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내 날 구원하지 못해서
세상은 나를 빼고도 순조로이 흐른다. 나 하나 사라지는 것, 나 홀로 방 안에 틀어박히는 것쯤은 이 넓디넓은 세상에 티끌만치도 상처를 주지 못한다. 나 하나 슬퍼한다고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이 꺼지지도 않고 만리장성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밤이다.
아주 작은데, 작아서 더 날카롭게 날 파괴하는 일이 있었다. 이별이다. 세상에 둘만 남은 것처럼, 둘이 하나가 된 것처럼 지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끝은 초라했다. 그렇게 낭만적이라는 스무 살과 사랑은 둘이 만나서 거대한 파장을 만들었고 싱그러운 봄 날씨는 가불기였다. 내가 나를 주고 그 보답으로 그를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 참으로 자기 파괴적인 것이었다.
어느 날엔 눈을 감는 것도,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버거울 만큼 벅찼고, 더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는데 사소한 다툼이 냉전처럼 눈도 못 마주치게 한 날도 있었다. 희생이라고 포장하자면 그렇게 말해도 되고, 내가 보기에 이건 과도한 소유욕에 가깝지 않았을까?
이제 갓 고등학교 교복을 벗은 학생의 입장으로서 대학의 풍경은 지나치게 감상에 젖기 좋은 그림이었다. 드넓은 캠퍼스와 곳곳의 연인들, 잔뜩 설렌 새내기들과 노련해 보이는 선배님들까지. 적어도 나는 비가 오는 야외 공연장에서 영화 보기를, 늦은 밤에 친구의 방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을, 눈이 내리는 새벽에 마시는 화이트 와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끝끝내 날 좋아하게 되는 것은 천운이라던데, 내가 운을 좀 당겨 썼는지, 몇 달 내로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운도 좋았고, 때도 좋았다.
나는 한 번 무언가를 좋아하면 꽤나 자기 파괴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잠을 자지 않고 영화를 보고 밥 먹는 시간을 줄여 책을 읽고 목표가 정해지면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노려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행히도 나는 내 마음이 엄청 거대한 줄 알았다. "좋아해" 한 마디가 어려워서 남겨둔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이리저리 부풀어 올라서 심장을 뚫고 나오는 줄 알았다. 세상에서 나만큼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거만함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다.
고백을 했다. 밤하늘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어느 날, 달을 보다가 정말 다시없을 소소한 고백을 했다. 이제까진 하다 못해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하거나, 술을 마시다가 우리 잘해보자는 말로 시작하거나, 혹은 사랑한다는 말 없이 반년을 사귀기도 했었는데, 그것들이야말로 정석인줄 알았는데,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서 웃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툭, 하고 쏟아졌다 내 마음이. 직전의 연애가 흐지부지 끝난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고민하고 준비해서 저질렀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무의식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이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어쨌는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 되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헤어졌으나 실제로 얼굴을 보고 만났던 것은 그리 길지 않다. 내 출국이 12월 30일이었고 대학에는 방학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은 더운 날씨를 핑계로 시원한 기숙사에 눌러앉아 보낼 수 있었다지만, 나는 내가 없을 겨울방학 기숙사비를 결제할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안녕이었다.
스무 살의 연애는 열여덟에 마지막으로 했던 연애와는 사뭇 달랐다. 시간이 늦어서 집에 돌아갈 필요 따윈 없었고 어색함을 푸는 데에 술만큼이나 좋은 게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싸우고 말 한마디 안 하다가도 어느새 웃고 떠드는 모양새가 되었고 후회하면서도 또 다투는 게 사실은 서로 마음을 전부 보여준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만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지점은 '나는 결국 이 사람이 기다리게 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떠나는 입장이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었지만 결국 나를 기다려줄 사람은 상대였기 때문에 내가 늘 안달복달하는 마음이었다. 매달리고, 확인받고 싶어 하고, 시험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많은 나쁜 습관들을 배우기도 했다.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이나 불안하면 일단 취하고 보는 버릇이나 침묵을 침묵으로 방관하는 것들이 그 예시였다. 정말 최악의 상대가 아닐까 싶다. 나부터가 건강하고 튼튼해야, 견딜 수 있는 지지대가 있어야 서로 기댈 수 있는 상대가 되는 법인데, 내 버팀목은 날이 갈수록 얇아져서 나중에는 내 입김에 내가 날아갈 지경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핑계로 날 좋아하지는 못한 것이 처음엔 작은 흠으로 시작해서 종국엔 큰 균열이 되었다. 나를 실망적인 눈빛으로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내가 불만인데 남이 날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느다란 실 하나에 의지한 채 두 사람이 그 실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끝이라는 것에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거미줄처럼 얇은 실은 바람에도 흩날리듯이 힘을 잘못 줬더니 툭, 하고 끊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붉은 실이라던데 내가 가진 것은 애진작에 낡아빠졌는지, 어느 날 끊겼다. 평소처럼, 그냥, 아무것도 안 했는데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안녕'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다. 집 앞에서 울부짖고 무릎 꿇은 상대를 두고 떠나는 세기의 사랑은 그래서 드라마인 것이고, 일반적인 이별은 그만하자는 한 마디가 끝인 것이다.
헤어짐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눈물도 슬픔도 사무치는 마음도 없었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면 아무래도 휴지통에 갖다 버린 썸네일 파일만큼이나 쓸모없는 시간들 아니었을까? 감상적인 글 한 문장 써 보자면, 늘 평생을 약속하자던 사람의 입에서 이별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그때부터 그와의 끝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끝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는 이미 한겨울이었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내 생일이 있는 7월의 중반이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세발의 피이지만 그래도 상실감은 대단한 증폭제였다. 추위가 시리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영원은 없다던데, 반대로 달려서 내 손에 영원을 쥐어주겠다던 사람은 이미 떠나고 내 곁에는 명제만 남 나서, 나는 남은 시간들에서 영원이란 믿을 수 없다는 증명을 얻은 것이다.
꿈에서 온갖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이별을 당하고 헤어졌다. 마치 내가 뱉은 말이 내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울지 않은 벌로 꿈에 등장하는 나를 벌주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별하는 상황이 거대한 고래를 바다로 떨어트리는 것처럼 엄청난 파장이 있었다. 눈을 뜨고 나서도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바위가 심장 위를 짓누르는 것 같았고 마침내 꿈을 꾸지 않게 되어서 더 이상 이별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수개월에 걸친 이별이 끝이 난 것은 이미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펜을 잡고 글을 쓰는 일이 조금 쉬워지고 첫 문단에서 쓴 내용을 마지막 문단에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이 회복되자, 이제야 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별이 아니라 그 작은 마음 때문에 결국 좋아하는 사람도 시간도 소중한 무언가도 잃었지만 나조차도 잃기 직전에 간신히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 피곤이 쌓여서 잠에 들면 아파서 깨는 날이 며칠, 눈을 뜨면 몽롱한 날이 또 며칠. 그 시간들이 끝나고 나니 나는 마침내 내 삶이라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옆의 의자가 더 좋아 보여서 기웃거리고 내 의자를 그 옆에 두고 싶어서 애걸복걸하다가 잃어버릴 뻔 한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서 앉았다. 정신이 들었다. 드라마처럼 한 순간에 확, 하고 차려진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천천히 걸어서 다시 돌아왔다. 적당히 밥을 챙겨 먹고 가끔은 배가 찢어져라 웃고 적당히 슬퍼하며 사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다.
어떤 마음은 하도 기워 입어서 구질구질하다던데, 찢어진 부분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는 드라마를 여럿 보고 자라기도 했다. 그래서 사랑은 참 드라마 같다고, 첫눈에 알아본 운명을 기다리는 게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땅에 발을 딛고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별에서 온 운명의 상대는 없고 거울 속에 서 있는 내가 진정한 실존이다. 사랑은 구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