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참 많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의 많은 또래들처럼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복실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는 건 왜인지 모르겠네요.
수능 이후에도 학교는 가야 합니다. 사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건 아니라서 부담은 없지만, 그래도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 주어진 일정에 따라 등교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되었고, 드디어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방학이 찾아왔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가끔 얼굴을 보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그 덕분에 [복실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언제나 [복실이]가 나를 깨워주었습니다. 간혹 잠이 덜 깬 날에는 나를 깨우러 온 [복실이]를 품에 안고 그대로 잠들기도 했는데, 왠지 그 때마다 더 달콤하게 잠들었던 것 같네요. 어쨌든 아침에 잠에서 깨면 부스스한 머리를 모자로 가린 채 그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갑니다. 현관에 걸려있는 목줄을 잡기만 해도 꼬리를 흔들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복실이]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그렇게 목줄을 채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죠. 특별히 정해진 코스는 없었습니다. 그냥 [복실이]가 원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고, 힘들어하면 쉬는 것을 반복할 따름이었죠. 그렇게 1시간 넘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함께 씻은 뒤 각자의 자리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복실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나의 다리 위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주로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는데, 그 때마다 그 아이는 내 옆을 껌딱지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인 나의 다리 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우리는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고, 밥을 먹은 뒤 두 번째 산책을 나갑니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코스 없이 [복실이]의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면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의자에 앉은 나의 다리 위에는 역시나 [복실이]가 자리를 잡고 엎드려 있습니다. 게임을 하는 도중 갑자기 [복실이]가 내 다리를 살살 긁는 느낌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엎드려 있기만 한 것이 지루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 게임을 끄고 거실로 나가 강아지 장난감을 가지고 [복실이]와 함께 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놀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우리는 저녁을 먹죠. 이후에는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복실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