랑 둘이 오리고 붙이고 하며 만들더니 휑한 납골당 엄마 자리가 마음에 걸렸던 건지 이번엔 벽화병. 가족 중에 가장 의연하게 이 힘든 시기를 잘 보내고 있어(보여)서 내심 남동생이 신혼 깨소금 볶다 보니 고통도 좀 상쇄되나 보다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속으로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나 보나 싶었다.
"엄마랑 난 사랑만을 주고받는 사이였어. 항상 좋은 말만 하고 화 낼일도 안 만들고. 누나도 그만 좀 질질짜. 엄마는 하늘에서도 누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또 누나가 행복하길 원하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가 항상 누나 행복만 기원했다는 걸 누나가 좀 알았으면 좋겠고. 제발 정신 차려."
오늘도 볕이 잘 드는 엄마 자리. 아빠랑 둘이 벽화병 붙이면서 삐뚤어졌네 아니네 실랑이를 하며 실컷 붙이더니 아빠는 꽃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남동생에게 툭툭 거리며 물었다.
"야 이거 꽃 색깔이 왜 이렇게 바랜 거처럼 희끄무레하냐"
"몰라, 꽃은 랜덤이래. 나도 보고 대단히 실망했어"
"야 이거 색깔이 영 너네 엄마랑 안 어울리는데"
"아빠 할아버지 (추모) 꽃 그거 좀 몰래 몇 개 잘라서 넣을까? 할아버지는 몰라 흐흐"
"가위 가져와 어딨어 확 잘라서 여기다가 바꿔 꽂아놓게"
"이거 어디서 샀냐 내가 한번 보자."
"네이버에, "납골당 꾸미기"라고 있어. 거기 많아"
정말 생소한 검색어. <납골당 꾸미기>
보름 만에 만난 엄마에게 가족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눈물이 가득 차 올라 왜 그랬냐고 납골당 엄마 자리 문만 엄마 어깨 때리듯 때리고만 있는 나를 빼곤 그냥 한 마디씩.
"으이그, 밖에 뭐가 또 궁금해서 내다보다 그랬냐"
아빠의 안타까움이 온통 묻어나는 한마디.
슬픔이 가득한 납골당에서의 나와 점점 가라앉는 분위기에 남동생은 슬픔에 지지 않으려는 듯,
"엄마 아들이 꽃사와쪄, 다음엔 더 예쁜 거 사 올게 좋지?"
흐흐흐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곤 말했다.
우리도 저기 어디 미국이나 어디처럼 죽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니까. 어차피 우리 다 언젠가 죽어.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인데 뭐. 엄마가 설에 나한테 한말이 손주 보고 싶다는 거였는데, 그게 어찌 보면 유언이 되었잖아? 난 올해 열심히 노력해서 새끼를 낳을 거야 흐흐
지 마누라를 껴안으며, 그리 말하니 올케는 "응?" 하는 표정으로 민망함에 그저 웃었다.
나도, 아빠도 남편도 기가 막혀 웃었다.
하긴 그 말도 맞다.
아빠와 남동생 부부가 먼저 내려가고 우리 부부는 잠시 남아 남편은 엄마에게 못다 한 말을 했다.
어머님 아들보다 이쁜 사위 왔어요, 며칠 전에 저희 24층으로 이사 오는 날이었어요. 그냥 세주려고요. 아쉬워요. 조금만 기다리시지. 우리 이사 오면 아랫집 윗집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그리고 저희 다음 달에 제니스로 이사 가요. 아예 아버님이랑 합가 해요. 어머님 큰 그림은 데릴사위였나 봐요
슬픔이 가득한 가운데도 엄마의 큰 그림이 진짜 데릴사위 만드는 거였나, 난 27층 살고 너넨 24층 살자고 할 때부터 수상했는데. 웃음이 났다. 피식. 남편은 슬그머니 나를 끌어안고 어머니 또 올게요, 하곤 우리도 가족들이 있는 일층으로 합류했다.
내려가 보니 올케까지 셋이서 <납골당 꾸미기> 검색 삼매경. 이만하면 됐어 저기다 뭘 더 붙이고 꾸민다 그래. 납골당 꾸미기는 이제 그만하자.
친할아버지 묘소에 들러 봄꽃으로 바꾸어드리고 동생이 품 안에서 쏙 꺼낸 클라우드 오백 밀리 한 캔을 시원하게 부어드렸다. 내 동생은 어제도 여기 엄마 꽃 붙여주고 싶어서 왔는데 오픈 시간 끝나고 도착했다고 했다. 엄마는 못 만났지만 온 김에 그 밤에 비석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고 잡초 다 뽑고 돌도 다 골랐다고 "아빠 나 잘했어? 내가 했다고!" 하고 말했다. 아빠는 저 얼빵 해 보이는 게 가끔 보면 속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고놈 참, 하며 허허 웃었다. 기특한 자식. 죽겠다고 누워만 있는 누나보다 낫구나,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나처럼 나약하지 않은 동생이 있음이 가슴 깊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우리 가족.
사랑하는 우리 아빠, 남편, 내 동생, 올케
남은 인생 서로 의지하며 건강하게 함께해요
그러다 때가 돼서 누군가 먼저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애틋하게 살았는지
엄말 만나 잘 얘기해 주기로 해요.
엄마가 사랑하던 가족들을 내 시선에서 바라봤어. 엄만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