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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섹스

2부







남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여자, 즉, 남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여자의 의미는 결국 섹스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원하지 않은 섹스


심리학을 그냥 내버리기는 싫다는 생각에 딱히 정한 것도 없이 막연하게 그동안 상담했던 내용을 위주로 복잡한 머릿속을 한참 정리하던 어느 날.


문득, 훑어보니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린다는 여자들의 하소연이 가장 많이 눈에 들어왔다.


내키지 않는데도 남자친구가 자꾸 조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모텔에 가게 된다는 둥, 뭐가 좋은지도 모른 채 남자친구가 조르는 대로 하게 된다는 둥, 혹은, 술에 취하면 자꾸만 낯선 남자와 의미 없는 섹스를 하게 된다는 둥.


‘여자들 중에는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리는 여자가 많이 있나보구나’


하지만 사실, 처음 여자들에게 직접 그런 고민을 들었을 때 나는 시큰둥했었다.


‘남자한테 질질 끌려 다니니 저렇게 바보처럼 살지’


그러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때는 충분히 못 느꼈던 그녀들의 고통이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시작했는데, 그러자 그녀들에게 몹시 미안해졌다.


‘그때는 오히려 상처만 줬구나.’


또, 생각해보니, 같거나 비슷한 고민을 늘어놓던 여자들 중에는 내 몹시 가까운 친구들도 있었고, 내 선후배들도 있었다.


‘나와는 먼 이야기가 결코 아니었구나. 저런 이야기가 바로 내 가까운 친구들의 이야기요, 내 선후배들의 이야기구나.’


그때야 겨우 그녀들의 이야기가 한낱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녀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록, 내용은 차이가 있었지만, 나 역시 한때는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요구에 잔뜩 시달렸으니.


‘나 역시 그중의 한 명이었구나’


불현듯 남자친구에게 시달리던 예전의 내가 기억나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고, 뒤이어 여자에게 ‘원하지 않는 섹스’를 무턱대고 강요하거나 조르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남자들에게도 마구 화가 났다.


‘사랑한다는 여자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원하지 않는 섹스’를 경험했다는 여자들은 날마다 전해지는 뉴스 속에도 있었고, 인터넷 속에는 더욱 많이 있었다.


게다가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등 형태도 어찌나 다양한지.






성적인 고민에 적응하기


복잡하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여자들의 성적인 고민에 부쩍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내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때 내 이야기였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더욱.


‘심지어 나는 내 이야기에도 적응을 못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인터넷에서 훨씬 노골적으로 표현된 여자들의 성적인 하소연과 마주쳐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조금씩 누구인가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예전의 내 태도가 엄청나게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성적인 하소연을 듣게 될 때면 때로 상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만큼 마구 얼굴을 붉히기도 했으니.


‘비록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해도, 상담을 할 때는 가장먼저 피상담자가 마음 편히 실컷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하는구나’


더구나 상담자의 기본적인 태도까지 알게 되니 예전의 마냥 어설펐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순간, 나에게 성적인 고민을 털어놓던 여자들을 언제인가 또 만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마구 어디로인가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나의 이런 변화에 좀처럼 적응을 못했다.


‘홍희정, 너 정말 변덕이 엄청나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느닷없이 성적인 하소연을 늘어놓던 여자들에게 지레 겁을 먹고는 미처 꿈꿔보지도 않은 임상심리사 등 상담사를 미래에서 지워버릴 만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몹시 편협했으니.


‘그 사이에 내가 편협함에서 많이 벗어났나?’


다시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내 스스로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다보니 나의 변화에도 점점 적응할 수 있었는데, 그러나 그렇다고 상담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때로 뭇 사람들의 성문제까지 상담해야하는 전문상담사는 여전히 마냥 버겁게만 느껴졌으니.


‘이제 겨우 여자들의 성적인 고민에 아주 조금 적응이 된 내가 어떻게 상담사가 될 수 있겠어?’






흔한 상담거리


굳이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TV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던 ‘원하지 않는 섹스’를 경험했다는 수많은 여자들.


그런데 이런 여자들 중에는 중고생들도 있었고, 초등학생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유치원생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집을 자주 비우셨어요. 그럴 때면 저희 집에 놀러왔던 오빠의 친구들로부터 자주 성추행을 당했죠. 도와달라고 말해도 친구들과의 게임에만 빠져서 오빠는 거들떠도 안 보더군요.”(30대 초반의 여자)


‘어쩌면 이럴 수가?’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왔는데, 또, 그중에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여 임신중절수술까지 했다는 여자들도 있었고, 임신중절수술마저 못해 미처 준비도 안 된 채 엄마가 되었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자기 행동을 책임지지 않는 남자가 왜 이렇게 많아?’


하지만 화가 나 마구 씩씩대던 처음과는 달리, ‘원하지 않는 섹스’를 경험했다는 여자들에게 나는 한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딱히 도움을 줄 수도 없던 데다, 그 수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았고, 또, 그녀들의 이야기는 TV에서도 날마다 들을 수 있을 만큼 아주 흔히 듣다보니 점점 무뎌졌으며, 기어이는 듣기도 싫을 만큼 잔뜩 식상해졌기에.


‘이제 저런 이야기는 지겹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고 보니, 식상해지기 쉬운 사람들의 흔한 고민거리는 대표적인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보나마나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리면서 괴로워하는 여자가 흔하겠지’


이렇게 불쑥 먼 미래까지 ‘원하지 않는 섹스’는 여자들에게 대표적인 고민거리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어 ‘원하지 않는 섹스’라는 흔한 고민거리는 동시에 상담사들에게 대표적인 상담거리 중 하나가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린다는 여자들의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듣는데, 졸업 뒤에 내가 만약 상담사가 된다면 훨씬 자주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겠구나.’


그러자 갑자기 세상이, 수많은 어른들이 점점 원망되기 시작했다.


‘이런 여자들의 흔한 고민거리도 아직까지 해결 못한 어른들은 도대체 뭐야?’






여자의 의미


어느덧 대학교 4학년 1학기가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한 여자 후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묻지도 않았건만 또 불쑥 성적인 하소연을 늘어놨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그저 섹스나 하려고 나를 만나는 듯싶어요.”


그런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데다, 그녀가 연애 중인지도 몰랐었기에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는데, 그래도 매우 여러 날 동안 마구잡이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충분히 익숙해져서인지 그녀의 고민은 곧 적응이 되었다.


더구나 똑같은 고민을 털어놨던 여자는 앞서도 여러 명 있었기에.


‘얘도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리는 여자들 중 한 명인가보군’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껏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그에 앞서, 그런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아직 생각한 적이 없던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렇다보니 때때로 적당하게 추임새나 넣으면서 그녀의 하소연을 듣기만 했는데, 기어이 그녀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남자친구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놨다.


“남자친구와 헤어져야하는지 요즘 고민이 많아요. 언니 생각은 어때요?”


그때, 문득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그녀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마구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저 단순한 섹스파트너라고만 생각할까? 아니면, 오로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섹스인형이라고 생각할까? 그저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진짜 사랑한다면 어떻게 여자친구가 원하지 않는 섹스를 자꾸 요구할 수 있지?’


이어지는 후배의 눈물 섞인 하소연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는데, 뒤이어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궁금해졌다.


‘남자들은 여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기에 여자에게 자꾸만 원하지 않는 섹스를 조르는 것일까?’


그러자 뭇 남자들에게 또 마구 화가 났다.






남자들의 생각


“여자친구는 분명히 오르가즘을 느끼거든요. 또, 스스로도 섹스가 싫지는 않다고 말하고요. 하지만 막상 모텔에 가자고 하면 엄청 튕깁니다. 서로 아주 진이 빠질 만큼 튕기는데, 그렇다보니 모텔에 들어갈 때쯤이면 저나 여자친구나 모두 잔뜩 지쳐있죠.”(20대 초반의 대학생)


남자들은 흔히, 여자가 섹스를 주저하는 것을 ‘튕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쉽게 허락하면 남자에게 ‘싸구려 여자’나 ‘밝히는 여자’, 혹은, ‘헤픈 여자’라고 오해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잠깐 거절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라고.


“결국 모텔에 갈 거면서 어찌나 도도한 척을 하는지”


또, 도도한 까닭에 여자가 섹스를 튕긴다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있었는데, 그래서 남자들은 흔히 여자가 잔뜩 지쳐서 더 이상 거절을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조른다고 말했다.


여자가 ‘원하지 않는 섹스’를 조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자도 ‘원하는 섹스’를 조를 뿐이라고.


“진짜 여자는 조르니까 되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처음부터 얼토당토않은 말로 지칠 때까지 여자에게 마구 섹스를 조른다고 말하던 남자들.


“자기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아직 어린애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한참 공부해야할 때 엉뚱하게 남자친구와 섹스만 한다면 잔뜩 부모님한테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 엄마한테 미안해서 섹스를 못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리고 남자들은 흔히, 여자가 섹스를 꺼리는 이유를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엄마한테 허락받고 섹스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말들을 듣다보니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하여 갖고 있는 생각이 아주 조금씩 짐작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여자를 인정하면 안 되는 사람, 자기의 생각대로 끌고 가야할 주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보구나’


그렇게 남자들의 생각이 조금씩 보이자 어찌나 서운해지던지.


‘여자는 남자에게 이해를 못 받고 있구나.’






성적인 먹이


“나에게 여자는 정복의 대상이죠.”


언제인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스스로를 바람둥이라고 소개하던 20대 중반의 한 남자는 여자를 ‘정복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여자가 정복해야할 높은 산이라도 된다는 거야?’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여자를 우러러보는 듯싶어 살짝 우쭐했는데,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내 기분은 잔뜩 엉망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도 살짝 들떠있던 내 기분에 누구인가 마구 초를 쳤기에.


“등산하는 사람들이 죽을 위기마저 무릅쓰고 힘들게 올라간 높은 산꼭대기에서 겨우 아주 잠깐 머물다 미련 없이 하산하잖아. 자기도 여자를 그런 산꼭대기처럼 생각한다는 말인데, 그 말이 그토록 좋아?”


순간, 불끈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그런 해석을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정복의 대상은 일단 정복하면 더 이상 바라볼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이 산, 저 산 찾아다니듯, 바람둥이들은 한 번 정복한 여자는 매몰차게 버린 뒤에 새롭게 정복할 여자를 찾아다니나?’


그때, 바람둥이 남자들에게 여자는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산꼭대기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또 어찌나 화가 나든지.


그런데 남자들 중에는 여자를 ‘정복의 대상’보다 더욱 심각한 ‘성적인 먹이’로만 여기는 남자도 적지 않게 있다고 한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안 준다고 말하는 남자들 있지? 그런 남자들은 모두 여자를 성적인 먹이로만 생각한다고 이해하면 돼.

왜냐하면, 그 말은 컵라면 등 여느 먹거리처럼, 적당히 먹고 버리는 물고기와 여자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말이 되거든.

여자를 성적인 먹이로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


여자가 적지 않은 남자들에게는 한낱 ‘성적인 먹이’일 뿐이라니.


성추행범이나 강간범 등 성폭력범은 그저 그중의 일부일 뿐이라니.


그래서 수많은 남자들이 섹스를 한 뒤에 여자를 ‘먹었다’ 말하는 건가?


“그리고 사람이 물고기를 잡는 이유는 여러 가지거든.

함께 살고 싶어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도 있고, 오직 재미를 위하여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튼, 함께 살고 싶어 물고기를 잡은 사람이라면 왜 먹이를 안 주겠어? 적당히 먹다가 버릴 속셈이니 먹이를 안 주는 거지”






여자 사냥꾼


여자를 그저 성적인 먹이로만 여기는 남자들이 일부라도 있다는 이야기는 매우 여러 날 동안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다.


‘엄마도 없나? 어떻게 여자를 성적인 먹이로만 생각할 수 있지?’


더구나 어떤 남자인가도 나를 그저 성적인 먹이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다보니.


그래서 여러 날 동안 남자들을 성토하면서 다녔는데, 그때 누구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평범한 남자보다 바람둥이처럼 자기를 성적인 먹이로 여기는 남자를 더 좋아하잖아. 평범한 남자는 옷도 잘 못 입고, 매력도 없다면서”


그 말에 잠깐 찔끔했지만, 곧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 여자들이 극히 일부 있을 뿐, 모든 여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야! 그리고 사람을 성적인 먹이로만 생각한다는 게 말이 돼?”


“남자도 마찬가지야. 여자를 성적인 먹이로만 생각하는 남자들이 극히 일부 있을 뿐,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그 말과는 달리, 여자를 성적인 먹이로만 생각하는 남자는 여기저기 아주 흔한 듯싶었다.


“나는 이제까지 열 명 정도 먹었는데,”


마치, 사냥꾼이 자신이 잡은 짐승들을 자랑하듯이, 남자들은 흔히 자신과 섹스를 한 여자들을 남들에게 자랑했으니.


그중에는 심지어 먹던 음식을 남겨주듯이, 자신이 만나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주는 남자들까지 있었다.


“재는 귀를 애무하면 아주 죽거든. 그러니 잘 해봐”


‘이런 미친! 그런 것도 성적인 교류냐?’


그런 사실을 알고는 또 한동안 남자들에게 어찌나 화가 나든지.


그러면서 또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남자들의 특징을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성경험이 많으면 어떻게든 감추는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은 자랑을 하는구나. 확실히 남자는 여자와 많이 다르네.’


그러자 불쑥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몹시 억울하게 생각되었다.


‘나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실컷 성경험을 하고, 마구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






가해자들


나는 오랫동안 강간범이나 성추행범처럼, 극히 일부의 위험한 남자들만 여자에게 ‘원하지 않는 섹스’를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보니 그런 남자들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그런 남자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막연한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학생이나 직장인 등 멀쩡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원하지 않는 섹스’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강요했으니.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중에는 골뱅이가 된 여자, 즉, 술에 잔뜩 취해 정신이 없는 여자만 골라 모텔 등으로 끌고 가 강간한다는 몹시 한심한 남자들도 있었다.


‘오죽이나 자신감이 없으면 시체처럼 자신의 의사도 표현 못하는 여자만 노릴까? 그나저나 시체 같은 여자와 섹스를 하면 재미가 있나?’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뉴스에서는 심지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수나 기업주 등, 사회지도층이라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남자들도 여러 방법으로 주변의 여자들에게 ‘원하지 않는 섹스’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심지어 검사들과 판사들, 혹은, 경찰관들 등 법을 지켜야할 남자들도, 오히려 ‘원하지 않는 섹스’에 고통 받는 여자들을 앞장서서 보호해야할 남자들조차 여자들에게 ‘원하지 않는 섹스’를 요구한다고 말했으니.


‘도대체 어떤 남자를 믿어야할까?’


뿐만 아니라, 삼촌이나 사촌오빠 등 친인척과의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렸다는 여자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아버지나 오빠와의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렸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의 참담함이란.


‘여자는 심지어 가족에게도 성적인 먹이가 되는구나.’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현실임을 알았을 때, 같은 여자로서 뭇 남자들에 대하여, 또, 여자에게만 사뭇 위험한 듯싶은 이 세상에 대하여 결코 적지 않은 적지 않은 두려움도 느꼈는데, 이 때문에 한동안 마주치는 남자들을 마구잡이로 의심하기도 했다.






정신병자 공장


상담사들의 말에 따르면,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의 ‘원하지 않는 섹스’를 겪은 뒤, 우울증이나 결벽증 등 이런저런 정신문제에 잔뜩 시달린다는 여자가 결코 적지 않게 있었다.


“특히, 아버지나 오빠 등 친족에게 성적인 피해를 당했다는 여자들 중에는 매우 오랫동안 정신적인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자가 아주 많아요.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강압적으로 성적인 피해를 당했다는 여자들은 더욱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더군요.”


이 때문에, 그중에는 심지어 몇 십 년씩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여자들도 있다는데,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원하지 않는 섹스’ 역시 여자에게는 정신문제의, 마음의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친족에게서 ‘원하지 않는 섹스’를 강요받는 여자들 중에는 경제적인 이유 등 이런저런 이유로 심지어 자신의 엄마로부터도 아예 보호를 못 받는 여자들도 있다고 한다.


“너만 참으면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 말하면서 침묵을 강요하거나 외면하는 엄마들이 있더군요.”


그렇다보니 그런 여자들은 더욱 오랫동안 더욱 심한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는데, 그중에는 도무지 견딜 수 없다보니 아예 집을 나와서 청소년 쉼터 등에 머무는 어린 여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섹스’를 겪었다는 여자들 중에는 심지어 살인자가 된 여자도 있다고 했다.


“예전에 어떤 여자는, 자신을 어릴 때 성폭행했던 남자를 몇 십 년이 지난 뒤에 찾아가 죽였죠.”


그들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원하지 않는 섹스’의 위험성이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뒤이어 심지어 처음 만난 나에게 잔뜩 어두운 얼굴로 ‘원하지 않는 섹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던 여자들이 떠올랐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여자들도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수 있겠구나’


순간, 여자에게 ‘원하지 않는 섹스’를 강요하는 남자들에게 어찌나 화가 나든지.


며칠을 끙끙 앓다가 또 남들의 성적인 하소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꾸짖으시던 선생님께 남자들은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고 마구 투정을 부렸다.






왜곡된 이성관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뒤에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의 여러 어른들로부터 매우 다양한 교육을 받지.

그중 한 가지가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등의 대인관계에 대한 교육인데, 그렇다면 자네는 이제까지 대인관계 중 이성관계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

예를 들어서, 남자와는 밀폐된 공간 안에 단 둘이 있으면 안 된다는 등의.

물론, 어린 사람들에게 그런 교육을 하는 어른도 극히 일부 있지.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성관계에 대한 교육은 거의 안 해.

이 세상 사람들의 절반이 남자요, 절반은 여자이다 보니 남자와 여자는 하루에도 아주 흔하게 마주치며, 그렇다보니 서로에 대한 예절을 알아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왜냐하면, 이성관계에 대한 교육을 하려면 꼭 성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만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자식이나 학생 등 어린 사람에게 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몹시 쑥스러워하거든.

그에 앞서,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인 지식을 알고 있는 어른은 아예 없다시피 하고, 성에 대해서는 차마 낱낱이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지.

또, 심지어 이성관계가 대인관계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어른도 수두룩해.

이런 형편이니, 어른들이 어떻게 어린 사람들에게 이성관계에 대하여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어?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막연히 어린 사람들이 알아서 하기를 바라는데, 막상 어린 사람들은 이성에 대해 마구 왜곡해서 생각하는 등 자기의 마음대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사람들 중에 여자를 성적인 먹이로만 여기는 남자들이나 심지어 딸마저 성적인 먹이로 여기는 남자들도 있는 거지.

더 심하게는, 강간범이나 성추행범 등의 성폭력범들처럼, 이자를 그저 분풀이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재미있는 것은, 어린 사람들이 이성을 마구 왜곡해서 생각하거나 성적으로 괴롭히는 등 말썽을 부리면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누구보다 어른들이 난리를 친다는 거야.

그렇다고 어른들만 탓하지는 말게.

심지어 잔뜩 얻어맞으면서 배웠어도 모든 사람들이 배운 대로 하지는 않거든."


-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무식의 결과


모두 이해한 척했지만, 이성관계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못 받은 까닭에 사람들은 흔히 이성이나 성에 대하여 자기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습관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씀은 사실,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모두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그 말씀을 나에게 적용했을 때는 더욱.


‘이성에 대한 교육을 거의 못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들의 하소연을 근거로 남자들에 대하여 판단했을 뿐, 내 마음대로 남자들을 생각한 것은 아니잖아?’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말씀은 두고두고 여러 가지 생각의 소재가 되었다.


나 역시 내 마음대로 남자들을, 성을 습관적으로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기에.


예를 들어서, 선생님의 말씀대로, 성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을 수 있는, 스무 살이 넘은 남동생을 남자인 동생이 아니라, 그저 동생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등으로.


더구나 선생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들어맞을 때도 있었다.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있다는 말에는, 각종 질병들처럼 사람이 고통 받는 온갖 문제들 중에는 물리적인 원인에 의한 문제도 있고,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문제도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있거든.

하지만 막상 무엇인가 문제에 시달릴 때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흔히 물리적인 원인만 생각하고, 또, 물리적인 해결방법만 찾지.

조루나 지루에 시달리는 남자들도 한 가지 경우인데, 그중에는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 자신이 조루나 지루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조차 드물어.

그렇다보니 흔히 물리적인 해결방법만 찾고, 그중에는 오직 의학적인 해결방법만 고집하는 남자들도 있지.”


그래서 더더욱 선생님이 그날 하셨던 말씀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때면 언제부터인가 또 다른 말씀도 함께 기억났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까닭에 우리가 때로는 각자 자기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생각하지. 특히, 이성과 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


그리고 그럴 때면 ‘정확히 알지 못하다보니’라는 대목이 어찌나 되새김질되던지.


‘나는 남자나 성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아예 없다시피 하잖아’


3편에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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