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등 빛을 먹는 바다를 보며
나는 어디에 있나.
바다에서 나고 육지에서 자랐다. 어느 날에는 물이 좋았다가 어느 날에는 뭍이 좋더라. 바다는 물이다. 내가 자란 곳은 뭍이다. 나는 사람이고 바다에 익숙하다 하더라도 자라길 뭍에서 자랐기에 그를 완벽히 알지는 못한다. 가끔은 그를 사랑해 마지못함을 느끼다가도 어느 날 눈을 뜨면 그가 당장이라도 사라졌으면 한다. 바다 공기 가득한 나의 안락한 감옥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소망을 이뤘다. 그 후에 찾아온 것은 허무, 실망, 허탈. 바다가 있던 작은방에서 벗어난 밖은 그저 바다. 몸 뉠 곳도, 편히 눈물 흘릴 곳도 없는. 어떤 바다. 검은 물이 계속, 계속 있는 바다. 아 빛이 있어야 바다가 푸르구나. 푸른 바다는 빛이 있어야 하구나. 빛은 무엇이었나. 내가 감옥에서 본 푸르른 바다는 도대체 무엇이었나. 아. 나는 내 감옥의 빛을 바깥의 해로 착각했구나.
내가 만들어낸 빛이 밖의 희망인 줄 알고 꿈을 꿨구나. 나는 허상을 보았나. 작은방에 갇혀 보았던 빛은 더는 볼 수 없는가.
어두운 바다는 끝없는 소실점. 끝이 있는 것을 알고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의 교점.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도 달려가게 하는 거짓된 밝음. 그 속에 놓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막연히 달리는 것뿐. 질척거리는 바닥을 딛고도 걷게 하는 것은 그 헛된 빛과 거짓된 맑음. 막연함 속에 갇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 도망, 달리기, 발버둥을 제외하곤 그저 숨을 쉴 뿐. 물속에서 나는 하나의, 무기력한, 무게 추.
물에서 났지만 물에 빠지길 즐기지 않는다. 늘 짜고, 거세고, 제멋대로인 물이 어렵다. 어떤 날은 얌전히 차오르고 다음날은 거세게 빠져나간다. 흰 파도를 한가득 안고 있다가 훅, 불어서 뭍으로 보낸다. 사람들은 맥도 못 추리고 이리저리, 바다의 의도만큼 휘청인다.
물은 두려움, 경외심, 존경과 미지. 흐르는 물은 생명, 고인 물은 죽음. 죽은 물은 공포, 산 물은 호기심. 그를 이해하는 일은 가능의 영역 밖.
그를 이해하는 일은 거센 급류 아래의 추억을 찾아내는 일과 같다. 약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인격 같다. 술에 절여진 채 마주하는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과 같다. 조금만 휘청여도 그에게 휩쓸려버린다. 흐려서 분간되지 않는 급류 아래 낙엽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 여름의 흔적이 가득한 계곡. 그는 그 사이에서 비롯되어 막연한 바다가 된다.
가능의 밖에서는 거센 파도가 생 전체를 뒤흔든다. 바다가 모든 걸 흔들고 간 자리에는 흐리멍덩한 눈의 나만 남아 초점 없는 눈을 붉게 물들인다. 짠 기가 가득한 눈으로 멍청하게 바다가 남기고 간 자리를 응시한다. 어딜 바라보는지도 모르고 그저 앞을, 그가 있던 곳의 향을 찾아 그곳을 멍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를 뒤로하는 일은 어른이 되어도 어렵다.
아직 어린 나는 물의 자리로 돌아온다. 지나치던 길을 한 뼘씩 되돌아 그 자리에 다시 선다.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에. 어른들은 자리를 뜨고 꺽꺽거리며 우는 아이들만 남아 물을 그리워한다. 작은 감옥 안에서 한없이 그리던 푸른 바다를 그린다. 그리던 바다가 사실은 검은 물에 불과했단 사실을 알고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짙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잊고 여전히 밝을 기억 속의 바다를 그린다. 손에 쥔 붓을 놓지 않고, 오지 않는 낮을 기약 하며 영원히 그린다.
어질러진 그곳을 바라본다. 여기저기 푸른빛이 묻어있다. 작은 방인가? 벽도 천장도 바닥도 가깝다. 공간의 육 면이 두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눈을 감았다, 뜬다.
잠깐 사이 다 칠해진 푸른 빛깔의 무언가.
익숙한 생김새.
아, 작은 감옥이다. 내가 도망쳐온.
그를 사랑했던 마음은 밝은 *파랑이 되고 당장이라도 그가 사라지길 바라며 빌었던 소망들은 짙은 파도가 되었구나. 흰 거품 아래 끝없이 이어지던 물들은 내 비명이었구나. 나는 단지 나에게서 살아갈 뿐, 벗어날 이유도 방법도 없는 곳에서 홀로 발버둥 치며 애쓰고 있었구나.
확, 놓아버리고 눈을 감는다.
이곳은 더 이상 공포도 걱정도 두려움도 경외심도 존경도 아름다움도 아니다. 그저. 그 자리를 충실히 지키는 나의 안락한 마음. 나는 어찌하지 못하고 견뎌야 하고 버틸 수밖에 없는, 감당해야 할 마음. 잘 가다듬어 품고 가야 할 나. 나는 내 마음의 바다를 이제야 깨달았을 뿐. 그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 빛도, 파도도, 파랑도, 거품도, 죄다 나의 것.
깨달음에 눈을 감고 나를, 작은 감옥을, 헛된 바다를 감싸 안는다.
나는 내가 만든 바다에서 태어나 육지를 갈망한 사람. 사람임에도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사람. 이제는 벗어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있는 물을 뒤로하고 가끔은 예상치도 못하게 문을 닫는 곳으로 향했다. 몸에서는 옅은 락스 냄새가 끊이질 않았고 귀와 코는 마를 날이 없었다. 허상과 같던 바다에서 벗어나 물속을 수영했다. 한 줄로 일제히 움직여야 하는 그곳에서 열설적이게도 자유를 찾았다. 자유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에 있었던 해방은 사실 별 게 아니고 그저 수영하는 것. 수영과 헤엄과 유영. 그 사이의 어떤 것이었을 뿐. 어렵지 않았다. 배우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어디에 있나.
작은 감옥과 허황된 바다에서 벗어나 나의 자유를 찾았나.
자유는 배우는 것.
나의 자유는 충분한 가르침의 이후인가.
나는 어디인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