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투정 줄어들고 식사 시간 지키... '또밥또밥'을 견디는 방학
모든 직장인은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살아간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용기 있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직장의 주부 사원에게는 사직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파업을 할 뿐이다.
1년에 2번 방학은 주부에게 업무 과중의 시기이다. 맘카페에서는 '또밥또밥'의 힘듦을 토로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메뉴를 공유한다. 주부들은 삼시세끼를 준비하며 아이들을 챙기고, 방학맞이 특별 활동도 기획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도 주부의 루틴(운동, 문화센터 강좌)은 포기할 수 없기에 더욱 바빠진다.
문화센터 수업이 있는 날, 온갖 야채를 다져서 볶음밥을 준비했다. 일본 다이소에서 사 온 시나모롤 모양틀로 오랜만에 데코레이션도 했다. 청소년들(고1, 중1)이지만, 기분 좋게 먹으라는 엄마의 배려였다. 설거지까지 마무리하고 서둘러 외출을 했다. 미리 스케줄을 공지하지 못해, 수업 도중 남편에게 카카오톡으로 부탁을 했다.
"에세이 수업 있어서 나왔어요. 애들한테 식탁에 있는 볶음밥 먹으라고 전해줘요."
수업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갔다. 식탁에는 말라비틀어진 시나모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유 자국과 시리얼 부스러기들이 가득했다. 건강을 생각해서 볶음밥을 만들어 놓았지만, 아이들은 편하고 맛있는 시리얼을 선택해서 먹었다. 아이들이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다.
우리 집에는 시리얼 규칙이 있다. 식사 후 출출할 때 먹기. 유치하지만 이렇게라도 규칙을 정해놓지 않으면, 아이들은 삼시세끼 시리얼을 먹는다. 시리얼에 견과류와 과일을 넣어 주기도 했지만, 청소년이 되고 나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아침에 남편이 전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규칙을 어겼고, 엄마의 정성을 무시했다. 이런 감정이 마흔 후반에 느끼는 갱년기 증상의 하나일까?
"너희들이 좋아하는 라면, 과자, 시리얼, 마라탕 실컷 먹으렴. 엄마 파업이다."
남편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2박 3일 동안 남편과 외식을 했다. 양심상 '밥'은 준비해 주었다. 첫날, 아이들은 예상대로라면, 시리얼, 과자로 배를 채웠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신나게 정크 푸드를 먹으며 신나는 듯 보였다. 이튿날이 되자 큰 아이가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달고, 짠 인스턴트만 먹다 보니 밥이 그리웠나 보다.
그 모습이 짠해 보여서 '장조림' 위치를 알려주었다. 큰 아이는 고맙다며 장조림에 밥을 비벼 먹었다. 작은 아이는 여전히 컵라면이었다. 밥 차리는 것도 귀찮고, 라면 끓이기 이외에 할 줄 아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른 척 했다.
사흘째 아침, 나는 남편과 순댓국을 먹고 집에 왔다. 큰아이는 오늘도 장조림에 밥을 비벼 먹고 있었다. 슬며시 아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밥 안 차려주니까 어땠어?"
"배고팠어. 엄마 미안해, 앞으로는 잘 먹을게."
점심 무렵, 작은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똑같은 질문을 했다.
"먹고 싶은 거 마음 대로 먹으니까 좋기는 한데,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았어. 내가 엄마 주려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왔는데, 엄마가 안 먹으면 나도 서운할 거 같더라. 엄마 미안해."
그후 우리 가족은 한층 성장했다. 아이들은 음식을 만드는 엄마의 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밥을 먹을 때의 태도도 달라졌다. 반찬 투정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필자가 일류 요리사도 아니고, 매번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대령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 끼니 메뉴를 묻고 식사 여부를 결정했었다.
마음에 드는 메뉴가 아니면 '배 안고파'라고 말하며 당당히 끼니를 거르고, 주전부리로 배를 채웠었다. 이제는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은 먹는다. 참 다행이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식사 시간임을 알리면, 자발적으로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는다는 것이다. 파업의 큰 성과다. 나 또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리얼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한 끼 대충 먹는다고 영양실조 안 걸린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또밥또밥'을 할 예정이다. 개학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