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은 수치가 아니다
#16.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용기
엄마의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추락사라니. 지난 한 달 내내 하루아침에 엄마가 죽고 장례를 치르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혼란스러움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 기가 막힘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쌍욕이 나오도록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다행히 아빠와 남동생, 남편은 "사건에 대한 자신의 고통을 일상에서 분리" 해 가며 잘 버텨주고 있고, 한 달 전인 사고 당시보다 한 달 후인 지금 처음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상태로 일상생활에 복귀했다. ㅡ 복귀해야 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엄마의 온기가 따뜻했던 만큼 문득문득 떠오르는 가슴의 시리디 시린 서늘함과 슬픔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매일 자연의 섭리로 새로운 해가 뜨고, 일상은 반복되기에 흔한 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 혹은 "산 사람은 살아진다" 하나보다.
나는 기존에 계획했던 대로 휴직계를 냈고, 4.22.자로 휴직 발령이 났다. 난임 휴직으로 아이를 가질 준비 하면서 이참에 전직시험 준비도 해야지 야심 차게 계획을 세웠는데 책은 한 줄도 안 읽히고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정신과 처방약과 임신 준비는 병행이 불가하다며 조금 시간을 갖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다.
식구들이 집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요.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요. 가족들한테 밖에서 전화가 오면 무서워요. 안 좋은 소식일까 봐 긴장이 돼요. 최근엔 남편과 아빠 휴대폰에 위치추적 어플을 깔았어요. 연락 안닿을 때 어디있는지도 모르면 무슨일 생긴것같아서 무서워서요. 자다가 깨면 끔찍한 공허감이 느껴져요. 방 밖에서 아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깜짝 놀라요. 하루 종일 걱정을 하다 보니 깊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무기력하고 밥이 잘 안 먹혀요. 저녁이 되면 술을 자꾸 찾게돼요. 맥주 같은 거 말고 좀 도수가 되는 걸 마셔야 기분이 좀 호전돼요. 처방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자제하려 애쓰지만 없으면 자꾸 찾게 되네요.
엄마가 조현병(피해망상)으로 고통받다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증상들이 단지 "기분 문제"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냥, 오늘 기분이 조금 안 좋으니까, 생리할 때 예민해서 혹은 계절이 바뀌었을 때 봄이면 봄이라고 가을이면 가을이라고 변덕 부리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정신과라든지 하는 장소가 내 인생에 진지하게 필요한 곳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고, 그런 곳은 아마도 진짜 사회의 미친놈이 가야 하는 음습한 곳 즈음으로 생각하던 인식이 있었기에 더더군다나 내 안 좋은 기분과 정신건강의학과를 연결 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나는 엄마의 사고 직후 상담센터 선생님 권유로 매주 금요일마다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아빠가 나를 차로 태워다 주고 태워오고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빠도 진료 한번 받아보지, 권유해 보곤 한다. 단호하게 안 간다, 선을 긋지만.
"난 안가. 내가 왜가. 난 너처럼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정신과를 간다는 자체가 수치야."
난 아빠가 가장으로서 굳세야 한다는 의식이 무의식 속의 연약함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엄마처럼 뭔가 잘못되어버려 아빠마저 잃을까 두려워 염려하고 있는데 아빠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자신을 나약한 존재(수치심이 느껴지는 자신)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점이 하나 있다.
우리 엄마, 죽은 우리 엄마가 가졌던 정신과에 대한 인식.
엄마는 아빠와 마찬가지로 정신과에 간다는 자체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어렵게 몇 번 가다가 강제입원을 하고부터는 정신과는 엄마의 인식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장소로 둔갑했다. 주는 약을 강제로 먹어야 하는데 그 약을 먹으면 곧장 잠이 오고 자신의 기억 일부를 상실하게 한다며 분개했다. 입원 중에도 아빠를 비롯해서 사위와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콜렉트콜 하여 본인의 억울한 입원을 호소했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쫒기듣 말하기를 당신이 그곳에서 박해받고 있다. 강제로 약을 먹이려고 하기에 저항하다가 남성들에게 무자비하게 제압당하여 멍이 났으며 전화를 할 때마다 감시당하고 있다, 본인의 시집을 읽어봐라, 그 안에 답이 있다. 아빠가 수작을 부려 니들이 동의하여 여기 오게 되었으니 내보내 주지 않으면 아빠와 이혼을 하겠다 등등
엄마가 억울해하고 힘들어하니 간호사인 올케가 보다 못해 병원에 전화를 했다. "혹시 우리 어머님이 통화하실 때 병원 의료인이 감시하거나 대동하시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묻고 여러모로 엄마의 말과 병원 측에서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 다름을 확인하기도 했고, 나 역시도 병원 담당의사, 간호사와 거의 매일 통화하여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퇴원을 반대하고 나섰지만 정작 엄마 스스로가 모든 의료행위를 거부하고 있어 입원 자체의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빠는 어렵게 퇴원 결정을 내렸다.
(강제입원은 가능하지만 강제 치료는 불가하다)
당시 엄마는 병원에서 일기를 썼는데, 강제 수용소에 갇힌 마냥 억울함을 호소하고, 문인협회 양 OO와 김 OO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작성한 듯한 간단한 메모도 있었고 장문의 에세이를 썼다거나 시를 쓰기도 했다.
오늘 남편 방문. 초콜릿과 탄산수 줬음.
병원 식구들과 나누어먹음. 의사 만남
딸 통화.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
모든 의료행위 일체 거부
엄마는 미치지 않은 본인이, 미친 사람들과 함께 입원 해 있다는 사실을 불쾌해했다. 아프지 않은데 약을 먹여 재우는 게 무슨 치료냐며 특히, 정신과 의사의 면담이라는 것이 대체로 한 삼십 분 대화 유도 후 증상 진단, 약 처방 후 진료 종료에 기반하고 있어 말도 안 통하는 의사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미쳤다고 하는 바람에 가족들이 강제입원을 유지한다고 믿었다. 때문에 엄마 입장에서 정신과 의료진이란 사기꾼, 굉장한 불신의 대상이었다. 의사들이 괜히 의사겠냐고 아무리 회유하고 설득해도 입원시키면 죽어버리겠다는 등 강력한 거부와 협박에 가족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 오늘의 비극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입원까지 시키게 된 가족들의 본의는 조현병의 치료일진대, 병원에서 조현병으로 진단하며 미쳤음을 확인해놓고도 미친이 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해 치료 거부를 한다고 해서 강제할 방법이 없어 퇴원을 시켜야 한다니. 결과적으로 엄만 가족들을 상대로 약 3주간 병원 탈출을 위한 협박, 회유 전쟁을 치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선, 작년 8월 경부터 올 2월까지 가끔, 의심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긴 하였으나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가족들과 평범한 생활을 영위했다. 죽기 전 3주간 갑자기 악화된 피해망상 증상으로 세상 모든 빛과 소리를 의심하며 집 안팎을 점검하며 돌아다녔고 감시당하고 있다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한 채 어느 날, 카레를 만들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곤 창밖의 의심스러운 물체를 점검하다(추정) 실족사했다.
가족들은 무얼 했느냐 묻는다면 우리 모두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과론적으로는 그렇다. 묘하게 증상이 악화되었다 호전되었다 하는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며 가족 모두는 엄말 붙잡고 정신 차리라 화도 내고 구슬려도 보며 병원에 가자고 설득했다. 병원에 가자, 정신과가 싫으면 내과라도 가서 기력 회복을 해야 한다 수도 없이 말을 했다.
그때, 우리가 주변에서 한 다리 건너서라도 정신분열증 환자를 접해보거나 했다면 좋았을 텐데. 행복하게 살던 우리 가족의 문제라기엔 너무 음지의 소재인지라 우리 모두 너무나 무지했고 엄마를 환자로서 좀 더 진지하게 대했어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
피해망상 증상을 제외하곤 주말에 방문한 나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아빠의 혈압을 걱정하거나 막내 이모의 간경화 검사 결과를 챙기거나 피부과 예약을 하는 등 다른 일상적인 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사리분별이 명확하기에 우린 엄마가 미친 건지 안 미친 건지 혼란스러웠고 정 힘들면 얘기 하겠다는 엄마 말과 의지를 믿고 기다리던 중 이 사달이 났다. 지금에서야 다 끝난 마당에 입원으로 인한 죄책감이 더 컸을지, 입원을 시키지 않아 느낄 후회가 더 큰 건지 바보 같은 비교를 하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인명은 재천인걸.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어떻게 말하든 병원에 입원을 강제하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이 괴롭고 미안하다. 속상하고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엄마가 미운 것은 본인도 본인을 잘 모르면 가족들을 한번 믿어봐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사람을 죽였대도 엄마 편이었을 가족들이 입원과 치료를 권할 때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렸을까. 상처 받고 괴로워할 우리가 눈에 밟히진 않았을까. 좋은 엄마인 줄 알았는데 정말 나쁜 엄마 같기도 하고. 엄마도 몰라서 그랬겠지.
(알고 그런 거라면 정말 나빴던 거야 엄마)
나는 정신과에서 우울과 불안증을 동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연령 고저를 막론하고 대기하고 있는 정신과. 막상 가보니 무슨 과인지 굳이 따지지 않는다면 이비인후과나 내과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평범한 진료 과의 하나 일 뿐인데 "정신과 = 미쳤어" 인식의 수치심이 병을 키우고 또 다른 비극을 낳을 거라면 난 나부터 열심히 다니고, 타인에게도 자신의 정신건강에 좀 더 관심을 갖길. 필요하다면 진료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적극 독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