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자, 엄마니까.
엄마
난 엄마가 아프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마음이 깨져요.
아이를 낳고 수면 패턴이 무너져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라면 모두가 겪는 고통이지만 내 경우엔 좀 유별스러웠다. 아이가 나를 닮았는지 모든 면에서 예민했다. 먹는 것, 자는 것,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넘기지 못했고 난 아이가 만 세돌이 될 때까지 1~2시간 토막잠만 겨우 잘 수 있었다. 결국 면역력이 떨어져 이명과 돌발성 난청을 겪기도 했다.
아직도 아이는 꽤 예민한 편이지만 그래도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의 밤도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체력은 복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거품 같은 체력은 여전하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아이가 5살 때 여름이었는데 고열 증상을 동반한 원인 상세불명의 장염(병원 진단명)이었다.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까지 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밤을 겪었다. 한편으론 홀가분하게 푹 자게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딱 한 시간뿐이었다. 엄마 냄새를 먹고사는 딸아이가 분단위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병원의 침대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루함이 지속되어도 결코 푹 잘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도 여름 나기가 좀 힘들었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냉방을 오가는 생활에 지칠 때쯤이면 장염과 몸살 기운이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날, 또 슬금슬금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어 몸을 사렸다. 유치원 하원 후, 간식을 좀 챙겨준 뒤 아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틀어주고 침대로 가서 누워있었다.
아이가 슬며시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지만,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프미야, 아빠 오실 때까지 TV 잠깐 보고 있자.”
고사리 같은 손이 내 이마를 짚는 게 느껴져 눈을 뜨자, 스케치북에 쓴 편지를 들고 서 있었다.
“엄마 난 엄마가 아프면 마으미 너무 아프고 마으미 게져요?”
쓰여있는 대로 내가 읽자,
“응 엄마. 내 마음이 깨져요.”
라는 우리 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언제 이만큼 우리 딸이 큰 걸까..라는 생각과 거품 같은 체력을 지닌 엄마여서 미안함 등등이 섞여 뭉클했다.
마음처럼 쉽지 않겠지만 아프지 말자고 다짐했다. 난 이제 엄마니까.
(그렇지만 1년 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에도 다래끼로 인해 소염진통제를 삼켰다..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