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트랩

지나고 보면 가장 작았던 덫을 지나며

by 하얀


26 NOV 2023


끝이 났다. 꿈같았던 지난 이틀, 떨리고 설레던 이틀이 끝났고, 길고 길었던 수험생 생활의 막을 오늘부로 내렸다. 중학생이 되던 날, 졸업하던 날, 고등학교 입학식으로 향하던 걸음걸이 같은 것들이 선명히 기억나는데 나는 벌써 그 많은 시간들을 건너 19살이고 수많은 시간들이 쌓여온 길의 끝에 서 있다. 나는 어떤 기분인가.

오래도 걸린 이 경주가 내게는 끝나지 않는 1000m 수영 경기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우고 욕심냈던 운동인 수영을 할 때, 물속에 있을 때에는 남은 거리를 알 수 없다. 약하게 소독 냄새가 나는 물에 고개를 박고 팔을 휘둘러 앞으로 나아가다가 고개 들고 잠시 숨을 쉴 때 내가 얼마큼 왔는지, 얼마큼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영을 좋아했다. 잠영은 수영장 바닥에 가깝게 가라앉아 머리 위로 모아 편 팔부터 온몸을 사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영법이다. 잠영을 할 때에, 앞으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 보려면 물속에서 고개를 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속도가 줄어들고 숨을 참아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더 오래 숨을 참을 자신이 있다면 잠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봐도 된다. 하지만 빠르게 가고 싶다면 바닥을 외워 거리를 가늠하고 고개를 들지 않아야 한다. 나는 늘 고개를 들었고,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잠영으로 25미터 수영장의 처음부터 끝을 달렸을 때의 차오르는 숨과 뿌듯함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다른 것보다도 25미터를 꾹 참고 달려온 내가, 결국 해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입시도 잠영과 같다.

조용히, 앞이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하다 보면 언젠간 끝이 난다고 한다. 나는 결국 고개를 들었고, 첫 숨을 들이켜는 순간, 내가 얼마나 숨을 자주 마시게 될지 알았던 것 같다. 첫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올라오면 그다음부터는 자유형이든 접영이든 숨 쉬는 시간에 맞춰 수영 영법을 사용해야 한다.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숨이 더 필요하면 접영을 택할 테고 조금이라도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면 자유형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숨을 쉬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경기를 뛰고, 도저히 결말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다 보니 매번 질리고 지치고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그만두고 싶었던 날이 3년 중 절반을 넘겼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300일 이상,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수백 번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의미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앞에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잡으러 매시간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도저히 잡히지 않아서 미치는 것 같았다. 매 분, 매 초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랬던 두 번의 3년과 한 번의 6년이 끝났다. 지금은 전주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 7시 24분이다. 이 버스가 6시 40분에 출발했고, 나는 15분쯤 후부터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 입시가 공식적으로 끝난 날이고,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온 날이다.
3년 동안 늘 오늘만을 기다려 왔는데 드디어 오늘이 오니 다른 감상 없이 허전하기만 하다. 남들은 후련하다고도 하고 망쳤다는 기분에 슬프기도 하다던데, 나는 지금 무슨 기분일까. 나는 자기소개 준비를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무슨 기분일까?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이다. 덜컹이는 고속버스 안에서 글을 쓴다. 작은 스마트폰 안에 내 인생을 적어 본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덫을 지나는 중이다. 나는, 지금.

그렇게나 바랐던 수능이 지난주에 끝났다. 그날 나는 일기에 허무하다고 적었다. 이 큰 시험이 사실은 8시 40분부터 4시 37분까지만 앉아 있으면 끝나는 모의고사와 같은 것이구나, 손까지 벌벌 떨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시험이었구나. 난 어떤 허상을 바라보고 살았는가. 이 시험 하나를 위해 수년을 공부해 온 나와 내 친구들과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떤 것을 위해 목매달고 시험장에 왔는가. 그리고 난 이 시험을 통해 무얼 얻기를 원했던 것일까. 끝없이 생각했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기도 했고, 다른 날은 화가 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그저 체념하기도 했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그의 화를 삼켰다.
나는 무얼 위해 살았는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축하받지 못할 존재인가.
허무함과
좌절과
슬픔

괜히 허무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축하를 받고 더 웃어넘기고 내 마음을 숨기고 나의 생각을 죽이고 나를 자르고.


수능을 마친 날, 면접을 마친 날. 내 인생에서 가장 떤 순간. 가장 응원받고 싶었던 날. 내가 날 미워해도 남은 날 사랑해 줬으면 하는 날. 내가 눈물 흘린 날.

면접을 끝내고 나오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숨죽여 도망친 일을 헛되게 한 것 같다는 것. 마치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걸 들킨 기분. 인정하기 싫었고 아니라고 부정했던 그가 정한 한계가 진실로 다가오는 순간. 믿고 싶지 않게도 그게 사실인 것 같은 기분.

울산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쓰는 글.
이 글을 다시 열어볼 어느 날에는 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게 되기를.
사랑하는 나에게.







​시간이 지나고 덧 붙이는 말이다. 23년의 나는 그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합격했다. 한 끗 차이로 문을 닫고 들어왔다.

나는 그 사이에 스물하나가 되었고 막막하기만 했던 이십 대는 어느덧 익숙해졌고 마침내 스물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물일곱 너머를 두려워하던 소년은 없고 사십 대를 기다리는 어린 어른으로 자랐다. 두려울 게 많았던, 십 년 만에 바뀌는 나이 앞자리 숫자에 쉽게 겁먹던 나는 거기에 두고 누구 말마따나, 새로운 나와 함께 잘 살고 있다.


가장 큰 변화일 줄 알았던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내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내 세상도 함부로 도망가지 않았다. 어색하기만 할 줄 알았던 이십 대로서의 시간이 마침내 당연해졌을 때, 술 값이 마침내 걱정되기 시작했을 때, 그때의 나와 19살의 내게 다른 점이라고는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 정도였다. 두껍고 무거운 모의고사 뭉치를 짊어진 것이 아니라서 길가의 꽃을 두 번 더 봤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교실에 틀어 박히는 시간은 하루에 네 시간 남짓으로 줄어서 바깥의 햇살 덕에 조금 탔다. 점심을 먹고 흙길을 걸어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아주 작은 것들이 나를 살렸다. 여름에는 길 가다 지쳐서 사 마신 차 한 잔이, 겨울에는 후두둑 쏟아지는 함박눈이 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했다. 작은 한나절을 견디고,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목도리 둘러매고 맛있는 밥 한 끼 먹으러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