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JLJFOJTAMKDOGIKJEL?"
"네?"
"ADJLJFOJTAMKDOGIKJEL?"
"음? 코리아?!"
2024년 1월의 어느 겨울날, 튀르키예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해맑은 얼굴이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오전에 언덕을 걸어 올라가 전망대에서 이스탄불을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가까운 모스크를 방문했다. 화장실이 급해 공짜로 볼일을 보러 들렀는데(나라에서 지은 모스크는 영리 활동을 할 수 없어 화장실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알고 보니 근방에서 제일 큰 유서 깊은 모스크였다. 그 앞 공원에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한적해서 앉아 있기 좋았다. 벤치에 앉아 멍 때리고 있으니 옆에서 놀던 고양이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라와 앉았다. 만세! 튀르키예의 동물들은 자유롭고 사랑스럽다.
고양이에게 간택받았다. 황송하옵니다.
홀린듯 부들부들한 털을 만지고 있는데 옆자리에 모르는 아주머니가 와서 말을 걸었다.
누구신데 이렇게 살가운가요. 저를 아세요..?
어디서 왔냐는 질문인 것 같아서 "코리아"라고 영어로 대답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혼자 여행을 다니면 대화할 사람이 없다. 친해지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외딴 섬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던 차에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색하게 고양이만 쓰다듬고 있는데 순간 번역기 어플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치고는 튀르키예어로 번역해서 화면을 보여주니 "아~"하시면서 웃는 아주머니.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폭탄.
문장으로 번역을 돌리니 엉뚱하게 해석되는 말이 있어 몇 번 허둥지둥하다가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해 본격적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름이 뭔지, 혼자 여행 왔는지, 어디 다녀왔는지, 튀르키예에 얼마나 있었는지 온갖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걱정해주었고, 직업이 교사라고 하니 자기 딸도 문학선생님이라며 반가워했다.
내가 열심히 대답하자 흥이 나셨는지 그 이후로도 나이며 직업, 결혼 계획, 한국의 대통령, 북한의 정세 같은 것들을 열정적으로 질문했고, 나도 한국 사진을 보여주면서 함께 수다를 떨었다.
혼자 여행 와서 당일 만난 현지인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다. 아니,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과 이 정도로 살갑게 대화한 적은 없다. 무릎에 앉은 고양이를 함께 쓰다듬으며 나눈 대화는 산뜻하고 편안했다.
그런데 물 흐르듯 나온 말은 나를 멈칫하게 했다.
어? 뭐지... 나 해외에서까지 전도당하는 중인가?
당황했다.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친해져서 막역한 사이가 되고, 그 집에 놀러 가 가족들과 인사하고, 다음에도 허물없이 만나 친구처럼 지내는 그런 멋진 시나리오가 막 펼쳐지고 있던 참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조심스레 살핀 그녀의 눈에서 끈질긴 포교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좋은 거 알고 있는데 너도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며 친구에게 괜찮은 물건을 소개하는 느낌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궁금한 걸 물어보자 싶어 열심히 질문했더니 아주머니는 또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모스크로 향하던 학생 두어 명이 우리를 보다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주머니는 휴대폰을 들어보이며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며 나를 소개했다. 소녀들은 수줍게 인사하며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래와 춤 둘 중 어느 것에도 재능이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인기를 누리다니 어쩐지 뿌듯했다.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슬슬 할 말도 떨어지고, 시간도 좀 흘러서 자리에서 일어서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가방에서 땅콩을 꺼내 한주먹이나 쥐어줬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배고플거라며 먹으라고 하기에 더 거절하지 못했다. 나는 땅콩을 먹으며 튀르키예의 정을 느꼈다.
그냥 가기 아쉬워 함께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승낙하는 그녀. 우리는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여행하는 동안 다치지 말고 조심하라고, 당신 안에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며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이 말을 듣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있던 평화가 되살아 난 기분. 그녀가 말한 평화와 내가 말한 평화가 다를 수도 있지만 마음은 그대로 전해졌다. 무뚝뚝한 사람들과 흐리멍텅한 날씨에 굳은 마음이 따뜻하게 풀렸다.
국적도, 종교도, 나이도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관심과 먼저 인사할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준 그녀 덕분에 나는 튀르키예와 한 뼘 더 가까워졌다.
혼자 여행하는 내내 이 곳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괜시리 눈치를 보며 다녔다. 그러나 히잡을 쓴 엄마뻘의 이방인은 그런 나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었다. "우리는 너를 환영해, 너는 좋은 사람이야."하고 말하면서.
낯선 여행지에 기죽어 있던 어느 날 선물처럼 받은 따뜻한 환대.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