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동앗줄이 간절해지는 날이 있다.
"지금 결정하셔야 돼요."
직원의 말이 빠르게 달려와 얼굴을 때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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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정말 힘들었다.
담임으로 있던 학급에서 교권침해가 일어났고,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버린 동료 선생님들을 보았다. 근조화환을 보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내 장례식에 꽃을 보내는 것 같잖아?
출근길이 죽으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매일이 힘들다.
오늘도 마음을 달래가며 그럭저럭 잘 넘겼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어떤 장소든 내가 그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감옥이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직장은 지금 나에게 감옥이고, 지옥이다.
내려놓으라고 한다. 내려놓고 받아들이라고.
나도 그걸 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을 잘 다스려서 현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런데 잘 안된다. 그래서 퇴근하면 서너시간씩 누워서 웹툰 보다가, 넷플릭스 보다가, 유튜브 보다가 잔다. 죄책감도 별로 안 들고 이제는 그냥 '내가 지금 이걸 원하는구나, 어쩌겠어' 싶은 마음이다.
기운이 없고, 보람도 즐거움도 고갈되어버린 듯하다.
2023년 11월 일기 중에서
그즈음 친구 송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겨울에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한국과는 딴판인 곳. 한국어도 없고 한국인도 안 보이는 곳. 가능한 멀리.
그래서 여행지는 튀르키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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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던 항공사 카운터가 어느새 한산해졌다.
한참이나 송의 여권을 들여다보던 직원은 티켓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출국하려면 여권만료까지 최소 150일은 남아있어야 해요. 이 분 여권은 한 달 남았고요. 이래서는 나가봤자 그 나라에서 입국이 안될 거에요."
망했다.
동행만 믿고 별 생각없이 따라왔는데 얘는 못 간다고?
"친구 분은 어떡하실 거에요? 갈지 말지 지금 결정하셔야 돼요."
"저는 갈게요."
몇 초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연가를 취소하고, 직장에 알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니다. 너무 복잡하다.
계획되어 있는 휴가를 무르고 싶진 않았다.
생각을 마치자마자 준비한 것처럼 대답이 나왔다.
내 손에는 곧바로 두 장의 비행기표가 들어왔다.
혼자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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