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공모전특별상 <웃음뽀시래기남매> 후기
집안일을 접어두고 책 만들기에 몰두하다가 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마음의 많은 변화를 겪는다. 언니를 다정하게 돌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인생의 허무함, 슬픔으로 힘들어하던 중, 출간된 책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다가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나의 인과응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비우게 된다는 내용.
작가는 항문으로 책을 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작가는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자판과 씨름을 해서 치질등의 항문질환을 달고 산다는 얘기였다.
그림책이 출간되어 작가라는 이름을 달게 된 지 며칠 후, 나는 일명 맹장염이라고 불리는 충수염에 걸리게 되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내 배에는 무려 세 군데나 흉터가 생겼고, 3박 4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다행이었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찾아보니 옛날사람들은 충수염으로 많이들 죽었다고 한다. 비록 몸에 흉터가 생겼을망정 나는 삶을 얻은 것이다.
퇴원하는 날 그 흉터 위에 붙은 커다란 방수밴드 3개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내가 맹장으로 책을 낳았구나.'
완벽함이라는 집착을 버리고 내 책을 내 책으로 인정하는 데에 나는 이렇게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나는 그간 겪어보지 못한 큰 정신적 충격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거치며 신경도 예민해지고 건강에 대한 불안증까지 생겼었다.
2023년 상반기에 나는 그림책 출간을 위해 6개월 동안 온종일 꼼짝 않고 앉아서 책에 들어갈 그림을 모두 새로 그리고 글을 수정했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즐거웠다. 이 책을 읽고 재밌어할 독자들을 생각하면 신이 났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등에 통증이 오고, 다리에 기운이 없고, 자는 동안에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운동도 하지 않고 하루의 절반을 앉아서 책에 매달린 결과였다.
내 책을 낸다는 기쁨과 설렘은 의자와 나를 한 몸으로 묶어놓았다.
그렇게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느끼던 어느 날, 오랜시간 암과 투병하던 하나뿐인 언니를 잃었다.
책을 얼른 완성하고 언니와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야겠다던 어리석은 생각은 허공의 먼지처럼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코로나라고, 아이들 뒤치다꺼리한다고, 책 만든다는 핑계로 언니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보내야 했다. 그동안은 형부가 혼자 오롯이 언니의 투병을 곁에서 지켜주었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이었다.
장례를 마치고서 7.7재(49재)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자동차로 왕복 3~4시간 거리를 7주 동안 다녀야 했다.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감과 슬픔은 모르긴 몰라도 나의 심신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언니와의 추억을 되짚어보고, 동생과도 정말 오랜만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나 오빠와 같이 남아있는 다른 가족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것도 많이 힘든 일이었다.
그 후 건강에 대한 불안증이 생겨 식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의원에 갔다. 8 체질 한의원이라는 곳에 가면 내 체질에 맞는 식습관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책을 얼른 완성해야 했지만 지금 내겐 그것보다 건강이 더 중요했다.
이 상태로 계속 책에 매달렸다가는 완성도 못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언니가 돌아간 후라 나는 원래 성격보다 신경이 몇 배로 예민해져 있었다.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도 나는 한의사에게 이것저것 이상한 점에 대해 물어보고 침을 맞고 불편한 점에 대해 호소했다. 평소에도 약간 그런 편이었지만 8 체질이라는 학문에 대해 약간의 불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나보다 어리거나 또래로 보이는 한의사분도 친절하거나 따뜻하지는 않았고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분이셨는데 조금 친절하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아픈 사람들은 위로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데 이곳은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나도 위로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체질이라는 것이 있는지, 체질식이 실제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 다녀본 일반 한의원에서는 모두 소음인으로 나왔지만, 올해 초에 갔던 8 체질한의원에서는 두 군데 모두 다른 체질들을 진단받았다. 두 번 다 한겨울용 두꺼운 옷에 마스크를 쓰고 갔고 한의사분들은 문진과 진맥으로만 봤다. 목양(태음인), 소양(소양인), 가는 곳마다 다른 체질이 나왔다. 체질결과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 목양인이라고 하기엔 밀가루, 유제품과 고기가 너무 안 맞았고, 소양인이라고 하기엔 좀 예민한 성격이었다. 이제 태양인만 나오면 나는 모든 체질을 진단받게 된다. 이건 무슨 카드 모으기 챌린지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다르게 나오니 도대체 믿음이 안 갔다.
이번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간 곳에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이삼주 정도 침을 맞고 식단조절을 해본 후 체질을 진단받았다.
한의사분 말씀으로 80% 금체질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예전에 엄마가 말씀하셨던 대로였다. 내가 태양인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놀라운 결과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금체질은 육식, 술, 밀가루, 유제품을 금해야하는데 내가 충수염에 걸리기 바로 직전에 먹었던 음식이 바로 돼지고기가 가득한 순대국밥이었다. 한공기도 안되는 적은양이었지만 돼지고기가 꽤 많았다. 그 전날은 레몬주를 100ml 가량 마셨고, 또 그 전날은 치즈케이크를 한 조각 먹었다. 금체질이 맞다면 나는 며칠동안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만 골라먹은 셈이었다. 단순히 먹는것 때문만은 아니었을것이다. 내가 젊고 건강했다면 이런 음식들을 몸에서 잘 해독해주었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심신의 상태가 약해진 탓이었을 것이다.
체질검사를 받고 처음에는 체질식을 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나 혼자 사는 것이면 가능하겠지만 아이들 식사와 재택근무하는 남편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체질식은 적당히 참고를 하고 가능하면 적용하되 철저하게 지키는 체질식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삶과 죽음은 종이의 앞뒷면이고, 유선이어폰의 오른쪽과 왼쪽처럼 한 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나는 그동안 죽음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을 느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있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고, 죽었다고 너무 슬퍼할 일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을 테니까...
그러다 나는 죽기 전에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는 동안 나의 즐겁게 사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채널을 만들어서 남은 가족들이나 나를 그리워할 사람들에게 남겨줘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시 노래를 연습해서 예전처럼 다시 부르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채널을 열고 싶었는데, 지금 내 목과 건강상태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번에 나올 그림책에서 말하지 못한 현실가족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림책은 유아용이라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들을 표현할 수 없다.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가벼운 재미라면 웃뽀가족은 현실가족의 블랙코미디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웃뽀가족 인형놀이 하우스 세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또다시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책이 인쇄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그림책 만들 때처럼 또 말없이 만들기에 몰두했다. 언니의 죽음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단단한 종이박스를 가져다 집 내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벽, 바닥, 창문, 그리고 가구들.
제작이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그림책의 이미지를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려고 했다.
인형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폼보드, 스퀴시, 종이인형 등등...
그러다 문득 이렇게 또다시 다 제쳐두고 만들기에 몰두하면서 언니의 죽음을 외면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월에 광주에서 하는 전시회에 언니에게 바칠 그림을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에 언니를 그리기 시작했다. 출품마감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면서 기분은 더욱더 슬퍼졌고 매일 울면서 그림을 그렸다.
계속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그림을 마쳤다.
그림이 완전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더 오래 붙잡고 있을 시간도 기운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살아있는 동안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책이 출간되었다.
책 10권이 집으로 배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